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직 걸라고? 장동혁이 건드린 15년 전 ‘셀프 탄핵’ 트라우마
이번엔 “국민이 준 시장직을 걸라고? 참 실망스럽다”

“정치적 생명을 걸고 얘기하라? 직을 걸고 하라? 참 실망스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5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하겠다면서도,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도 “정치적 생명을 걸라”는 입장을 밝히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한동훈 제명’ 처분 이후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장동혁 지도부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요구했다. 오 시장 역시 지방선거 필패를 우려하며 장 대표 사퇴를 요구해온 터였다.
이날 장 대표는 재신임 투표를 받아들이겠다면서도 “다만 그런 요구를 하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있다면 본인들도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 당원 투표 결과에 의원직·시장직을 ‘판돈’으로 걸라는 말이었다. 장 대표 쪽에서는 “상대에게 손목을 걸라고 요구할 거면 자신은 손가락 하나라도 내놓고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도박판에서나 나올 법한 말까지 나왔다.
이에 오 시장은 “국민이 국회의원직, 시장직을 줬는데 그 자리를 걸고 당의 노선 변화를 요구하라? 이건 공직에 대한 장 대표의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판단은 국민이 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 대표가 고민이 담긴 답변을 해주길 기대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걸어라? 이것은 공인으로서 자세가 아니다”라며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오 시장에게 ‘시장직을 걸어라’는 말은 15년 전의 정치적 트라우마를 직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두 번째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던 2011년, 서울시민이 준 시장직을 걸었다가 한국 정치사 초유의 ‘셀프 탄핵’을 해야 했다.
당시 서울시의회에서 민주당이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을 의결하자, 이를 복지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오 시장은 시정협의를 중단하고 전면전에 들어갔다. 결국 2011년 8월 전면 무상급식 찬반을 주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처음부터 서울시장직을 건 것은 아니었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주민투표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반면 보수언론 등에서는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에 ‘국운’이 걸렸다며 시장직 사퇴는 물론 대선 불출마까지 걸어야 한다고 부추겼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 12일을 남겨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야권에서 ‘대선 출마용 관제 선거’라고 비판하자 1차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투표율에 비상이 걸렸다. 초조해진 오 시장은 시장직 연계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당에서는 강력하게 반대하는 카드였다. 언론에선 ‘오세훈 시장 곧 결심’ ‘이르면 내일 결론’이라며 그의 등을 떠미는 듯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민투표 사흘 전 오 시장은 투표율이 33.3% 미달하면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비장한 2차 승부수를 던졌다. 33.3%는 주민투표법에서 정한 투표함 개봉 기준이다. 이를 넘어야 개표가 이뤄지고, 미달하면 개표 자체를 하지 않는다.
시장직을 걸었던 그 날, 오 시장은 “오늘의 제 결정이 이 나라에 지속가능한 복지와 참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데 한 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도 더 이상 후회는 없다”고 했다. 기자회견 중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다급해진 건 한나라당이었다. “정책투표에 시장 거취를 연계하는 것은 당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자칫 사퇴하게 될 경우 치러질 보궐선거에서 자리를 내줄 것을 우려한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주민투표율은 25.7%에 그쳤다. 투표함은 열어 보지도 못했다. 이틀을 고민하던 오 시장은 결국 시장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10년에 걸친 정치적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당시 서울시장 자리는 민주당(박원순 서울시장)에 넘어갔다.

오 시장은 이후 여러 차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한 자신의 판단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면서도, 시장직을 건 것에 대해서는 “반성을 많이 했다” “나중에 후회를 많이 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장동혁 대표의 ‘정치적 생명을 걸라’는 요구에 “참 실망스럽다”는 오 시장의 반응은, 과거 값비싼 정치적 비용을 치르며 자신은 물론 당까지 위기로 몰았던 오 시장이 초보 당대표에게 건네는 정치적 충고이기도 한 셈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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