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왜 떠나는가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이 10대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대통령은 경제의 중심에 기업이 있다며 청년 고용 확대와 지방 투자를 요청했고, 10대 기업들은 5년간 지방에 270조 원, 그 외 기업까지 합하면 모두 300조 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대통령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언뜻 보면 정부와 기업이 손을 맞잡은 모범적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과연 상생의 서사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장면일까. 이 만남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부는 기업이 경제의 중심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기업 활동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드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규제 철폐 등의 구호가 반복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요청과 압박, 협력과 불신이 한 테이블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들이 언급한 투자 금액부터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270조 원, 300조 원은 선언이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이는 단순히 지역 안배성 투자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 생존과 직결된 선택이다. 글로벌 기업에게 투자지는 국적이 아니라 조건이다. 인건비, 규제 강도, 법적 리스크, 정책 예측 가능성,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비용까지 모두 계산된다. 그런 점에서 소금기 날리는 새만금과 기업들이 외면해온 지방의 선택은 감정의 문제가 아닌 숫자의 문제이고 리스크를 떠 안는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기업을 파트너로 부르며 지방 투자와 청년 고용을 요청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제도를 통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과 형사 리스크를 확대하고 있다. 기업인은 투자 판단의 주체라기보다, 언제든 처벌될 수 있는 잠재적 피의자로 인식된다. 이런 환경에서 최선의 지원이라는 말은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투자는 요청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와 예측 가능성 위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제조업과 첨단 산업은 한 번의 결정을 되돌리기 어렵다. 공장은 짓는 데 수년이 걸리고, 잘못된 설계된 제도는 수십 년의 비용으로 남는다. 최근 국내기업들이 미국, 동남아, 인도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흐름은 탈 한국 선언이 아니라 합리적 회피에 가깝다. 그들이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는 애국심의 부족이 아니라, 정책 리스크와 기업운영 애로의 누적이다.
이번 간담회에서 포착된 한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해외 일정을 취소하고 오셨다면서요 라고 묻자, 이 회장은 당연합니다라고 말한 장면이다. 짧은 대화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규모 있는 기업의 총수가 해외 출장을 접고 참석해야 하는 자리는 과연 자율적 협력의 장이었을까.
권력 앞에서 당연함이 되는 순간, 선택은 선택이 아니게 된다. 협력은 자발적일 때 힘을 갖는다. 지방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겠다며 5극 3특 체제를 말하지만, 기업이 지방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교통이나 통신의 문제가 아니다. 숙련 인력의 부족, 협력업체 생태계의 취약함, 교육·의료·주거 등 인프라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기업의 마음을 요청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호소에 가깝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하다. 성장의 과실이 청년과 지방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타당하다. 그러나 책임은 일방적으로 부과될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는 것이 해외보다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규제는 정교해야 하고, 처벌은 예외적이어야 하며, 정책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기업이 왜 떠나는가가 아니다. 왜 남아야 하는가에 대해 정부는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다. 청와대 간담회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이 경제를 움직이지는 않는다. 투자 약속의 미담만으로 떠나는 산업의 발길을 돌릴 수 없다. 기업은 박수가 아니라 계산서를 보고 움직인다.
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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