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드러낸 두 명의 진보교육감·전교조…공익신고자 지혜복의 740일 [뉴스AS]
‘제도권’ 된 진보교육계에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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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교육감은 피해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23명의 연행자, 부상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제대로 하길 바랍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교사 지혜복씨가 말했다. 학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뒤 부당 전보·해임을 당했다며 서울시교육청과 싸워온 지씨는 지난달 29일 법원에서 전보 취소 판결을 받았다. 2024년 1월21일,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740일 만에 나온 판단이다. 다만 서울시교육청은 전보 취소와 별개로 해임 취소 소송 결과가 나와야 복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등 제도권의 한 축이 된 진보교육계의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사건의 시작은 2023년 5월이다. 서울의 ㄱ 중학교 상담부장이었던 지씨는 여학생 다수가 남학생들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익명 설문을 진행해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 지씨는 학생들을 대리해 학교 폭력 신고를 했지만 학교 생활안전지도부장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의 신원이 노출됐다. 이에 지씨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학생인권침해 구제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이듬해 2월 ㄱ 중학교는 교사 정원 감축을 이유로 지씨를 전보 발령했다. 지씨는 부당 전보라며 1인 시위를 벌였고, 출근을 거부한 것은 무단결근이라는 이유로 같은 해 9월 해임됐다.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한 지씨의 싸움은 소송전과 충돌로 이어졌다. 지씨는 전보 무효 소송과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시중부교육지원청은 지씨를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해임 이후 지씨와 시민단체들이 꾸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왔고, 지난해 2월에는 교육청 내부에서 농성을 벌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교육청과 지씨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2월28일 ‘지혜복씨의 불법시위 관련 사실관계를 안내 드린다’는 제목의 12쪽 짜리 설명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며 지씨의 주장에 반박했다. 법원 판결 직전인 지난달 27일에도 충돌이 이어졌다. ‘서울시 학생인권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을 향해 공대위 활동가들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정 교육감은 “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검토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공대위가) 이런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맞섰다.
지씨의 싸움이 길어진 데에는 서울시교육청의 소극적 행정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씨는 전보 직후 서울시교육청에 자신을 공익제보자로 인정하고, 불이익 조치인 전보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부패방지법을 근거로 지씨를 공익신고자로 보기 어렵다고 했고,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더라도 증거가 없어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전보 무효 소송에서 지씨의 손을 들어준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다르게 봤다. 재판부는 지씨가 공익신고자 보호법에서 정한 공익신고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며, 공익신고가 있었던 2년 이내에 전보 처분이 이뤄졌으므로 이는 불이익 처분이라고 봤다. 교육청에서 주장한 증거 불충분에 대해서도 “증거를 첨부해 제출하도록 한 것은 조사과정에서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고 그 자체로 공익신고의 요건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2024년 8월 변호사 77명이 지 교사의 공익신고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판단이 잘못됐다며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법률의견서와도 같은 논리다.
공대위 쪽은 조희연 전 교육감이 2024년 당시 직권 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상황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전보 직후인 2024년 2월 교육청은 지 교사가 공익신고자가 맞는지 외부에 법리 검토를 받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부당 전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점을 놓치면서, 사건은 더욱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조 전 교육감이 직을 상실하면서 보궐 선거로 당선된 정 교육감은 같은 이유를 들며 소극적으로 나섰다. 지 교사의 요구대로 공익제보자 인정과 전보·해임 번복 결정을 할 경우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 교육감은 재판부의 결과가 나온 다음 날에야 항소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이번 판결의 취지를 엄중히 받아들여 공익신고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조 전 교육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전보라는 교직 사회의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 숙고하다가 이렇게까지 긴 세월 동안 지혜복 선생님과 공대위 여러분께 고생을 끼쳐 드렸다”며 “부당전보 문제는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고, 당시에 공익제보자 인정 등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서 여러분들에게 인고의 시간을 갖게 한 점에 안타까움과 사죄의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진보교육계 다수가 이번 사태에 침묵한 점도 짚어야 할 점이다. 지씨가 소속됐던 전교조 서울지부는 지 교사의 전보 직후 이는 부당전보라며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했으나, 지씨의 출근거부 이후 성명서를 철회하고 더 나아가 부당 전보가 아니라는 입장을 냈다. 교육 당국은 이를 근거로 재판부에 “전교조도 지혜복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사이 ‘정규직 교사인 지씨가 비정규직을 신고한 것이 문제’, ‘전보를 가기 싫어 성폭력 사안을 끌어들였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비난이 알음알음 퍼졌다. 최근 한 전교조 조합원은 전교조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법원이 인정한 공익신고자를 700일 넘게 방관하고 오히려 음해한 전교조의 행태는 조직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전교조를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김옥성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진보교육감 후보 캠프에 진보교육단체 사람들이 참여하고 당선 이후 요직을 맡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가 된 것이 문제”라며 “진보교육감을 견제해야 할 진보교육계가 이번 사태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교육감 역시 이 사건을 관료주의적으로 처리하려 했던 것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보 무효 소송 결과는 나왔지만, 지씨가 당장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 교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승소를 통해 부당 전보의 원인이 법적으로 소멸했으므로 정근식 교육감은 지금 당장 직권으로 부당 해임과 형사 고발을 취소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기자회견 후 요구 사항을 담은 공문을 서울시교육청 정책국장에게 전달하며 ‘면담하자’는 의사도 밝혔다. 다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복직은 해임 취소 소송 결과까지 나와야 가능하고, 형사 고발 취하를 하라고 지시하는 것도 (고발한) 교육지원청에 대한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씨와 서울시교육청은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을까.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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