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총살이 거짓이라니…국가가 두 번 울렸다, 다시 묻는다

한국전쟁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 조사와 진실규명은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한 2005년부터 시작됐다. 1기에서 6742명, 2기에서 6096명의 희생자가 ‘진실규명’(피해 확인)을 받았다. 국가 기구의 공식적인 피해 확인에도 사법부라는 관문을 또다시 거쳐야 국가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은 모순으로 지적됐다.
이례적으로 법원에서 진실화해위 결정을 뒤집는 일까지 나온다. 지난해 1·2심에서 연이어 패소한 전남 영광군 군경에 의한 희생사건 박○수(1927년생) 유족에 이어 화순 민간인 희생사건 피해자도 국가배상을 할 이유가 없다는 판결문을 받았다. 화순 사건 피해 당사자를 만나 당시의 상황과 재판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어머니의 이름은 박영희(82), 아들의 이름은 김도환(59)이다. 지난 15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박씨 자택에서 모자를 만났다. 어머니 박씨는 한국전쟁기에 고향인 전남 화순에서 벌어진 국군의 민간인 총살 현장에 있었던 유족이자 목격자다. 아들 김씨는 그 총살이 어머니에게 남긴 트라우마의 그림자에 갇혀 고통받은 또 다른 피해자다. ‘총살’의 기억과 상처는 평생 어머니를 옥죄다 아들에게 이어졌다. 그런데 그 총살이 75년 만에 대한민국 법정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진실화해위가 현장에서 참고인 조사 등을 거쳐 해당 희생을 ‘사실’로 보고 진실규명을 했음에도 이를 뒤집은 이례적 판결이었다. 한겨레가 재판 당사자인 박씨 모자를 수소문해 이야기를 들은 이유다.
광주지법 김정철 판사는 지난해 12월2일 박영희씨가 “어머니 조복주(당시 27), 삼촌 박기창(19), 동생 박철한(3)이 1950년 12월12일(음력 11월4일) 국군 11사단 20연대 3대대에 의해 총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제적등본의 사망 날짜가 다르고, 불법적으로 고의로 살해당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원고인 박씨가 이 사건 당사자이므로 객관적·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사건 당시 만 6살에 불과했다는 이유도 제시됐다.
패소 판결 소식을 듣던 날, 박씨는 서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을 쏟아냈다. 판사가 믿어주지 않은 그 기억은, 75년이나 됐지만 너무 선명했다. 인생을 살면서 그보다 더 극적인 광경은 없었다.

“아침에 고쟁이 입고 마당에서 밥 고봉을 뜨다가 총포 소리 낭께 어르신들이 피신 가자고 혀. 가마솥 짊어지고, 어머니가 막내 업고 뒷집으로 넘어강께 그 집이 불에 타고 있더라고. 아군(국군)이 총을 들고 있는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뭐라 항께 어머니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또 뭐라뭐라 한 거여. 군인이 담벼락에 대고 어머니를 총으로 쏴버렸어. 막내 업고 어머니가 쓰러진 거 봤어. 그거 봉께 내가 여섯살 나이에도 ‘인생 쫑났다.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땅바닥에 누워버렸다고.”
박영희씨의 기억으로는, 화순군 북면(현 백아면) 수리마을에 위치한 박씨네 집은 마을에서 가장 컸다. 빨치산의 주요 거점이었던 백아산 꼭대기에서 박씨 집은 한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박기홍(다른 이름 박기수)은 지주였고, 그 이유로 1950년 10월 추수기에 빨치산에 의해 죽창으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두달 뒤 남은 가족은 그 빨치산을 토벌하러 온 제11사단 병사를 맞닥뜨렸다. 박씨 말대로 ‘아군’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어머니 조복주와 함께 삼촌 박기창에게도 총을 쐈다. 어머니 등에 업혀 있던 남동생은 총을 맞지 않았지만, 나중에 불에 타 숨졌다고 들었다.
군인들은 바닥에 누운 6살 박영희에게 “너도 쏴분다”며 눈을 부라렸다. 할아버지·할머니, 언니와 간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집은 잿더미가 됐다. 그날로 광주로 피난해 충장로 큰고모와 작은고모 집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다. 박씨 말을 빌리면 ‘상거지’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살아남은 손녀를 만날 때마다 구박했다. “가시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바뀌었다”는 탄식을 입에 달고 다녔다. 살아남은 게 죄였던 박씨는 젊은 시절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다. 날품팔이를 하고, 청소일을 했다. 박씨는 “포도시(‘간신히’의 전라도 사투리) 살았다”고 했다.

박씨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할 때마다 아들에게 손찌검한 것은, 설명할 수 없는 폭력이었다. 어쩌면 그날 민가에 들어와 애꿎은 민간인을 총살한 군인의 행동 도 그랬다 . 판사는 그러나 판결문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원고는 (진실화해위) 조사 과정에서 ‘군인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쏘아버렸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데, 가족인 원고 등이 보는 앞에서 그 자리에서 고의로 총살하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거였다. “(박씨가) 남동생을 데려가지 않고 시신 수습을 하지도 않았다는 점”도 그의 진술을 믿기 어려운 이유로 댔다.
2기 진실화해위에서 ‘전남 화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했던 김애자 조사관(조사1과)은 광주지법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판사는 “이례적”이라고 했으나, 당시 화순군에는 빨치산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불을 지르고 도망가는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2기 진실화해위는 박영희씨 가족처럼 한국전쟁기 화순 지역에서 군경에 희생된 113명(보도연맹 희생자 포함)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김 조사관은 “살아 있는 남동생을 데려가지 않았다”는 판결 근거에도 반문했다. “군인들 눈에 띄면 누구든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노약자와 어린이가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 앞에서 살아 있는 아기를 데리고 도망친다는 게 가능한가요?”
어머니 조복주씨 등의 제적등본 사망일자가 실제 사망일과 다른 점도 핵심적인 패소 이유였다. 행정기록 오류는 2기 진실화해위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광동 위원장과 국민의힘 추천 이옥남 상임위원이 민간인 피해를 부정할 때 앞세웠던 명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제적등본에 제때 사망신고가 되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출생·사망신고를 의무화하는 호적법은 1960년 제정됐다. 사망신고가 제때 안 돼 있다고, 죽은 사실 자체가 허구가 될 수는 없었다. 과거사 전문가들이 가족과 참고인의 진술과 사건 정황을 더 중요하게 살피는 이유다.

“저는 머릿속에 훤히 그림이 그려집니다.” 김도환씨는 지금도 어머니 고향인 수리마을에 달마다 간다고 했다. 그곳에 텃밭도 있다. “당시 동복면에 주둔하던 국군이 수리마을로 들어오면 백아산이 정면으로 보였고 사거리 왼쪽 마을 입구가 어머니 집이었어요. 군인들이 들어와 담벼락에 외할머니를 세워두고 총을 쏘았을 그 장면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되새깁니다.” 풍파 속에서도 아들은 비뚤어지지 않았다. 중장비 정비사 자격증을 땄고, 시간이 흘러 대학 과정도 밟았다. 억척스럽게 세월을 이겨내 지금은 작은 건설회사 상무로 일한다. 박영희씨는 그런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어머니 박씨가 인터뷰 도중 자신이 목격한 총살의 순간을 말하자, 아들 김씨는 아버지 친구 손에 잡혀 갔던 영광의 고아원을 떠올리며 눈물 흘렸다. 6살에 총살의 현장을 감당해야 했던 어머니는, 비슷한 나이에 고아원에 버려졌던 아들을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자는 그 모든 시발점이 ‘총살’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씨가 말했다. “그날 국군이 외할머니에게 상황을 인격적으로 설명했다면, 어머니나 저나 이런 고통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요. 도대체 왜, 왜, 왜 그날 총으로 쏘았을까요. 그조차 인정할 수 없다고요?”
모자는 지난 12월 변호인을 통해 항소장을 광주지법에 제출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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