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家] 파란 하늘이 잠을 깨우고 붉은 노을이 자장가 되는

이미지 기자 2026. 2. 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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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남해군 창선면 1층 단층주택

농어촌 민박에서 일상 여행
집은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량으로 공급된 일률적인 아파트가 아니라 저마다 모습을 지닌 주택을 찾아 나섰습니다. 건축은 결국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가 사느냐에 따라 집 모양새도 달라집니다. 획일화한 주거유형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지어진 경남 우수주택에서 건축주와 설계자를 만나 '그 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해군 창선면 1층 단독주택. /남해군청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는다. 윤슬 가득한 남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해가 저문다. 노을이 장관이다. 이 풍경을 삶으로 만들고자 남해에 집을 지은 부부가 있다. 아주 단순한 이유지만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다.

유제희(46)·홍지희(49) 부부는 3년 전 충남 논산시에서 남해군 창선면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유 씨는 여행을 좋아해 전국 곳곳에 다녔다. 낚시를 즐겨 바다를 자주 찾았고, 남해에서 노후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해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정착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졌다. '언젠가'가 '지금'으로 바뀌었고, 5년 전 본격적으로 남해서 살만한 곳을 수소문했다.

창선면 사포마을에 닿았을 때 해가 기울었다. 임장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밭이었다. 조는 익어서 고개를 숙였고 그 너머로 붉은빛이 온 바다를 덮었다. 유 씨는 "경사가 있는 집을 찾았고, 조 밭을 보자마자 여기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터가 있으니 집을 설계해야 했다. 부부는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김상진(종합건축사사무소 혁성) 건축사를 소개받았다. 김 건축사는 "건축주가 직접 그린 나지막한 집을 보여줬는데 마음에 꼭 들더라"며 "취향이 확실한 만큼 설계에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아내 홍 씨가 어렸을 적 살던 집처럼 짓고 싶었다. 한 줄로 늘어선 일자형 구조에 마루가 있는 집. 여름엔 빛을 가리고 겨울엔 햇볕을 들이는 처마가 낮은 집 말이다.

김 건축사는 대지 면적 1000㎡ 가운데 일부만을 활용해 소박한 규모로 1층짜리 집을 앉혔다. 일자형 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 완전한 직선이 아니라 완만하게 꺾인 형태로 배치했다. 이는 지형과 조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길게 펼쳐진 구조이지만 단조로움도 피했다.
남해군 창선면 1층 집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 /건축추

크지 않은 건축물은 주변 풍경을 압도하지 않도록 낮고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띄는 장식이나 과한 형태 대신, 전체 윤곽을 단순하게 잡아 바다와 하늘이 자연스럽게 중심이 됐다. 건물의 선은 직선 위주로 정리했고 복잡하지 않은 형태 덕분에 빛과 그림자가 시간에 따라 건물 위에 차분히 얹힌다. 집은 남해 풍경 속에 조용히 섞여 있다.

집 공간은 외부와 다른 관계를 맺도록 했다. 주요 생활공간과 침실은 모두 안쪽 마당을 향해 배치됐다. 살짝 꺾인 집과 담은 외부 풍경을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 마당과 수영장 공간도 감싸고 있다. 특히 본채와 별채 2곳을 구분했다. 아파트처럼 한 공간에 침실과 주방, 거실 등을 둘 수 있지만 아니다. 본채에서 별채로 이동하려면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한 차례 외부를 거치도록 설계했다.

마당에는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은 시야를 가로막는 요소를 최소화해 남해 바다와 하늘이 한 틀에 담기도록 했다. 바다 끝에는 남해 본섬인 남해읍이 보인다. 별채 끝은 욕실이다. 대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어 사적인 휴식을 고려했다.

멀리서 보면 지붕의 존재감이 먼저 드러난다. 지붕은 분절된 공간 위에서 1층 평면을 따라 하나처럼 보인다. 지붕은 알루미늄 징크 소재를 사용해 한 장 한 장 끼워 맞췄다. 금속 특유의 질감으로 빛의 각도와 시간대에 따라 색감이 달라 보인다. 진한 갈색인데 멀리서 보면 회색빛이기도 하다. 알루미늄 징크는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또 무게가 가벼워 구조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단층 주택이나 긴 처마를 가진 건축물에 적합하다.

유 씨는 "아버지가 지붕 일을 해 어렸을 때부터 지붕 공사 일도 많이 봤고 소재도 잘 알고 있다"며 "해풍이 부는 곳이니 부식에 강하고 습한 환경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는 소재를 골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품과 발품을 팔아 진주 장인한테 맡겨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지붕은 끝은 처마 역할을 한다. 길다. 햇볕이 강한 남해 기후를 고려한 설계다.

외부가 단정한 형태와 재료의 힘을 보여준다면 내부는 빛과 재료로 분위기를 완성했다.

집 곳곳에는 한지와 자개, 달 항아리가 배치돼 있다. 장식적 요소로 앞서기보다 공간의 결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한지를 거치며 부드럽게 걸러지고, 자개는 은은한 반사로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달 항아리는 비워낸 공간 한쪽에서 중심을 잡는다. 현대적인 구조 위에 전통 재료는 절제미를 준다.

김 건축사는 "예스러움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뤄 자연 속에서 하나의 작품이 됐다"며 "내부는 현대와 옛것 조화를 위해 나무 간살과 자개를 이용했고 특히 침실 내부 원형창을 통해 한 폭의 그림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유제희 건축주(오른쪽)와 김상진 건축사가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이미지 기자

집은 2023년 착공해 2024년 준공했다. 딱 1년. 유 씨는 "유독 비가 자주 내린 한 해였다"며 "당시 지족마을에 월세로 살면서 매일 같이 찾으니 나를 시공 노동자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김 건축사도 현장에서 줄자로 하나하나 확인하며 설계와 시공 차이가 최대한 벌어지지 않도록 챙겼다"고 말했다. 이어 김 건축사는 "건축주처럼 남해가 좋아 일을 맡다 보니 몇 년 전 사무실을 남해에 차렸다"며 "여전히 남해 바다가 아름다우니 어쩌면 건축주와 건축사 모두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작업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원래 1층 단독주택은 부부와 홍 씨 부모가 함께 살려고 했다. 그리고 옆에 작은 집을 지어 민박업을 하려고 했다. 밥벌이는 필요해서다. 결과는 반대로 됐다. 유 씨는 "논산 직장을 정리하고 남해살이를 택하면서 민박업을 고려했고, 부모님 계획이 변경돼 큰 집을 많은 이들에게 내어준다"고 말했다. 그는 "남해 펜션에서 일하면서 노하우를 배우려고 했는데 준공하자마자 농어촌민박집 사장이 됐다"고 말했다.

부부는 쉬는 날이 없다. 오전에 손님을 보내고 청소를 하고 오후에 새 손님을 맞으면 어느새 해가 진다.

일상에서 위로와 위안은 남해 바다다. 유 씨는 "해가 바다 끝에 걸리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며 "길고양이가 하나같이 담벼락에서 바다를 보고, 우리집 옹이와 노을이도 말할 필요도 없이 매일 그렇다"고 말했다.
남해군 창선면 1층 단독주택. 큰 지붕에 시선이 먼저 간다. /남해군청

바다를 마주한 풍경에서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는 삶. 한 번쯤 꿈꾸지만 현실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생활 여건과 비용, 불편함 등 여러 제약이 더 크게 보여서다.

이 집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투자대비 수익을 내는 구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남해 일상은 그 이상의 만족과 충만감을 안긴다.

유 씨는 "하루가 저물 무렵 노을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의 고민도 선택의 무게도 모두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며 "이거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2024년 우수주택 선정 남해군 창선면 단독주택 개요>

규모 : 지상 1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

주요재료 : 스타코 플렉스

전체면적 : 168.74㎡

공사비 : 4억 6000만 원

설계자 : 김상진

<경남 우수주택이란?>

경남도는 매년 우수주택 40동을 선정한다. 그해 준공한 경남지역 단독주택 중 18개 시·군 추천과 경남도 우수주택 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친다.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고 거주자에게 맞는 효율적인 공간구성, 친환경 건축기법 등이 심사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