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플랫][퇴근 후, 만나요]

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 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지만, 이 말을 진심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 생각하는 ‘잘 먹은’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운 한 끼가 아니라 몸에 힘이 남는 밥상이다. 대개 그런 식사에는 ‘손맛’이 있다. 문제는 그 손맛이 붙은 식당을 매번 찾아다닐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결국 자취생은 스스로 손맛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처음 상경했을 때의 나는 외식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고 처음 보는 음식도 많았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미하는 일이 즐거웠고 그만큼 엥겔 지수는 끝없이 올라갔다. 그러나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상경 2년 차 즈음부터 식사 후에 남는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녁을 밖에서 먹은 날이면 더부룩함 때문에 잠들기조차 어려웠다. 약속 자리에서 먹는 음식들은 대개 기름지고 자극적이었다.
그때부터 ‘식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를 좀 더 돌보자는 마음으로, 밥상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공허하지 않은 식사를 하기 위해서, 먹고 난 뒤에도 나를 지탱해 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퇴근 후의 요리는 고되지만 분명한 보상이 따른다.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쥐어짜 하나의 요리를 완성한다. 확실하게 나를 채워주는 그 감각 덕분에 조리 과정의 피로는 잠시 잊힌다. 어느 날은 외식을 할까 망설이다가 콩나물밥과 된장찌개를 끓였다. 아삭한 콩나물 위에 간장과 다진 고기를 얹고 된장찌개에는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맛을 냈다. 냉장고에 남은 채소들을 소진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여러 재료가 모여 오히려 깊은 국물 맛을 냈다. 이날도 식사를 마치며 자연스럽게 “잘 먹었다.”라고 내뱉었다.

집밥을 해 먹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다. 퇴근 후 요리를 하려면 그 이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주말 중 하루는 냉동밥을 넉넉히 만들어 두고 대파와 청양고추는 미리 썰어 얼려둔다. 마늘은 다져두고 채소들은 무르지 않게 손질해 보관한다. 문장을 쓰는 지금도 숨이 찰 만큼 손이 가는 일들이다. 이런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평일 저녁 비교적 빠르게 한 끼를 차릴 수 있다. 결국 주말 하루는 온전히 이 집을 돌보는 데 쓰이게 된다. 냉장고를 비우고 정리하는 일까지 포함하면 집밥은 결코 간단한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집밥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직접 손질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나 자신에게 내어주는 일.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주체성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이 자그만한 자취방에서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요리’라는 행위가 나는 참 좋다. 물론 매일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일만큼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흙감자.
플랫팀 인턴기자. 제철 밥상을 사랑하는 INFJ.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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