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밀도 세계 1위 한국…SF 아닌 현실이 된 '로봇공화국'
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지난해 11월 문을 연 기아의 화성 ‘이보 플랜트(Evo Plant)’ 공장 전경. 산업용 로봇을 용접 작업에 전면 투입했다. [사진 현대차·기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9/joongangsunday/20260209145237184ciyn.jpg)
조선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이 매달렸던 산업은 벼농사였다. 그리고 벼농사에서는 논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어찌나 물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지 지금도 한국어에는 ‘제 논에 물 대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물을 얻기 위해 조선 시대 사람들은 대단히 고생스럽게 일을 해야 했다.
하백원은 그런 작업을 사람 힘 대신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를 써서 해낼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한 장치를 구상했다. 그것이 바로 자승차인데, 그 구조는 마치 손으로 작동시키는 수동 펌프를 물레방아와 연결해 놓은 것과 비슷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이 장치를 갖다 놓으면 물이 흘러가는 힘을 받아 저절로 펌프가 작동하면서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게 되어 있었다.
다행히 그가 자승차를 만들기 위해 그렸던 도면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것은 조선 시대에 무엇인가를 설계할 때 도면을 그리는 방법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고 축척을 사용했다는 등의 특징도 있어서 조선의 과학 기술 발전에 관한 연구 대상으로도 가치가 높다. 그렇기에 나는 하백원의 고장인 화순과 전라남도를 한국 자동화 기계와 로봇의 전통이 서려 있는 발상지라고 불러도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하백원이 만든 농업용 펌프 ‘자승차’. [중앙포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9/joongangsunday/20260209145237457rjwe.jpg)
세월이 흐른 후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떨까. 자동화 장치를 산업에서 활용하는 정도를 보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조선 시대와는 정반대다. 자주 인용되는 통계로 국제로봇연맹에서 발표하는 로봇 밀도라는 숫자가 있다. 이 숫자는 산업 현장의 노동자 1만 명당 로봇이 몇 대나 배치되어 있는지를 말한다. 로봇 강국이라고 하는 일본이나 독일 같은 나라의 로봇 밀도가 400이 좀 넘는 숫자가 나오는데, 한국은 이 숫자가 무려 1000을 넘는다. 2024년 발표 자료를 보면 조사 대상 국가 중에 단연 압도적인 세계 1위가 한국이다.
돌아보면 1986년 무렵에 이미 국내에서 산업용 로봇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공장에서 로봇을 양산해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금년으로 40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즉, 한국에서 로봇은 미래 기술이 아니라 벌써 40세가 된 중년의 기술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국이 바로 이렇게 다른 나라보다 로봇을 훨씬 더 많이, 더 빨리 도입했기 때문에 제조업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도 볼만 하다. 그러고 보면 요즘 중국의 로봇 밀도가 빠르게 한국을 추격하는 추세가 눈에 뜨이기도 한다.
근래에는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해 로봇이 더 빠르게 발전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곳곳에서 로봇이 어떻게 일자리를 바꾸어 나가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느냐에 대해 의견도 분분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어느 분야의 사회 문제든지 간에 그 답을 찾을 때 다른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며 따라 해 보자는 의견이 무척 자주 나오곤 했다. 지금도 TV 다큐멘터리를 보면 45분 동안 문제를 지적하다가 끝나기 15분 전에 독일이나 핀란드의 대책을 소개해 주며 끝내는 것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로봇에 대해서는 그냥 선진국의 학자들이 하는 말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한국 만큼 로봇을 많이 쓰는 나라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한국 근처에라도 도달한 곳이 없다. 미국 같은 나라가 보기에는 오히려 한국이야말로 한참 먼저 미래에 와 있는 나라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로봇이 가져오는 일자리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도리어 지금까지 우리 자신의 과거를 냉정하게 반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한국은 어느 나라 이상으로 일자리에 관해 골치 아픈 문제들을 겪었다. 중소기업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청년들은 취업이 힘들어졌다거나, 일자리가 양극화되었거나 하는 지적이 나온 지도 오래다.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를 찾아본다면 한국의 산업 구조가 바뀌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의 산업 구조가 그처럼 바뀐 데에는 다양한 자동화, 로봇화 또한 그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 말을 뒤집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미리 겪은 변화를 바탕으로 한국이 미래의 로봇 시대를 대비할 지혜를 먼저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과거에 일자리 문제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시행한 어떤 대책이 유용했는지 반대로 어떤 정책은 역효과만 컸는지를 차분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로봇이 사람을 공격할 것인가, 위험한 로봇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SF 영화 속에 자주 나오던 문제도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는 아주 현실적인 주제다. 한국에서 로봇 팔에 맞거나 로봇 발에 밟혀 피해를 본 사람이 있을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발표 자료를 보면 2011년에서 2020년 사이 10년간 국내 산업 현장에서 로봇 때문에 다치는 등의 재해를 입은 사람 숫자는 355명이었다고 한다. 매년 35명이 넘는 사람들이 로봇 사용 중에 생긴 오류·오작동·실수 등의 문제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이 한국의 산업 현장이 처한 당장의 문제다.
![현대차가 지난 1월 라스베거스서 열린 CES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AP=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9/joongangsunday/20260209145238813mkwa.jpg)
앞으로는 로봇이 가정에서도 점점 많이 쓰일 것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에 로봇이 많은 만큼, 어떻게 더 안전한 로봇을 개발할 수 있을지 더 좋은 기준을 마련하고, 로봇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어떻게 평가하고 인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한국이 먼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 비행기의 안전 기준은 미국이 주도해 만들어 나갔고, 자동차의 환경 오염 기준은 유럽이 주도해 만든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지금의 한국은 로봇을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과 로봇과 관련된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해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주도적으로 답을 찾아야 할 위치에 있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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