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138> 美 SW주 연일 추락...자금줄 사모펀드도 타격 지난달 앤스로픽 ‘클로드 코워크’ 열풍이 촉발 코딩 못 해도 법률·세무 등 업무 앱 개발 가능 구독 수익 충격 불가피...젠슨 황은 “비논리적” 오라클·구글은 또 과잉투자 논란...기술주 압박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 하스 CEO는 최근 소프트웨어 주식 투매 현상을 두고 “사람들이 다른 것과 혼동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PA연합뉴스
뉴욕 증시에서 소프트웨어(SW) 관련주가 지난달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워크’ 출시를 기점으로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코딩 작업을 하지 못하는 일반 직장인도 손쉽게 업무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되면서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법률·세무 등 고급 영역 소프트웨어를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기술이지만 기존 소프트웨어 업계를 바라보는 월가의 시각은 불안하기만 하다. 구독과 사후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수익 구조가 어떤 식으로든 타격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월가의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활용성을 지원하는 기능에 더 중점을 둘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소수 의견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식시장을 강타한 AI 과잉 투자 ‘거품론’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종말론’이 기술주를 한동안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세일즈포스 등 SW주 연일 추락...자금 댄 사모펀드까지 줄줄이 타격
앤스로픽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며칠 사이 뉴욕 증시에서는 소프트웨어 관련주들이 예외 없이 급락하고 있다. AI가 1980년대부터 정보기술(IT)의 상징이었던 소프트웨어의 시대를 끝낼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세일즈포스(-6.09%), 서비스나우(-9.94%) 등 주요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주가는 돌연 급락했다. 전날인 28일 장 마감 후 발표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실적에서 클라우드 부문 성장성이 둔화된 점이 직접적인 영향을 줬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프트웨어 관련주의 부진으로 이날 나스닥종합지수도 0.72% 하락했다.
이후에도 연일 약세를 보이던 소프트웨어 관련주들은 이달 3일에도 한 차례 더 폭락했다. 세일즈포스가 6.85% 하락한 것을 비롯해 인튜이트(-10.89%), 코그니전트 테크놀로지(-10.14%), 서비스나우(-6.97%), 어도비(-7.31%) 등이 줄줄이 하락세를 이어갔다. 여행 예약 플랫폼 익스피디아도 15.26% 급락했고 팩트셋 리서치(-10.51%), S&P 글로벌(-11.27%) 등 데이터 분석·조사 업체들도 크게 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프트웨어, 금융 데이터, 거래소 종목을 반영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2개 지수에서만 이날 약 3000억 달러(약 435조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흔들리자 아레스 매니지먼트(-10.15%), 블루아울 캐피털(-9.76%), 글로벌매니지먼트(-4.76%), KKR(-9.69%), 블랙스톤(-4.43%) 등 이들에 투자금을 댄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주가도 큰 타격을 입었다. WSJ에 따르면 월가의 사모펀드들은 그간 소프트웨어 업종의 사업 모델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고 투자금을 늘렸다. 소프트웨어 업계에 인수합병(M&A)가 활발해진 사이 지분을 직접 인수하거나, 대출로 회사를 인수한 뒤 해당 기업의 자산이나 수익으로 빚을 상환하는 차입매수(LBO)로 자금을 지원했다. WSJ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투자에서 소프트웨어 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을 약 20%로 추산했다. 소프트웨어와 사모펀드의 주가가 흔들리면서 3일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0.84%, 1.43% 뒷걸음질쳤다.
소프트웨어 업종의 충격은 4일에도 계속됐다. 모바일 광고 회사 앱러빈은 하루 만에 16.12%나 추락했다. 이 여파로 S&P500과 나스닥지수도 0.51%, 1.51%씩 재차 내렸다. WSJ은 나스닥지수가 이틀 연속 1% 넘게 하락한 것은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처음이라고 진단했다.
소프트웨어의 주가 부진은 5일에도 가시지 않았다. 세일즈포스와 앱러빈의 주가는 이날도 각각 4.75%, 3.13% 하락했다. KKR(-5.34%), 블루아울 캐피털(-3.57%), 아레스 매니지먼트(-11.19%) 등 사모펀드들의 주가도 크게 빠졌다. S&P500과 나스닥지수도 1.23%, 1.59%씩 주저앉았다.
1월 12일 앤스로픽 ‘클로드 코워크’ 열풍이 촉발...코딩 못 해도 업무 프로그램 개발 가능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 그는 애초 오픈AI에 몸담았다가 회사의 영리성 추구에 반대해 여동생인 다니엘라 아모데이 사장과 2021년 경쟁사 앤스로픽을 창업했다. 사진 제공=세일즈포스
소프트웨어주의 폭락에는 앤스로픽이 지난달 12일 선보인 클로드 코워크가 촉매제가 됐다. 클로드 코워크는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는 사람도 AI와 대화하는 것만으로 문서 요약, 데이터 분석, 계약서 검토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금세 만들 수 있는 유료 서비스다.
앤스로픽은 앞서 지난해 5월 클로드 코워크의 전신 격인 ‘클로드 코드’를 내놓으며 혁신을 예고한 바 있다. 클로드 코드는 개발자들을 도와 프로그래밍 코드를 짜주는 기업용 AI 서비스다. 클로드 코드는 AI로 프로그래밍 업무를 처리하는 ‘바이브 코딩’ 유행을 불렀다. 클로드 코드도 클로드 코워크처럼 AI와 대화하며 작업하는 방식을 따르나, 명령어 기반의 프로그래밍 화면인 ‘터미널’을 띄워야 한다는 한계는 있었다. 클로드 코드까지는 인간 개발자가 코딩 결과물을 검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클로드 코워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누구든 웹브라우저에서 AI와 대화하며 바로 업무 자동화 도구를 생성할 수 있게 했다. 또 이를 업무용 메신저 등 직장인이 많이 쓰는 생산성 소프트웨어에 연계할 수 있게 했다. 앤스로픽의 AI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반복해 복잡한 지식을 익히는 강화 학습으로 코딩 역량을 키운다. 앤스로픽은 현재 자사 AI 도구와 시스템의 코드 가운데 70∼90%를 사람이 아닌 AI로 만든다. 최근 앤스로픽은 여기에 법률적 계약을 검토하고, 관련 문서 초안을 작성하는 등의 기능까지 추가했다.
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앤스로픽이 클로드 코워크로 만든 앱을 기존 소프트웨어에 손쉽게 연계시킬 수 있는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 기술을 무료(오픈소스)로 풀어 사용자층을 늘렸다고 진단했다. FT는 “AI가 그럴듯하게 틀린 코드를 만드는 ‘환각(hallucination)’ 위험도 여전히 있어 금융권 등 규제가 강하고 오류에 민감한 업종에서는 말썽과 비효율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클로드 코워크가 출시 직후부터 돌풍을 일으키자 월가와 업계에서는 범용 AI가 곧 법률·세무 처리 등 고가의 전문 소프트웨어까지 대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싼 구독료를 기반으로 한 전문 소프트웨어 업계의 수익 구조를 단번에 뒤흔들 수 있는 기술이라는 평가다. 이전까지 변호사 등 전문직에 의존하던 데이터베이스나 업무용 소프트웨어도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물론, 소프트웨어의 미래와 관련해 AI가 반드시 독(毒)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소프트웨어 주식 투매 현상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인물이다. 로이터·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황 CEO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스코 AI 서밋’ 행사에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AI가 도구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이는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황 CEO는 “인간이든 로봇이든 도구를 사용할 것인가, 재발명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도구를 사용한다고 할 것”이라며 “AI 혁신도 도구를 사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는 그 도구들이 명쾌하게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소프트웨어를 대체하기보다는 기존 도구를 더 잘 활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황 CEO는 엔비디아 내부에서도 AI 도구를 도입한 결과 직원들이 반도체와 컴퓨터 시스템 설계라는 핵심 역량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FT에 따르면 영국계 반도체 설계 기업인 ARM의 르네 하스 CEO도 4일 소프트웨어 관련주의 주가 하락에 대해 “미시적 히스테리”라고 꼬집었다. 하스 CEO는 “기업 AI 도입 현황을 보면 우리는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근접하지도 못했다”며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른 것을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고도 지적했다.
젠슨 황은 “SW 주식 투매는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 비판...당분간 기술주 압박 거셀 듯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AFP연합뉴스
당장 돈을 잃게 된 사모펀드 운용사들도 시장의 불안 심리를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5일 WSJ 보도에 따르면 사모펀드 KKR의 스콧 너털 공동 CEO는 이날 실적 발표회에서 “소프트웨어 부문은 KKR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의 7%에 불과하다”며 “시장은 우리 업계와 관련한 불안에 습관적으로 과잉 반응한다”라고 말했다. 너털 CEO는 “최근의 변동성은 잠재적인 혁신적 파괴 위험에 대한 시장의 새로운 불안을 반영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불안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지난 몇 년간 AI가 주도하는 경쟁과 파괴 위험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사모펀드 아레스 매니지먼트의 마이클 아루게티 CEO도 이날 실적 발표회에서 “소프트웨어 부문의 투자 비중은 전체의 6%에 불과하다”며 “AI로 인한 파괴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비중은 매우 작다”고 해명했다. 사모펀드 블루아울 캐피털의 마크 립슐츠 공동 CEO도 같은 날 실적 발표회에서 운용 자산의 약 8% 정도가 소프트웨어 기업 관련 대출에 노출돼 있다면서도 “우리에겐 ‘위험 신호(red flag)’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AI가 올해에도 증시의 최대 화두가 되면서 관련 과잉 투자 논란도 멈추지 않는 분위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오라클 등 5대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 업체들은 지난해 1∼11월 총 1210억 달러(약 177조 원)의 투자 등급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는 최근 5년간 평균 연간 발행치(약 280억 달러)의 4배가 넘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1일 로이터통신은 이 가운데 기업용 소프트웨어·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오라클이 올해 450억∼500억 달러(약 65조 7000억∼73조 원)의 자금을 회사채와 주식으로 조달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라클은 조달 목표액의 약 절반은 지분연계증권과 보통주 발행을 통해 확보한다. 이 방안에는 의무전환우선주(MCPS)와 최대 200억 달러(약 29조 2000억 원) 규모의 신규 유상증자가 포함될 예정이다. 나머지 절반은 선순위 무담보 등 채권 시장에서 조달한다.
오라클은 현재 오픈AI를 위한 AI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자금을 집어넣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오라클의 부채는 1050억 달러(약 155조 원)에 이른다. 이는 1년 전 780억 달러에서 34.6%나 증가한 수치다. 모건스탠리는 오라클의 부채가 2028년 29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도 4일 장 마감 뒤 실적 발표에서 올해 자본지출(CAPEX) 규모를 1750억~1850억 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약 915억 달러의 거의 두 배 수준에다 시장 예상치였던 1195억 달러도 크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앞서 구글은 지난해 11월 ‘제미나이 3.0’ 출시와 함께 값비싼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아닌 텐서처리장치(TPU)로 AI 투자 비용을 크게 절감할 것이라는 기대를 크게 받은 바 있다. 알파벳의 주가는 이에 5일 장중 4% 넘게 급락하다가 0.54% 하락으로 마쳤다.
앞으로 AI가 소프트웨어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AI에 새 기능이 급속도로 추가되고 있는 만큼,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둘러싼 투자심리는 이에 앞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기술주의 발목을 잡았던 과잉 투자 거품론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업계 종말론이 올 한 해 증시의 부담 요인이 될 공산이 커졌다.
트럼프 스톡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