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1300만원 ‘쇼케이스’… 정치입문 과정도 파는 시대
자서전 출판대행업체에 ‘청년 출마 준비자’로 문의해보니
대필·ISBN·인쇄 포함 550만원
출판기념회 500만~800만원 수준
업계 패키지 상품화 빠르게 확산
형식·연출만 부각되는 환경 우려

“4년간 지역 언론인으로 활동했는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신인으로 얼굴을 알리고 싶어 고민 중입니다. 자서전을 낼 수 있을까요?”
5일 청년 정치 지망생을 가정해 정치 자서전 전문 출판대행업체로 홍보한 A출판사에 제작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상담은 집필 방식과 일정, 비용, 출판기념회 연계 여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출마 일정에 맞춰 책과 행사를 동시에 준비하는 과정이 비교적 정형화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우선 집필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대략적인 출마 일정을 언급한 뒤 “책을 써본 적이 없어 막막하다”고 이야기하자 출판사 측은 “담당 작가가 일대일 인터뷰를 통해 원고를 작성하고,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한 뒤 필요한 자료를 받아 사실관계 정리까지 함께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출마 경험이 없는 신인이라는 점을 강조하자 오히려 익숙하다는 반응이었다. 출판사 측은 “구의원·시의원 출마 준비자 문의가 가장 많다”며 “청년 정치 준비자들도 꾸준히 연락을 준다. 특히 이번 선거를 앞두고 청년 정치 준비자 문의가 늘었다”고 전했다.
대화는 ‘출판물 형태’로 옮겨갔다. PDF 파일만으로는 활용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는 발급이 까다롭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어렵지 않다”며 “ISBN은 기본 구성에 포함해 발급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필과 ISBN 발급, 인쇄, PDF 제공 등을 포함해 출판사가 제시한 가격은 550만원이었다.
책 제작 이야기가 끝나자 출판기념회 준비로 넘어갔다. 출판사 측은 최근에도 해당 행사를 여러 건 진행했다고 말했다. 원고 작업이 끝나면 행사 일정에 맞춰 장소 대관과 운영까지 연계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객 300~500명 규모 기준 비용은 500만~800만원 선이었다.
종합하면 1천만원~1천300만원이면 출판물을 제작하고 동시에 출판기념회까지 열 수 있었다. 과거 일부 유명 정치인이나 중견 소설가 중심의 대형 이벤트 성격이 강했던 ‘자서전 출간-출판기념회’가 이제는 일종의 패키지 상품으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출판 자체의 완성도보다 일정에 맞춰 외형을 갖추는 것이 우선되는 흐름이 형성됐다. 개인이 직접 준비하기 어려운 작업을 비용을 들여 일괄 처리하는 방식은 다른 분야에서도 흔한데, 정치 영역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정책 경쟁보다 형식과 연출만 부각되는 선거 환경으로 굳어질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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