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비튼 무대, 무대 역사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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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뮤지컬 뉴 트렌드 ‘역사 판타지’
문화체육관광부의 K뮤지컬 지원 예산이 지난해 31억원에서 올해 244억원 규모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석권 이후 뮤지컬이 K트렌드 차기주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중 160억원이 대형 뮤지컬 제작에 집중되는데, 해외 메이저 시장에서 승부하려면 화려한 미장센을 갖춘 대극장 콘텐트가 경쟁력이 있어서다. 현장에서도 완성도 높은 대극장 창작물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신작 ‘한복 입은 남자’는 지난달 19일 열린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과 편곡·음악감동상, 무대예술상 3관왕을 석권했다. 지난달 27일엔 에이콤이 또 하나의 대작 ‘몽유도원’을 내놨다. ‘명성황후’ ‘영웅’을 만든 뮤지컬계 대부 윤호진 연출의 30년 숙원 사업이다. 새해 벽두부터 대극장을 장식하고 있는 신작들은 둘 다 우리 역사를 콘텐트로 삼았지만, 기존 ‘국민 뮤지컬’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엄숙주의를 덜어낸 본격 판타지와 미학적 고도화로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
![도미부인 설화를 모티브 삼은 ‘몽유도원’. [사진 각 제작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7/joongangsunday/20260207010839066ucpk.jpg)
‘몽유도원’의 원작 소설 『몽유도원도』(1995)를 쓴 최인호 작가가 삼국사기의 민중설화 도미 이야기에 꽂힌 이유다. ‘춘향전’으로 이어진 삼각 러브스토리의 원형으로 실제 역사가 모티브다. 1400여년 전 백제. 고구려의 위협 등 혼란기에 즉위한 개로왕은 선왕의 암살로 인한 트라우마와 귀족세력의 압박에 시달리다 꿈에서 본 아름다운 여인에게 집착하게 된다.
1996년부터 이 소설의 무대화를 꿈꿨던 윤호진 연출은 2002년 ‘몽유도원도’ 초연 이후 24년 절치부심 끝에 ‘몽유도원’을 내놨다. 안재승 작가가 각색을 맡아 폭력적 권력의 화신 개로왕(민우혁·김주택)에게 지독한 짝사랑의 슬픔을 덧입혔고, 도미(이충주·김성식)와 아랑(하윤주·유리아) 부부에게 역모의 누명을 쓴 부족 목지국의 지도자라는 설정을 더해 고뇌를 부각시켰다. 현실에 없는 눈먼 사랑의 전설이 ‘동양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만하다.
![‘몽유도원’의 아랑 역 하윤주. [사진 각 제작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7/joongangsunday/20260207010840353szgr.jpg)
![일 테노레. [사진 각 제작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7/joongangsunday/20260207010841599aqjw.jpg)

![장영실 미스터리를 소재로 한 ‘한복 입은 남자’. [사진 각 제작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7/joongangsunday/20260207010844192skbb.jpg)
자격루 등을 만든 조선의 천재 과학자로 왕의 총애까지 받았던 장영실이 갑자기 실록에서 사라진다. 17세기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던 PD 진석(이규형·카이·신성록)이 그림의 모델이 장영실이라는 가설을 마주하고 역사학자 강배(박은태·전동석·고은성)와 함께 추적에 나선다. 장영실의 모험 활극이 비틀린 역사를 재구성하는 현대인들과 평행우주처럼 교차되고, 별을 향해 날아오르기를 꿈꿨지만 약소국의 희생양으로 제거된 장영실이 이탈리아로 건너가 다 빈치의 비행기구 발명을 이끌었다는 ‘비밀’이 밝혀진다.
![‘한복 입은 남자’의 영실 역 박은태. [사진 각 제작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7/joongangsunday/20260207010845447rofu.jpg)
무대의 완성도도 남다르다.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 유럽 뮤지컬 라이선스로 내공을 쌓은 제작사답게 근세 유럽과 조선을 ‘퀵 체인지’로 널뛴다. 서숙진 디자이너는 조선의 궁궐 실루엣을 오색찬란한 자개 텍스처로 표현해 로마 석조 건축의 거대한 무채색 기둥과 대비시키며 한국미를 강조했다. 작품의 시그니처인 거대한 두루마기도 압도적이다. 루벤스 그림을 찢고 나온 한복을 무용수들의 착장 퍼포먼스로 풀어낸 것도 신박하다. 아리랑 등 우리 민요의 선율을 변주해 녹여낸 이성준 작곡가의 넘버들도 중독적이다.


실제로 윤 연출은 ‘몽유도원’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노하우를 집대성했다. 첨단기술로 구현한 ‘움직이는 수묵화’ 컨셉트의 무대부터 번지고 스며드는 정중동의 미학을 웅변한다. 수묵화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창시자 탁영환 대만 타이난응용과기대 교수가 직접 한지에 그린 그림을 디지털로 편집한 수묵 애니메이션이 관통하는 유니크한 무대다.


“최인호 작가 생전에 이 작품이야말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감동할만한 소재라고 공감했었다”는 윤 연출은 2028년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지에서 영어버전 제작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다. 그가 해외 메이저 시장에서 내세울 무기로 꼽은 ‘동양 미학’의 내용도 흥미롭다. 그는 “도미가 눈이 멀고 아랑이 스스로 얼굴을 파괴했을 때 사랑의 본질에 도달한다는 것은 파괴로부터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는 동양의 미학이다. 이런 작품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도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창작뮤지컬 60주년, 대극장 뮤지컬이 이제는 K헤리티지로부터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창조해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 노(能) 등 전통예능의 매력을 잘 살린 일본 음악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한국은 물론 중국·영국에서 장기공연에 성공한 사례도 고무적이다. 최승연 평론가는 “‘몽유도원’은 모든 장면이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뚜렷한 마스터피스”라면서 “일본어 공연 ‘센과 치히로’가 일본적 에센스로 외국인들을 매료시키는 것처럼 자막 번역을 잘해서 우리말로 가면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단 1회 공연을 한 ‘외쳐, 조선!’이 최근 ‘브로드웨이월드 UK/웨스트엔드 어워즈’ 최우수 콘서트 프로덕션 상을 받았듯, ‘정품 K’의 흐름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편성보다 K 고유의 미학을 고도화하는 게 첨단 K트렌드의 방향성이란 얘기다.

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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