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포도송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갤러리나우에서 이달 28일까지 진행되는 고려명 작가의 사진전 ‘듀얼(DUAL)’은 사물을 늘 보이던 대로만 이해하려는 우리의 습관을 흔들어버린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이것의 실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대로일까. 혹시 저 안에 전혀 다른 존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손바닥에 올려놓기에 가뿐한 길이 20㎝ 짜리 포도를 세로 2m길이로 10배 부풀려 프린트를 하니 포도 알 위에 남은 분가루와 균열 그리고 주름진 껍질의 결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또 하나의 풍경이 보인다. 은하계 구슬처럼 포도 알 하나하나가 신비로운 행성 같다. 더 자세히 다가가면 포도 알 위 분가루 모양이 지구의 5대양 6대륙처럼 보인다. 까만 포도 알 사이에 박힌 금색 포도 알은 우리 안에서 벌떡이는 심장 같고, 검붉은 빛으로 뻗은 포도 가지는 모세혈관 같다. 포도 한 송이를 손에 쥠으로써 거대한 우주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 난다.
프랑스 파리에서 10년 간 공부하며 머물었던 작가는 2011년 어느 날 먹으려고 창가 앞에 두었던 포도송이를 보고 마침 이베이에서 낙찰 받은 우주관측형 특수 필름을 실험했다가 포도송이가 그려내는 이 엄청난 우주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지금까지 그의 포도 사진은 대형 카메라를 기반으로 작가 자신 안에 내재된 여러 욕망들을 구현하고 있다.
“사진사로선 2m 크기로 프린트해도 깨지지 않는, 사진 자체로 정직하고 정교한 사진을 추구하죠. 작가로선 아름다움을 추구해요. 촬영 후 디지털로 색을 입히거나 포도 알 자체에 금박을 입혀서 촬영하는 작업은 조형적으로 완성도를 추구하려는 욕망 때문이죠. 인간 고려명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좋은 작품을 남기길 바라죠.”(웃음)
포도는 생명과 번영을 상징한다. 잘 영근 포도송이들 덕분에 전 세계가 와인이라는 생명의 물을 맛보고 있다. 고 작가는 ‘왜 포도였는가’라는 질문에 “우연히 만난 오브제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답했다. “예술이란 마음의 틈을 채워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생각하는데 자연에서 자기 멋대로 여문 포도의 생명 에너지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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