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워싱턴포스트 기자 300명 해고, '협상카드'로 전락한 저널리즘

박재령 기자 2026. 2. 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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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디어 동향] 디애틀랜틱 "워싱턴포스트의 살해"
베이조스, 다른 사업 위해 WP 수단화한다는 비판 이어져
NYT 기자 "베이조스 일주일 수익이면 WP 손실 5년 감당"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워싱턴포스트 본사. 사진=워싱턴포스트

워싱턴포스트(WP)가 전체 기자의 40% 가량을 해고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표면적 이유로 내세웠지만 전문가들 시각은 다르다. 워싱턴포스트 사주이자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자신의 다른 사업을 위해 WP의 논조를 '친트럼프'로 바꾸는 등 신문을 수단화한 것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 CNN 등 외신에 따르면 WP는 지난 4일(현지시간) 경영·사업 부문 인력과 함께 뉴스룸 기자 800명 중 300명 이상을 해고했다. 맷 머레이 WP 편집국장은 회사가 너무 오래 큰 규모의 손실을 봤으며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사내에 설명했다. 또 생성형 AI 등장 이후 온라인 검색 트래픽이 지난 3년간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다고 전하며 “일일 기사 발행량도 지난 5년간 상당히 줄었다”라고 밝혔다.

이번 감원은 스포츠, 지역 및 국제보도 부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스포츠, 북섹션은 사실상 폐지된다. NYT는 “중동과 인도, 호주에 있는 기자와 편집자들이 해고됐다”며 “전쟁 지역에서 근무하던 우크라이나 특파원과 전속 사진기자도 해고됐다. 동계올림픽 취재를 위해 이탈리아에 파견된 한 스포츠 기자는 해고됐음에도 계속해서 기사를 송고하겠다고 밝혔다”라고 보도했다. 디애틀랜틱은 지난 4일 <워싱턴포스트의 살해>(The Murder of The Washington Post)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WP는 2024년 1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업계 침체를 예상하지 못하고 사업을 확장해 2023년부터 누적 손실을 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적자 폭이 감축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터 베이커 NYT 기자는 자신의 SNS(엑스)에 “WP를 인수한 후 베이조스의 순자산 증가액은 2242억달러”라며 “베이조스가 한 주에 버는 돈으로 (WP)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은 5년”이라고 했다. 금전적인 문제보다 WP를 살리는 것에 대해 베이조스의 의지가 없는 게 원인이라는 것.

▲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사진=flickr

실제 베이조스는 본인이 운영하는 다른 기업의 이익을 위해 WP를 이용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았다. WP가 유지하던 진보적 가치를 포기하고 '친트럼프' 논조를 보인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WP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36년 만에 처음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WP 내부 편집위원회에서 당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사설 초안을 작성했는데 베이조스가 이를 거부했다. WP 편집인은 사의를 표명했고 며칠 만에 WP 구독자는 수십만 명이 빠졌다.

베이조스는 지난해 2월 “우리는 개인의 자유, 자유 시장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칼럼을 매일 쓸 것”이라고 했다. 보수적 가치로 분류되는 원칙을 WP 오피니언 지침으로 선언한 셈이다. NYT는 당시 보도에서 “베이조스의 결정은 WP의 우경화를 뜻한다”라고 했다. 지난달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습했을 때 WP는 “의심의 여지 없는 전술적 성공”이라는 사설을 내기도 했다.

베이조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준비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기부하고, 아마존의 OTT 서비스 프라임 비디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에 우호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선 미 행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라 베이조스로선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WP 출신 애슐리 파커 기자는 디애틀랜틱 기고에서 “나는 WP의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할 수도 없다”면서도 “다만 WP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WP를 부실 자산 혹은 협상 카드로 취급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잃게 될지는 말할 수 있다. 특히 협상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과의 거래라면 더더욱”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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