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로 읽는 청오 차상찬] 25. 내가 여자였다면!! (1927년 12월 ‘별건곤’ 2권 8호)

김진형 2026. 2. 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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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결혼·출산·몸가짐 주제
‘독살 미인’ 김정필 사건 소환
자극적 요소 반응한 현실 다뤄
학식·인격 포함 아름다움 강조
여필종부 봉건적 굴레 정면 거부
여성 인권 선도 재생산권 공론화
‘얼치기 모던걸’ 허영 매섭게 비판

독립자존과 맞닿은 여성의 삶, 당당한 주체로 서는 세상

나는 남자이다. 남자로서 남자가 자기의 할 일도 잘하지 못하면서 하물며 여자가 되면 어찌어찌하겠다는 생각이야 염두에나 두어 봤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관한 무슨 의견을 말하는 것은 마치 활동사진(영화)에 서투른 남자배우가 여배우의 변장을 하고 등장하여 상연하다가 일반의 웃음거리만 되는 것과 같을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가 문제이니까 생각나는 대로 두어 가지 잠깐 적어 보려고 한다.

첫째는 미인이 되어야 하겠다. 남자라도 미남자가 된다면 그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남자보다도 여자로서는 특히 미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무리 학식이 우월하고 인격이 고상한 여자라도 만일에 미가 없다면 일생에 그 같은 불행은 없을 것이다.
▲ (사진 왼쪽부터) 차상찬의 글 ‘내가 여자였다면’에 소개된 여성 김정필. 별건곤 2권 8호 표지. 차상찬 ‘내가 여자였다면’ 원문.

옛날부터 미인이 박명이 많다고 했지만, 그것은 미인이기 때문에 단명한 것이 아니라 온갖 여성 중에는 단명한 여자가 많지만 세상 사람이 잘 알지를 못하고 오직 미인만은 여러 사람이 잘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말이 생긴 것이다.편을 죽이고 감옥에서 신음하는 김정필 같은 악독한 여자도 물론 단명한 여자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여자도 미인이기 때문에 단명한 것이 아니다. 감옥 속에는 김정필 이상의 무서운 죄악을 짓고 철창에서 신음하는 단명의 여자가 많지만 미인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따져 보면 소위 여걸이니 여장부니 하고 천하를 좌지우지하며 무한한 행복을 누린 여자는 오히려 미인 중에 많다. 중국의 려태후도 그렇고, 무측천도 그렇고, 영국의 엘리자베스도 그렇다. 아니 신라의 선덕, 진덕 두 여왕이 또한 그렇다. 그러나 내가 요구하는 미인은 그러한 과거 봉건시대에 우월권을 가지던 미인도 아니요, 현재에 소위 ‘모던걸’의 칭호를 듣는 얼치기 미인도 아니다. 없는 모양을 억지로 내고 갖은 아양을 다 부려가며 남자의 장난감이 되려고 악을 바락바락 쓰는 여자야 제아무리 양귀비, 서시 같은 절대의 미인이라도 소위 독립자존의 생각을 가진 사람을 안 부러워할 사람이 그 누가 있겠는가.

그러면 여기에 소위 미인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적어도 천연의 육체미를 구비한 것 외에 정신적인 미 즉 인정미, 도덕미를 겸비한 성신쌍전(性身雙全: 마음과 몸을 완전하게 할 것을 주장하는 천도교 교리)의 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스럽게 남자들이 자기의 눈에 곱게만 보이면 예쁜 얼굴과 몸매를 지녔다고 떠들던 그 미인이 아니요, 여자이니 남자이니 하는 그 경계선을 떠나서 사람성 자연의 미를 구비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해진 한 남편에게 노예가 되지 않겠다. 지금까지의 여자들은 소위 일부종사一夫從事니 여필종부니 하는 관념으로 한번 부부가 된 이상에는 그 남편이 자기의 뜻에 맞던지 안 맞던지 한평생 마음이 원하지 않는 자연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였다. 또는 남편이 자기를 소박하거나 죽는 일이 있어도 여자는 그저 절개라는 것만 생각하고 애통해하면서 고독하게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내가 만일 여자라면 그런 일은 안 하겠다. 남편과 사랑이 있으면 물론 부부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좋으나, 그렇지 않으면 즉시 이혼이라도 하고 남편이 죽어도 그다지 한 개인의 노예가 되어 수절을 하지는 않겠다.

셋째는 피임법을 실행하겠다. 그것도 절대는 아니다. 종족을 보존할 만큼 몇 명의 자녀를 낳은 뒤에는 무슨 방법이든지 피임을 하겠다. 사람은 개구리나 나비가 아니다. 알만 많이 깐다든지 새끼를 많이 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몇 사람이라도 잘 기르고 가르쳐야만 된다. 뿐만 아니라 여자 자신의 건강이나 사회적 활동으로 보더라도 자식을 함부로 낳아서 일생을 그 자녀의 노예가 되는 것 또한 찬성할 일은 아니다.

넷째는 반듯하게 단발을 하겠다. 단발을 하면 못생긴 여자라도 ‘단발미인’이란 칭호를 받는 바람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위생상이나 시간 경제상으로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여성 연구자의 말을 들으면 여자의 일생 시간의 약 삼분지일(⅓)은 머리 빗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발을 한다면 시간의 경제가 그 얼마나 절약될 것인가. 그리고 단발을 한다면 아주 일생 동안 그대로 단발을 할 것이요, 결코 요새 이모모 여자처럼 일시의 기분으로 단발을 했다가 다시 장발을 해서 중간에 바꿨다는 조롱은 듣지 않겠다.

■해설

1927년 12월, 별건곤 ‘1주년 기념호’에는 남성 필진 이외에도 당시 여성운동가였던 차마리사, 조원숙 등이 ‘내가 여자면’, 혹은 ‘내가 남자면’이란 주제의 특집 글들을 싣는다. 차상찬 역시 대표 필자로 참여했으며, 그가 쓴 ‘내가 여자였다면!!’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주는 파격적인 선언을 담고 있다.

이 글은 ‘가정법’으로 시작한다. “내가 여자였다면”이라는 상상이다. 다만 그는 서두에서 남자가 여성 문제를 말하는 일이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물론 이는 글의 신뢰를 높이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그가 ‘여자라면 요구하겠다’고 적어 놓은 것은 크게 4가지다.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당시 여성의 삶을 둘러싼 굵은 고리가 어디였는지 또렷하게 드러난다. 미모, 결혼, 출산, 몸가짐(머리)이 그것이다. 지금도 완전히 낯선 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오래된 글은 오히려 현재형으로도 읽히고, 잔잔한 반향을 준다.

사실 이 글은 단순한 가정을 넘어, 가부장적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독립자존’하기 위한 근대적 투쟁 설계도와도 맞닿아있다. 차상찬이 가장 먼저 내세운 조건은 ‘미인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미(美)는 남성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동적 장식품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독살 미인’ 김정필 사건을 소환한다. 쥐약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김정필의 재판에 2,000명의 인파가 몰리고 구명 투서가 쏟아졌던 현상을 보며, 그는 대중이 여성의 비극보다는 오직 ‘미모’라는 자극적 요소에만 반응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모던걸’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겉치레를 비판하면서, 자신이 말하는 미인은 ‘학식’과 ‘인격’까지 포함하는, 마음과 몸이 함께 온전한 아름다움이라고 강조한다. 이 대목에는 양가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전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선을 외모에서 삶의 품격 쪽으로 옮겨보려 한다. 그는 기존 기준을 완전히 부수진 못하지만, 최소한 그 기준이 여성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잘 알고 있던 계몽자였다.

두 번째로 그는 결혼제도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여성의 삶을 옥죄던 일부종사와 여필종부라는 봉건적 굴레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차상찬은 사랑이 없는 부부생활을 ‘부자연스러운 노예적 생활’로 규정하며, 사랑이 없다면 즉시 이혼하고 남편이 죽더라도 수절하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여성을 가문이나 남편의 소유물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세우려는 의지였다.

세 번째 실천 과제인 ‘피임법의 실행’은 개별 여성의 생존권을 넘어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이다. 그는 인간이 ‘개구리나 나비’처럼 알만 많이 낳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다. 무분별한 출산이 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사회적 활동을 원천 차단하여 ‘일생 동안 자녀의 노예’로 살게 함을 경고한 것이다. 대신 그는 자녀의 수를 조절하여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여성 스스로가 사회적 활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20년대에 남성 필자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공론화했다는 점은 그의 인권 의식이 시대를 얼마나 앞서갔는지를 보여준다.

네 번째로 그는 단발을 통한 ‘시간의 경제’를 주장한다. 당시 단발은 신여성의 상징이자 논란의 핵심이었으나, 차상찬은 이를 미학적 차원이 아닌 합리적 생활 양식으로 접근했다. 여성이 평생의 많은 시간을 머리 빗는 데 쓴다는 점을 지적하며, 단발을 통해 절약한 시간을 지적 수양과 공적 활동에 쓰겠다고 공언한다.

이 글이 흥미로운 이유는, 공중에 뜬 말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개벽사는 1922년 ‘부인’을 창간했고, 1923년에는 제호를 ‘신여성’으로 바꿔 여성 독자층을 넓힌다. 차상찬은 방정환 사후 통권 40호부터 마지막 통권 73호까지 편집을 맡았다. 잡지는 여성의 생활상, 육아·위생, 연애와 결혼, 부부 문제 등 당대의 논쟁적 주제를 다뤘다. 즉 그는 ‘여성의 삶을 말하는 지면’이 유지되도록, 편집이라는 자리에서 오래 버틴 사람이기도 했고, 자연스레 여성 인권에 선도적이었다.

차상찬의 진보성은 맹목적인 서구 추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이른바 ‘여성계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란 글을 통해, 겉모양만 꾸미고 금시계와 양가죽 구두를 탐하며 정작 내면의 독립성은 갖추지 못한 ‘얼치기 모던걸’의 허영을 매섭게 비판했다. 1939년 결혼한 딸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도 “가정 감옥에 갇혀 책과 인연을 끊는 어멈이 되지 말고, 사회적으로 나아가 활동하라”고 당부하며, 진정한 여성해방은 허영이 아닌 실천적 지성에서 온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차상찬이 꿈꾼 ‘내가 여자라면’의 세상은 결국 성별의 차별이 계급적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 여성이 가정의 도구가 아닌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서는 세상이었다. 당신은 타인의 시선에 갇힌 인형인가, 아니면 자신의 몸과 시간을 주체적으로 운용하는 독립자존의 ‘사람’인가. 만약 100년 전의 가정법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그건 우리의 현실이 기대와 달리 더디게 바뀌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100년 전, 자신이 던진 돌멩이를 후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내 가슴에 파문이 일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진정 궁금할 뿐이다.

· 현대어 번역·해설=(사)차상찬기념사업회·이현준 한림대 강사

· 발췌문헌=차상찬 ‘내가女子면!! 내가男子면!!’, 별건곤 2권 8호. 1927.12. ‘차상찬전집 7’, 337~340쪽. ‘차상찬현대문선집2’ 286~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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