생리대가 유독 비싼 나라, 이제는 독과점을 넘어 '월경권'을 논할 때
30개국 중 생리대 가격 7위인 우리나라
독과점, 제조·유통 세금, 프리미엄화 때문
해외와 달리 월경권 사회적 논의 미진해
시장 구조 개선 더불어 안전성 확보해야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

지난달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30대 이모(31)씨와 친구들은 대형 쇼핑 매장부터 익숙하게 들어섰습니다. 한국 여성들 사이에선 '일본에 가면 우리나라의 반값 수준인 일본 생리대를 쟁여 오는 게 이득'이라는 '꿀팁'이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죠. 이들은 일본 생리대 묶음을 들어보며 새삼 탄식했어요. "생리대가 이렇게 싸다니, 우리나라만 그렇게 비싼 거야?"
2024년 영국 런던 민간 연구 기관인 IBMNC에서 세계 30개국 생리대 비용을 비교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리대 가격은 7위로 생리대가 비싼 국가 10위 안에 들었습니다. 반면 일본·영국 등은 생리대가 저렴한 국가로 분류됐죠.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생리대가 비쌀까요?
독과점 구조와 세율, 안전성 불안이 가격 높였다
국산 생리대가 비싼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됩니다. 그중 최근 가장 많이 언급된 요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문제를 제기한 ①독과점 구조예요. 우리나라 생리용품 시장은 상위 3, 4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요. 여기에 필수재라 소비자 이탈 가능성이 적은 점이 독과점을 강화하고, 긴급 구매가 잦아 편의점·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망 영향력이 강한 점이 신규 브랜드 침투를 어렵게 했죠. 드러그스토어 중심 유통망과 대용량 판매 비중이 높은 일본과 다른 양상입니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0110560002319)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622310004030)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615080003069)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1917170004369)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2416300005611)
또 다른 요인은 ②세금이에요. 2004년 생리대가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면서 부가가치세 10%가 일찍이 폐지됐어요. 하지만 제조·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세금이 제품 가격에 반영돼 결국 소비자 가격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한계가 여전합니다. 부가가치세 면세만으로는 효과가 없는 것이죠.
무엇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2017년 국산 생리대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된 '생리대 파동'을 계기로 자리 잡은 ③'프리미엄' 생리대의 주류화예요.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산 생리대 전수조사 끝에 "유해 물질이 있는 건 사실이나, 양이 미미해 인체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발표했어요. 하지만 저품질 생리대를 쓰다가 신체 증상을 직접 겪은 여성들은 쉽게 안심할 수 없었죠. 결국 "생리대는 싸면 불안하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여성 개인이 높은 비용 지출을 감내하면서까지 '유기농'이나 '순면' 단어가 붙은 비싼 생리대를 찾게 된 겁니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512050004783)

세금 폐지, 무상 생리대 정착... 월경권 지킨 여성들
문제가 명확한데도, 국산 생리대 가격 문제는 왜 지금껏 해결되지 못했을까요? 우리나라는 여태껏 월경권(월경을 겪는 모든 여성이 건강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을 사회적 의제로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았어요. 따라서 "아무리 생리대가 필수재라지만, 굳이 국가가 나서서 생리대를 공급하거나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여전하고요.
그렇다면 월경권 의제를 사회적으로 확장한 다른 나라 여성들 사례를 살펴볼까요? 2019년 독일의 '더 탐폰 북(The Tampon Book)' 이슈가 대표적인데요. 책에는 부가세 7%가 붙지만 월경 용품에는 사치품과 동일한 19%의 부가세가 붙는 세법에 항의하고자, 한 탐폰 스타트업은 탐폰 15개가 들어 있는 '더 탐폰 북'이라는 책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이 책에 열광한 여성들은 1쇄를 하루 만에 매진시키고 2쇄 땐 1만 부에 이르는 구매력을 보여줬어요. 이를 계기로 "월경은 사치가 아니다"라는 사회적 합의가 생겼고, 월경용품 부가세도 7%로 낮춰졌답니다.
인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어요. 2017년 인도 정부가 탐폰과 생리대를 12%의 세금이 붙는 사치품 범주에 넣자, 여성 시민들이 즉각적으로 이를 비판하는 집회를 연 것이죠. 서명운동에 4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면서 논란이 커진 끝에, 인도 정부는 1년 만인 2018년 7월 월경용품에 붙는 세금을 전면 폐지했습니다.
월경권 운동을 통해 국가 차원의 생리대 무상 공급을 정착시킨 사례도 있어요. 스코틀랜드 여성들은 "월경 때문에 학교·직장을 빠지는 건 차별"이라며 '월경 빈곤(Period Poverty·경제적 이유로 월경용품을 구매할 여유가 없거나, 월경 관련 지식·시설이 부족해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2020년 세계 최초로 전 국민 월경용품 무상 제공 체계가 법제화됐어요.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한 과거를 넘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선 이 대통령의 지적 이후 국세청 조사 등을 통해 생리대 기업들의 오랜 담합, 탈루 등 부당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요. 진상조사에 따른 시정이 확실히 이뤄진다면 적어도 독과점으로 인한 가격 인상은 일부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생리대 가격을 확실히 잡으려면 시장 구조와 함께 세금 체계도 개선돼야 해요. 여성·소비자 시민단체는 기존 부가가치세 면제에서 나아가 생산·유통 단계에서 낸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영세율(0원 세율)로의 전환 등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이런 논의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겠습니다.
생리대 무상 공급도 보편적인 월경권 보장을 위해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환경연대는 "공공기관 화장실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공공 생리대를 비치해, 누구나 필요할 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죠. 다만 이땐 단순 무상 공급이 능사가 아니라 고질적인 '안전성 불안'을 해소하는 게 관건입니다.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가격 안정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안전성을 확보해 시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월경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성차별적 인식 속에서 월경이라는 단어조차 직접 말 못 해 '그날'이나 '생리(생리현상의 준말)'로 뭉뚱그려 말하고, 생리대를 주머니 속에 숨겨 다녔던 경험이 있으신지요. 이제는 생리대를 돈·부작용 걱정 없이 편안하게 쓰는 것 역시 여성의 권리임을 깨닫는 것을 계기로, 월경권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차례입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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