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벌려고 시작한 부업이 사기”… 마수, 간절함을 노린다[교도소 담장 위의 2030]
이혼후 홀로 아이 키우며 생활고
영상보면 돈준다는 광고에 부업
거액 입금 유도하는 팀미션 사기
빚갚으려 부모님 명의 집도 팔아
고수익 미끼로 빈곤청년들 낚아
수백만원 요구하고 대출 종용도
작년 팀미션 신종사기 4400건
2030 피의·피해자 갈수록 늘어


“생활비 조금 벌어 보려고 시작한 부업인데, 어린 아들에게 면목이 없네요.”
지난 1일 경기 지역 한 카페에서 문화일보 기자와 만난 양서정(가명·30대 여성) 씨는 이같이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양 씨는 3년 전 이혼하면서 홀로 8살 자녀를 키우고 있지만, 2020년 유방암으로 투병하면서 경력이 단절돼 생활고에 내몰렸다. 양육비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면서 매월 85만 원 상당의 집 월세는 물론 아들의 학원비 15만 원조차 제때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고통을 겪던 양 씨는 지난해 7월 ‘영상만 시청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SNS 광고를 보고 부업에 뛰어들었다.
한 줄기 빛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양 씨가 광고를 통해 접한 부업은 사기로 결론 났다. 광고 업체는 영상 시청을 인증하면 소액을 보상하며 신뢰를 쌓은 뒤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팀미션’에 참여하도록 유인했다. 팀미션은 범죄 조직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단체 대화방에 피해자를 초대한 뒤 “모든 사람이 같은 금액을 동시에 입금하면 더 큰 수익을 분배해 준다”고 속여 거액을 입금하도록 유도하는 신종 사기다. 이후에는 피해자에게 “입금자명이 잘못돼 모두가 원금을 잃게 됐다”고 압박, 추가 입금을 유도하고 피해자가 수익 출금을 요청하면 시스템 오류 등을 핑계로 시간을 끌다 잠적한다. 이 같은 수법에 속은 양 씨는 400만 원을 대출받아 업체에 송금했다.

양 씨는 현재 빚을 갚기 위해 부모님 명의의 집까지 팔았다. 한부모 가정 지원금, 취업지원금을 받아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며 생활하지만, 지원금도 2개월 뒤면 끊긴다. 양 씨는 “바보 같다고 욕하겠지만 너무 간절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간호조무사에 합격하면 가장 먼저 아들을 수학 학원에 다시 보내고 싶다”는 양 씨. 부업 사기 피해를 극복하고 자립이 가능할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돈’만을 좇아 국내외를 넘나들며 범죄 세계에 빠진 일부 청년들의 행태가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가운데 한쪽에선 양 씨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사기 피해를 입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6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발생한 팀미션 사기는 총 4400여 건으로, 피해액이 1300억 원을 넘었다. 검거된 피의자만 409명에 달하고, 피해자 대부분은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20∼30대 청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범정부 차원의 강력 대응으로 대중들의 경각심이 커지긴 했지만,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2030 청년은 여전히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 1만2339건 중 피해자가 ‘20대 이하’는 2948건으로 전체의 23.9%를 차지했다. 3162건으로 가장 많은 피해가 접수된 60대(25.6%)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30대도 1306건으로 10.6%에 달했다. 과거 고령층을 대상으로 했던 보이스피싱 범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자신을 검찰·금융감독원 직원으로 소개한 일당이 26세 청년에게 접근, 휴대폰에 감시용 앱과 가짜 은행 앱을 설치하게 한 뒤 며칠간 호텔에 머물게 하면서 수천만 원 규모의 비대면 대출을 받게 한 후 돈만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 이 청년은 보이스피싱 피해로 순식간에 빚쟁이가 됐다. 지난해 11월 쿠팡에서 337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후 한 20대 청년이 ‘쿠팡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로 대포통장이 개설됐다’는 검찰청 사칭 전화를 받고 1100만 원을 피싱범에게 송금했다 돈만 고스란히 날린 사례도 있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부업은 청년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며 “SNS상 주요 범죄 사이트 모니터링을 늘리고 플랫폼 업체의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기 범죄를 줄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양극화가 점점 심화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을 노리는 사기범들까지 기승을 부리다 보니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예 일·구직 활동을 포기하거나 한탕주의에 빠지는 세태마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모의 재력 차이가 자식 세대의 자산 격차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당한 노력에 의한 보상보다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좇는 일부 청년의 일탈을 과연 막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쉬었음’ 인구는 71만7000명을 기록하면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31만2000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쉬었음’은 취업자도 아니고, 구직 활동을 하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실업자도 아닌 비(非)경제활동 인구를 말한다. 이는 실업자와 함께 취업난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저출산이 장기화하면서 지난 22년간 20∼30대 인구는 1582만8000명에서 1258만3000명으로 20.5% 감소했는데도, ‘쉬었음’ 인구는 2.5배 가까이 폭증했다.
지역 청년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4분기 서울의 청년 고용률은 48.2%로 전국 평균(44.4%)을 웃돌았다. 반면 전북과 경남은 각각 38.5%, 40.6%에 그쳤고 광주는 37.1%로 서울과 11%포인트 이상 격차를 보였다. 전북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27) 씨는 “희망 연봉도 3000만 원으로 높은 수준이 아니지만, 지역에서는 이 정도 임금을 맞출 수 있는 일자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나마 나오는 일자리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렴한 임금을 받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한국인이라 손해 보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 청년들 중엔 무기력함에 빠져 “차라리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노동자이고 싶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가연(가명·36) 씨도 서울에서 지방의 본가로 내려왔다가 ‘낭패’를 본 케이스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2023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어 돌아온 김 씨는 직장을 구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피부 미용 분야를 전공해 피부관리숍, 병원, 뷰티 제품 판매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서울과 달리 지방은 병원·작은 피부관리숍이 전부였다. 2년 동안 수십 곳 면접을 봤지만, 기본적인 월차휴가조차 보장되지 않는 ‘블랙 기업’이 너무 많았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상반기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연소득 약 9300만 원 이상) 고소득 청년 가구와 소득 하위 40%(연소득 약 3900만 원 이하) 청년 가구의 자산 규모는 2019년 약 3.7배에서 2024년 4.7배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몇 년간 서울·수도권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부동산을 취득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간 격차가 불평등 심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10대 대기업에 재직 중인 한 청년 직장인은 이날 “이제 월급으로 큰돈을 벌거나 서울에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해졌다”며 “노동의 가치가 자산 가격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가끔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제 구조적으로 우리나라는 호황이 아닌 저성장 상태에 놓여 있다”며 “현재보다는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청년들이 쉬운 방법을 찾다가 범죄나 한탕주의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노동 가치에 비해 상당한 고수입을 제시하는 제안이나 구인공고 대부분이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절박한 상황에 놓인 청년이라면 쉽게 (사기에) 걸려들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빈곤의 위기에 더 노출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수빈·김지현·노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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