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가 대안? 극복 못한 '마창진' 통합 트라우마
[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재명 정부의 기조는 분명하다. 새 단체장 선출 이전에 행정통합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하는 김에 화끈하게 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할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 그 논리는 명쾌하다. 시장과 도지사가 각각 당선된 뒤 통합 논의를 시작하면 둘 중 한 명은 단체장 자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통합의 '통'자도 꺼내기 어려워진다는 것.
광주·전남을 필두로 대구·경북, 대전·충남이 통합을 위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지방자치법상 통합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 의견을 듣거나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세 권역은 모두 주민투표가 아닌 지방의회 의견 청취를 택했다. 속도전을 펼치는 모양새다.
하지만 부산·경남은 독자 노선을 택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지난달 28일 공동 입장을 발표했다. 올해 안에 주민투표를 실시해 주민 50% 이상이 찬성하면 2028년 행정통합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부산시와 경남도가 합치면 통합 인구는 약 670만 명, 지역내총생산(GRDP)은 240조 원에 달한다. 경기도와 서울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자치단체가 된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표와 부산·경남 단체장들의 시간표는 어긋나 있다. 그 이유는 경남의 관점에서 보면 명확해진다.
초대 통합창원시장의 기억
“행정통합은 하나의 개혁이기 때문에 저항을 수반한다. 통합 이후의 행정 효율은 잘 보이지 않고, 불편한 점은 금방 드러난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그런 부담을 지지 않으려 한다. 이런 이유로 행정체제 개편은 국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 물론 민주적 절차는 밟아야 한다.”
이 말은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아니다. 2011년 박완수 당시 통합 창원시장이 통합 1주년을 맞아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부산경남 통합의 키를 쥔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2004년 창원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후 2006년 재선되었고, 2010년에는 통합 창원시 초대 시장으로 당선됐다.
흥미로운 점은 박 지사의 입장이 15년 사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2011년에는 '국가의 의지'를 강조했다면, 2026년 현재에는 '민주적 절차'를 더 우선에 두고 있다.

그 기저에는 마산·창원·진해 통합의 후유증이 있다. 당시 통합은 주민투표 없이 정치권과 행정이 주도한 하향식이었다. 박 지사는 그 후유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창진 통합 당시에도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갈등이 컸다. 주민투표를 거치지 않은 통합이어서 참여한 정치인들이 주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낙선한 이도 있었다.”
부산·경남 통합에 신중론이 대두된 것은 경남 내 시군마다 통합에 대한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다. 경남 안에는 18개 시군이 있다. 짧은 시간 안에 통합으로 대동단결하기는 어렵다.
시민들의 마음을 가늠해볼 수 있는 설문조사가 최근 있었다. 지난달 25일 국제신문은 부산시의회 재적 의원 46명과 경남도의회 재적 의원 64명 등 총 110명을 대상으로 행정통합 찬반 입장을 전수조사했다. 결과를 보면 부산시의회 의원은 85%가 찬성한 반면 경남도의회 의원은 절반만 찬성했다. 그 내용을 뜯어보면 부산과 인접한 김해·양산 지역 의원 14명 가운데 12명이 찬성했다. 부산 생활권이라 행정통합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창원 지역은 16명 중 8명이 반대했다. 박완수 지사가 우려한 '마창진 통합 트라우마'가 여전히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도의원들은 주민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응어리진 서부경남권
진주, 합천, 산청, 거창 등 서부경남권은 더 조심스럽다. 지역구 의원 16명 중 7명이 유보 의견을 냈다. 찬성은 6명, 반대는 3명이었다. 서부경남에서는 창원을 포함한 동부권 중심의 통합으로 서부권이 더욱 홀대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창원시에는 인구와 교통 인프라, 행정서비스, 기업이 집중돼 있어 경남 안의 서울이라 불릴 정도다. 이른바 '서부경남 홀대론'은 통합 논의 이전에도 만연했다. 서부경남권 주민들은 부산과 행정통합이 되면 얼마나 더 홀대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
서부경남 내부에서도 온도 차가 감지된다. 서부경남의 거점은 진주시다. 진주시와 인접한 사천시는 우주항공청과 한국우주항공산업(KAI)이 있는 명실상부한 우주항공도시다. 사천시는 진주시에 우주항공을 구심점으로 협력하자고 제안한다. 진주시는 행정 통합으로 뭉치자고 주장한다. 서로 간 온도차가 상당하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직접 '사천시와의 행정 통합'을 거론하기도 했다. “우주항공산업을 효과적으로 육성하려면 사천과 진주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사천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동식 사천시장은 “진주시의 일방적인 행정통합 제안은 시기적, 절차적, 명분론적으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더 막막한 것은 군 지역이다. 경남 내 모든 군 지역은 통합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군 지역은 이미 사막화됐다. 통합되면 나아질까. 실체 없는 낙수효과나 검증되지 않은 기본소득 같은 말은 여전히 막연하다. '일단 빨리 합치고 보자'는 흐름 속에서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그냥 휩쓸려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6일 경남을 찾는다. 경남 창원 타운홀 미팅에 참석한다. 행사 예고 포스터에는 '경남의 마음을 듣다'는 글귀가 크게 쓰여 있다. 이날 전직 경남도지사인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도 동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최근 행정통합을 두고 “늦으면 손해”, “미루면 완전히 뒤처진다”, “통합을 먼저 하고 문제를 풀자”고 강조해왔다. 경남의 현실은 단순한 속도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행정통합을 둘러싼 경남의 시간은 여전히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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