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이슈와 기본소득, 묵묵히 그러나 반드시” [안녕 진화위⑮]

고경태 기자 2026. 2. 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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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진화위⑮
국회 행안위의 ‘과거사 잔다르크’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안녕’은 작별이자 환영의 인사다.

5년간 과거사 조사기구로 활동해온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지난해 11월26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오는 2월26일 제3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다.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시작된 ‘안녕 진화위’는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 나서는 부정기 연재물이다. 과거사 조사와 규명에 진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3기로 가는 여정의 의지와 기대를 담는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
“여순사건에 관심을 가진 국회의원은 용혜인 의원밖에 없더라고요.”

지난해 12월13일 강원대 춘천캠퍼스에서 열린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에서 ‘여순사건의 현주소’를 주제로 발표한 이형용 전 여순사건 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 유족 대표 단원의 말이다. 그는 용혜인 의원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서 처음으로 여순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문을 했다면서 국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과거 국가폭력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절박하게 목소리를 내는 현장마다 용혜인(36) 의원(비례대표, 기본소득당 대표)이 있었다. 형제복지원, 영화숙·재생원, 선감학원, 삼청교육대, 해외입양, 강제징집, 군 의문사, 여순사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등 수많은 사건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과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과 토론회, 대규모 집회를 열 때 그는 자리를 지키며 힘을 보탰다. 진실화해위에서 농성하던 한국전쟁기 사건 고령의 유족들이 경찰에 사지가 붙들려 강제퇴거된 직후 즉시 달려와 규탄 발언을 해준 정치인도 용혜인 의원뿐이었다. ‘과거사의 잔다르크’라 이름붙일 만 하다.

지난해 10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올바른 3기 진실화해위를 뒷받침할 과거사법 개정 촉구 범시민사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용혜인 의원.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용혜인 의원을 만났다. 과거사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면서 피해자들과 단체 활동가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국회 행안위에서 극우 성향으로 평가되는 김광동·박선영 위원장에게 매서운 질타를 하고 “활동기간 7년과 조사권 강화” 등 가장 전향적인 내용의 과거사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한 의원이었다. ‘기본소득당 대표’라면 기획재정위원회가 가장 어울리는 상임위일 텐데, 어쩌다가 행안위에 와서 활약하게 됐는지도 궁금했다.

용혜인 의원은 이에 대해 “어떤 운명이었다”며 에피소드 하나 들려줬다. 21대 국회 전반기에 기획재정위에서 활동했던 그는, 2022년 7월 행안위로 배정됐을 때 반발했다. 상임위 재배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10여일간 농성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사진기자에게 포착되는 이른바 ‘체리 따봉 사태’에 관심이 쏠려 농성도 유야무야됐다. 그때만 해도 행안위로 이동이 용혜인 의원에게 새로운 시간과 기회가 될 줄 몰랐다. 기본소득과 국가폭력 이슈가 기막힌 조화를 이룰 줄 몰랐다.

용혜인 의원은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시절인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가만히 있으라’ 추모시위 제안 등의 활동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뒤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는데, 21·22대 총선에서 각각 야권 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로 원내에 입성했다. 선거가 끝난 뒤 기본소득당으로 복당해 대표를 맡았다. 현재 당원 수는 2만5000여명이다.

용혜인 의원은 인터뷰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서 “묵묵히, 그러나 반드시”라는 자신의 의정슬로건을 강조했다. 과거사와 진실화해위에 대한 그의 진심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가장 전방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계세요. 특별한 배경이나 동력이 있을까요?

“제가 행안위에서 일한 지 벌써 5년차예요. 여기 오고 나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광동·박선영 위원장 체제 겪으면서 ‘내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왜 좀 더 빨리 못 봤을까’ 싶을 만큼 상황이 심각했어요. 진화위도 문제가 많았지만, 여순사건위원회도 재작년 여름 진상규명률이 한 자릿수였어요. 그 이야기를 국회에서 하니까 동료 의원님들도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여순사건법(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발의하고, 국감 때 지적도 많이 하고, 진화위법(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기본법, 과거사법) 전부개정안도 발의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어떻게 보면 운명이에요. 사실은 행안위에 오고 싶지 않아 2022년 7월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상임위 재배정을 요구하며 10여일간 농성도 했거든요. 비교섭단체 의원은 상임위를 본인이 고를 수 없어요. 제가 기본소득당이니까 전문성을 살려 21대 국회 전반기에 속했던 기획재정위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뜬금없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행안위에 오게 된 거였죠. 그때 농성 중에 ‘체리 따봉 사태’(국회 본회의장에서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터지면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행안위에 왔어요. 그런데 행안위에 와서 과거사 문제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됐죠.”

― 어떤 조건인가요?

“김광동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과거 5·18과 4·3과 관련해 했던 역사왜곡 발언들이 공개됐고, 그 발언을 똑같이 이어갔고, 국정원 출신 조사국장이 마스크 벗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잖아요. 제가 12·3 계엄 직후에 블로그를 통해서 메시지를 하나 받았는데 선감학원 피해자분의 따님이었어요. 본래 계엄 다음날인 2024년 12월4일에 선감학원 피해자에 대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사과가 예정돼 있었는데, 이게 취소돼 버렸거든요. 그런데 피해자인 아버지가 계엄 직후에 돌아가셨고, 그 이후에야 아버지가 선감학원 피해자인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사연을 들으면서 진화위법(과거사법) 전부개정안을 만들게 됐는데, 좀 더 절박한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나요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역사와 민주주의 이런 거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그냥 일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피로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이 와 닿지 않았어요.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5·18 광주항쟁 추모 기행을 가기 전 황석영 선생님의 ‘너머너머’(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역사책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간단한 몇 개의 문장으로 서술돼 있거든요. 그 문장 뒤에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알게 됐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도청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헤아려봤지요.

세월호 참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과거 국가와 국민들 사이에 벌어졌던 여러 문제들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비극이 반복된다는 게 재난 참사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사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많이 되새겼어요.”

대학생 시절이던 2015년 세월호 특별법 단식농성때의 모습. 용혜인 의원실 제공
대학생 시절이던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있으라’ 침묵행진을 제안하고 시위에 참가한 모습. 용혜인 의원실 제공

―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과거사법이 통과될 때는 현장에 안 계셨어요.

“전국 순회 의정보고회를 다니고 있어요. 오늘(3일)이 23번째 의정 보고일인데요. 그날도 본회의가 갑자기 잡혔는데, 전북 완주랑 군산에서 약속한 의정보고회 일정이 있어 본회의장에 못 갔어요. 그 주간에도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께 꼭 이번 본회의에 법안 상정해달라고 요청드렸고 통과는 예정되어 있었지만, 막상 표결 현장에 갈 수 없어 서운했어요. 나중에 유족분들이 본회의장에서 만세하는 영상을 봤는데 정말 기쁘고 뭉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과거사법 전부개정안에 반대표 던진 분이 8명입니다. 개혁신당 이준석·천하람 의원과 국민의힘 나경원·김민전 의원도 포함됐는데요.

“궁금해요. 합리적 보수를 자처했던 이준석 대표, 천하람 의원과 국회에 백골단을 부른 김민전 의원, 윤석열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나경원 의원이 사실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게 진화위법(과거사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에서 보였다고 생각해요. 이준석 대표와 천하람 의원도 12·3 비상계엄 당시 군인들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에 의해 목숨을 건진 사람들인데 반대표를 던졌단 말이죠. 여순사건 피해자들이 이후 7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평생을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조금만 있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거라고 봐요.”

― 국회에서 통과된 과거사법 개정안을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법안을 처음 발의할 때는 이렇게 많은 내용을 담아내리라고 전망하지 않았어요. 피해자분들, 활동가분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진화위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담아보자고 했어요. 사실 제일 중요한 성과라고 여기는 건 조사권 강화입니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고발 및 수사 의뢰가 가능하게 된 조항들이죠. 군 의문사 사건 같은 경우는 국방부나 정보·수사기관의 비협조와 은폐 때문에 진상규명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는 가장 중요한 조항이었거든요. 조사권 강화를 포기하면 진화위가 출범해도 미제사건은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족분들이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아마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장이었던 윤건영 의원님 귀에는 딱지가 앉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운데)가 2024년 7월3일 오후 진실화해위가 입주한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을 강제퇴거시킨 김광동 위원장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 아쉬운 점도 있을텐데요.

“너무 늦게 통과됐어요. 제가 낸 개정안에는 지난해 12월1일이 3기 출범일이었는데요. 전국 순회 의정보고회 하느라 지역에 다니면 정말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이 많이 와주세요. 오셔서 하는 말씀이 ‘진화위법 도대체 언제 통과되느냐’ 였습니다. 법 통과 뒤 쫓기듯 출범 준비하느라 인력이나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잖아요. 무엇보다도 집단 수용 시설에서의 인권 침해와 해외 입양까지 진상 규명 범위가 확대됐고 조사권한도 많이 늘어나서 조사3국 신설이 반드시 필요한데, 행안부에서는 조사3국 신설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확답하기 어려우면 언제까지 조사3국을 신설하고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 되는데, 그조차 이야기하지 않고 있어요.”

― 2기 진화위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건이 있을까요?

“김광동 전 위원장이 부역자 몰이를 했던 민간인 학살 사건이 가장 눈에 밟힙니다.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4명, 그리고 영천 국민보도연맹과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6명입니다. ‘암살대원’이나 ‘살인·방화·약탈 등 좌익활동’이라는 불명확한 경찰의 사후기록을 근거로 진실 규명이 보류됐잖아요. 공문서에 반하는 진술이나 정황, 전문가 자문을 다 확보해 놓고도 소위원회 상정 자체를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요. 국가가 민간인을 학살해놓고 부역자라는 낙인을 씌운 건데, 그 낙인을 그대로 활용해서 진화위가 진실 규명을 보류했다는 건 국가폭력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과 지금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해외 입양 사건도 꼭 짚어야 하는데요. 신청된 367건 중 56건 빼고 다 ‘조사 중지’ 처리가 됐어요. 해외 입양 사건은 2기 진화위의 한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봐요. 조사권이 부족해 민간 시설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하기가 어려웠어요. 해외 입양은 서류나 신원 조작의 기초 위에서 진행된 경우가 많은데, 이 증거는 당연히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3기 진화위는 강화된 조사권을 활용해서 증거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할 거 같아요.”

2017년 알바노조 활동 당시 최저임금 1만원 1만시간 단식 기자회견. 용혜인 의원실 제공

― 3기 진화위에서 진실규명의 시간적 범위가 2001년까지 연장이 되었어요. 어떤 사건들을 진실규명해야 할까요.

“입양 기관과 수용 시설의 인권 침해 사건들이 좀 잘 마무리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성년자 입양 시에 친생 부모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입양특례법 개정이 2012년에 이루어졌어요.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에도 불법 입양으로 인해 발생한 인권침해가 있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거든요. 집단수용시설 인권 침해 사건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게 많고요. 1994년 새희망정신요양원 사건이나 1997년 장항 수심원 사건 등 민주화된 이후에도 시설 사건이 쭉 이어져 왔어요.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추정합니다.”

― 국가 차원의 과거사 문제 해결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현재의 신청주의 접근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먼저 짚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부산에서 형제복지원과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분들 뵀을 때도, 지금은 피해자가 피해자를 찾아다니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씀을 해주시거든요. 이제 국가가 직접 피해자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죠. 개별 사건에 한해서 피해자 여부를 가리는 것만으로는 국가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제가 냈던 법안에서 진화위 활동기간을 7년으로 길게 잡았던 것도 중장기적으로 국가 폭력의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실체를 밝히기 위한 진상 규명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어요.”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열린 개혁진보 4당 정치개혁 연석회의 면담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맨 왼쪽),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와 공동요구안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용혜인 의원은 어떤 정치인인가요?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 포기하지 않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고 이해찬 전 총리님 말씀 중에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게 ‘포기하지 말아라.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라는 거였어요.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많은 독립운동가가 변절했던 것도 포기했기 때문이고, 포기하니 좌절하게 되고, 좌절하니 변절하게 된 거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속도가 느릴 수는 있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매일 애써 왔어요. 진화위법(과거사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도 ‘끈질긴 사람이 결국 이긴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운 시간이었어요.”

― 당명은 기본소득당이에요.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억압받거나 혹은 인권침해를 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정당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 현장에서 의정보고회를 해도 그런 분들이 자리를 가득가득 채워주세요. 그렇게 국가폭력 피해자분들과 늘 함께 하는 정당이라고 하는 게 자부심이고요. 여순사건법도 그렇고 진화위법(과거사법)도 그렇고, 의석이 한 석밖에 없는 작은 정당이지만 그 어떤 큰 정당보다 나름대로 전문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빌려 진화위법(과거사법) 통과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많이 고생해 준 우리 의원실의 양지혜 선임 비서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 김영헌씨가 유가족 편지를 낭독하는 동안 유가족 옆에서 용혜인 의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기본소득당의 정체성이 흐려진다고 비판하는 분들은 없나요?

“안 계세요. 과거사 이슈도 열심히 하지만, 기본소득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토지배당법안과 탄소배당법안, 기본소득 공론화와 관련된 법안도 발의했지요. 공론화 법안을 설명해 드리면, 기본소득이란 그냥 사람들한테 얼마씩 돈을 주겠다는 게 아니라 노동·복지·조세·산업정책 등 사회 전반의 계약을 새롭게 하는 거거든요. 여기에 대해 국민과 차분하게 숙의할 수 있는 과정을 한 1년 정도 거치면 좋겠다 생각해서 ‘기본소득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넣었어요.

또 광주·전남 통합특별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번 주부터 진행이 될 텐데 기본소득당 법안을 별도로 준비해서 그 안에서 기본 소득이나 기본 사회 관련된 내용도 충분히 다뤄질 수 있게끔 제안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당이 기본 소득만 하지 않고 과거사나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것을 기본소득당 당원들은 많이 자랑스러워하시죠. 저는 기본소득당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보편을 제안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성찰 없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국가 폭력 이슈와 기본소득은 맞닿아있어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그런 정치인이 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 못다 한 말씀이 있으면.

“제 의정보고서에 들어간 슬로건이기도 한데요. ‘묵묵히, 그러나 반드시’라는 말이 오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계속 생각났어요. 국가폭력 피해자분들, 유가족분들, 활동가들이야말로 ‘묵묵히,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 함께 하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성장했어요.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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