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도 ‘여성 퀴어’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김효실 기자 2026. 2. 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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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퀴어법조회 회원들
“혼인평등·차별금지법 등 현안에
정책 제안 등 목소리 낼 계획”
지난 3일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 스터디룸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한국여성퀴어법조회(큐워크) 5명이 손으로 별 모양을 만들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보수적’이라고 칭해지는 법조계에도 당연히 여성 퀴어(성소수자)들이 실재하고, 목소리 내려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한국여성퀴어법조회’(이하 큐워크) 초대 회장을 맡은 김은재(가명·34) 변호사의 말이다. 여성 성소수자 법조인 100여명이 모인 큐워크는 지난해 말 첫 총회를 열며 공식 출범했다. 국내 성소수자 법조인 모임은 2015년 설립된 ‘게이법조회’가 있고, 같은 해부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과 공동주최하는 ‘엘지비티아이(LGBTI) 법률가대회’가 매년 열렸지만 ‘여성 퀴어 법조인’을 주체로 한 단체 설립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일 김 회장 등 큐워크 회원 5명을 만나 큐워크의 창립 과정, 향후 계획을 들었다.

큐워크는 각 대학 로스쿨에 꾸려진 여성 퀴어 동아리에 뿌리를 둔다. 2017~2018년께 학교별 동아리가 연합하며 확장된 친목 모임이 단체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동아리 회원이 아니었던 로스쿨생, 현직 법조인들이 알음알음 모임에 합류했다. 큐워크의 정관을 만들고 이사직을 맡은 김우주(가명·35) 변호사는 “특별한 창립의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이런 단체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점진적으로 쌓여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9일 한국여성퀴어법조회 첫 총회가 열렸다. 큐워크 제공

이들이 쌓아온 공감대는 무엇보다 “공통적인 삶의 경험들, 직장 생활은 물론 혐오와 차별에 관련한 일상의 경험과 고민”(김우주)이었다. 예컨대 2023년 한 대형로펌의 사내 도서관에 동성애·성전환 혐오를 토대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내용의 책이 비치된 일이 있었다. 구민지(가명·33) 변호사는 “다른 회원에게 사건을 듣고 퀴어 동료가 분명히 있는데도 차별·혐오 서적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회사 비용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국회에서 일하는 최수빈(가명·33) 변호사는 “수습변호사 시절 직속 상사에게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상사가 다른 변호사들에게 내 정체성을 ‘아우팅’(당사자 동의 없이 타인에게 성적 지향 밝히는 인권침해 행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23년 미국에서 파트너와 혼인신고를 한 김은재 회장은 ‘혼인평등소송’ 원고인단이기도 하다. 그는 결혼을 계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김 회장은 “회사 윤리규범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이 금지돼 있었지만 규범의 존재 여부와 회사 문화는 별개라, 결혼 사실은 말해도 파트너 성별을 밝힐 순 없었다”고 했다. 이날 만난 큐워크 회원 5명 가운데 3명이 결혼한 ‘유부’였다.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대외에 공개하고 활동하는 여성 퀴어 법조인들도 있다. 큐워크는 ‘집단의 가시성’을 중시한다. 로스쿨 도입 뒤 여성 법조인 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현직 법조인 특히 고위직급에서 여성 비율은 매우 낮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인지통계를 보면 변호사·판사·검사 가운데 여성 비율은 27.7%다(2019년 기준). ‘여성 법조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벽을 느끼는데,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중첩되면 벽장 밖을 나서기가 한층 버거워진다. 특정 개인의 용기나 서사에 기대지 않고 여성 퀴어 법조인이 실존하며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체의 이름’으로 드러내고 싶은 이유다.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냄만으로 정치성을 띠는 집단이 있다.

여성 퀴어 법조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더 나은 법과 사회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시각화한 큐워크 로고. 큐워크 제공

지난해 12월19일에 열린 첫 총회에는 회원 50여명이 참여했다. 이날 마련한 ‘커리어 세미나’(직역별 업무 경험 공유)는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퀴어로서 지금 커리어에 만족하나요?”, “OO에서는 동료에게 커밍아웃하고 일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이 오갔다. 김우주 변호사는 “여성 퀴어 법조인으로서 어떻게 각자의 일터에서 ‘숨 쉴 구멍’을 찾아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었기에 무척 소중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들이 당장 목표로 삼은 건 집단 소송이나 입법 투쟁이 아니다. 김은재 회장은 “첫해에는 무엇보다 회원들이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큐워크는 레즈비언, 양성애자, 논바이너리 등 퀴어 정체성은 물론 기업 사내 변호사, 로펌 변호사, 공공기관 소속 법조인, 로스쿨 재학생 등 다양한 위치·경력의 여성 퀴어 법조인들로 구성돼 있어, 내부 ‘차이’를 조율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큐워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대한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이사직에 20여명을 배치했다. 실명 노출 부담을 줄이고자 익명 소통 채널도 운영한다.

동시에 혼인평등, 차별금지법, 성소수자 임신·출산·육아, 성소수자 간 교제폭력 등 법적 현안에 대해서도 연대 성명, 정책 제안 등 가능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사내 변호사로 일하는 정슬기(가명·35) 큐워크 이사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 퀴어 부부가 있어도 법·제도 상 ‘엄마 2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한부모 가구’로 분류된다”며 “법 제도가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 퀴어의 삶을 법·제도 형식 안에 자리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에이아이(인공지능)란 게 새롭게 대두하면서 인공지능기본법을 만드는 것처럼,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등 성소수자들의 삶이 가시화한 만큼이라도 법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 스터디룸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한국여성퀴어법조회(큐워크) 5명이 서로 손을 포개고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회원들이 그리는 큐워크의 미래는? 최수빈씨는 “여성 퀴어인 후배가 우리 단체에 가입하든 안 하든 ‘이런 단체도 있네?’라고 알고 난 뒤 든든함과 안전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우주씨도 “무슨 일이든 털어놓고 상담할 선배가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구민지씨는 “모든 법조인분들이 내 주변에도 여성 퀴어 법조인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성 퀴어들의 법조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안전망’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익명의 한 회원은 “큐워크라는 이름 그대로 ‘한국의 성소수자가 걸어가는 길목에 항상 함께 있었던 단체’로 기억되고 싶다”고 전해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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