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과잉투자의 숙취…하이브리드차·ESS용 전환으로 속도 내야

한겨레 2026. 2. 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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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경제의 속살
엘앤에프는 2025년 12월29일 테슬라에 3조8천억원을 납품하기로 했던 계약과 달리 실제 납품된 규모는 ‘973만원’에 불과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공시했다. 2025년 3월5일 개막한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5’에 참가한 엘앤에프 부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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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한국 배터리 양극재 회사인 엘앤에프는 테슬라와 약 3조8천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일반적으로 양극재 회사는 배터리 회사에 소재를 납품한다. 배터리 회사는 양극재 등의 소재를 납품받아 배터리로 만들어 전기차 회사에 납품한다.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다. 양극재 회사로부터 직접 소재를 납품받는다는 것은 테슬라가 직접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이 뉴스는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테슬라가 직접 배터리를 만들면 배터리 회사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뭐든지 가능한 것인가? 엘지(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 파나소닉 등 테슬라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회사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엘앤에프는 테슬라로부터 선택받은 소재 회사로 주목받았다.

엘앤에프의 충격적 공시

계약대로라면 엘앤에프는 2025년 말까지 순차적으로 납품해야 했다. 공급계약 만료일을 이틀 앞둔 2025년 12월29일, 엘앤에프는 충격적인 내용을 공시했다. 3조8천억원을 납품하기로 했던 계약과 달리 실제 납품한 규모는 ‘973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테스트용 소재 외에 납품이 없었다고 했다.

한때 한국 배터리 산업은 ‘제2의 반도체’가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 전세계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로 전환될 것처럼 보였다. 유럽에서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고 미국도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기차 전환을 독려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내연기관 연구개발을 중단하고 전기차에 올인했다.

이런 흐름에서 배터리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었다. 오토모티브셀스컴퍼니(ACC), 노스볼트 등 유럽과 미국에서도 배터리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기업들은 있지만 모두 실패하고 파산했다. 성능이 뛰어난 한국과 가격이 낮은 중국의 배터리 경쟁은 흥미로운 논쟁거리였다.

자동차 회사들은 배터리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 수조원, 수십조원 규모의 주문을 넣었다. 배터리 회사들은 그만한 물량을 생산할 공장이 없었다. 막대한 설비투자가 이뤄졌고, 부족한 돈은 구매자인 자동차 회사들이 대기도 했다. 배터리 회사들은 또 그만한 규모의 소재를 구매하기 위해 주문을 넣었고, 소재 회사들도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공장만 완성되면 떼돈을 벌 것 같았다.

전기차로 전환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가격이 비쌌고, 수익성은 낮았으며, 충전기 등 인프라는 부족했다. 도전적 소비자는 전기차를 선택했지만 대중적 소비자는 여전히 내연기관차를 선호했다. 자동차 회사들도 전기차로 전환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자동차 브랜드가 있는 국가들은 전기차 전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결국 유럽은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정책을 보류했다. 전기차 전환에 실패한 것은 미국 ‘빅3’ 자동차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전기차 보조금을 없앴고 환경규제도 완화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완전 전환을 포기했고, 배터리 공급 계약은 공수표가 됐다. 지어진 공장의 가동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짓던 공장의 공사는 멈춰버렸다. 가장 다행인 사례는 짓기로 해놓고 첫 삽도 안 뜬 공장이다. 업계는 엄청난 손실이 겉으로 드러날까봐 쉬쉬했다. 테슬라가 엘앤에프로부터 계약된 물량을 구매하지 않은 일은 지금 발생한 것이 아니다. 2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뤄졌어야 할 납품이 되지 않았는데,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공개한 것뿐이다.

엘앤에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LG엔솔은 13조원 규모의 공급계약 해지 사실을 공시했다. 독일 배터리 모듈 조립사인 ‘프로이덴베르크 배터리 파워 시스템’(FBPS)과 맺은 3조9천억원, 포드와 맺은 9조6천억원 규모의 계약이 해지됐다. 포드는 주력으로 팔던 전기차 에프(F)-150 라이트닝을 단종하고, 미래 전기차 개발도 중단했다. 앞으로 전기차는 만들지 않고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하겠다고 한다.

포드가 전기차를 포기하자 피해를 본 것은 LG엔솔만이 아니다. 에스케이(SK)온은 포드와 아예 공동투자를 해서 블루오벌SK라는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이 합작사는 미국에 켄터키 1·2공장과 테네시 공장 등을 짓고 배터리를 만들어 포드가 사가기로 했다. 포드가 전기차 전환을 포기하면서 SK온과 포드는 갈라서기로 했다. 배터리를 사갈 생각이 없으니 배터리를 만들 이유도 없다. 6조원 규모의 부채와 가동이 멈춘 공장은 배터리를 사가지 않은 포드가 떠안기로 했다.

배터리 산업의 ‘고해성사’는 이어지고 있다. LG엔솔은 지엠(GM)과의 공동투자로 3개 공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1·2공장은 현지 직원을 대규모로 줄이고 가동이 중단돼 있다. 가동 재개 시점은 계속 연기되고 있다. 3공장은 LG엔솔이 인수하기로 했다. GM은 어차피 사가지 않을 테니, 도요타에 판매할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유럽과 미국의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이 포함된 스텔란티스그룹은 삼성에스디아이(SDI)와 2개, LG엔솔과 1개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SDI 공장 2개 중 1개는 ‘다행히’ 첫 삽도 뜨지 않았다. 1공장은 4개 라인이 있는데 그중 전기차용 배터리는 1개 라인에서만 생산한다. 나머지 3개 라인은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전환했다. LG엔솔과의 합작 공장도 ESS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에 있는 공장들의 가동률도 50%에 미치지 못한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감당 못할 자금까지 투입해 지은 공장들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손실은 불가피

한국 배터리 회사의 ‘잘못’은 아니다. 전세계 국가가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전기차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연기관차 시대가 종결되면 가장 타격받을 산유국들조차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 석유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며 녹색전환 정책을 추진했다. 배터리 공장을 짓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틀어졌고, 손실은 불가피하다.
도전적 소비자는 전기차를 선택했지만 대중적 소비자는 여전히 내연기관차를 선호하면서 배터리 시장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26년 1월2일 서울 한 대형마트 전기차 충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앞으로가 중요하다.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로 방향을 설정했다. 하이브리드는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운용이 가능하며, 기존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대부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배터리 회사들에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다. 하이브리드차에는 배터리가 2㎾h밖에 안 들어간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이보다 훨씬 큰 20~30㎾h의 배터리를 사용한다. 60㎾h 이상 사용하는 전기차에 비하면 적지만, 하이브리드에 비하면 훨씬 많다. 배터리 회사는 자동차 회사가 앞으로 만들어갈 플러그인하이브리드에 적합한 배터리를 적시에 경쟁력 있게 공급해야 한다.

또 다른 수요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이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과 바람 등 자연 상태에 따라 전력 생산이 달라진다. 전기의 생산 시점과 사용 시점이 다를 때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ESS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될수록 ESS 수요도 늘어나고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처럼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ESS 주문이 늘고 있다.

ESS용 배터리는 자동차용처럼 고성능일 필요는 없다. 자동차용 배터리는 한정된 공간에 탑재되기 때문에 에너지밀도가 높아야 한다. 속도를 낼 때 강력하게 힘을 내야 하므로 출력 변동성에도 잘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ESS용 배터리는 전기를 담았다가 내보내는 정도의 역할만 하기 때문에 고성능일 필요가 없다. 성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서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고성능 삼원계(NCM) 배터리보다 저렴한 인산철(LFP), 미드니켈 등이 더 유리하다.

ESS 시장에서 한국의 공간

그동안 한국 배터리 회사들은 고성능 삼원계를 중심으로 배터리를 개발했다. ESS용 배터리를 개발하고, 공장도 ESS용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인산철 배터리는 중국이 잘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한국의 경쟁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산 배터리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중국산 배터리만 판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 배터리도 충분히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낮은 원가의 배터리가 주력이 되면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배터리 셀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냉각시스템, 배터리 관리 솔루션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과잉투자가 해소되는 과정에서 자동차, 배터리, 소재 회사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숨기려 했던 부실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며, 이미 일어난 일을 부정할 수 없다. 장밋빛 축제의 숙취는 뼈아프다. 하지만 방향은 정해졌고 이제 달라진 현실에 맞춰 빠르게 대응해나가야 한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권순우는 경력 15년의 현직 기자다. 금융, 산업 등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머니투데이방송’을 거쳐 현재는 ‘삼프로TV’에서 ‘압도적 권순우: 압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격변과 균형’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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