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돌보는 노인,치매·노쇠 위험 낮춘다.
신체·정서적 활력이 신체기능 저하 늦추며 치매·노쇠 위험도 낮춰…

손주를 돌보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노쇠(노화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병리적 상태)위험이 더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 학술지 '국제 노인의학·노인학'은 손주 돌봄이 노쇠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한국의 많은 노인들은 '제2의 육아'를 하며 살아간다. 특히 딸을 둔 친정엄마들이 손주들을 깨워서 씻기고 옷 입히는 것으로 시작해 어린이집 등·하원, 밥 챙겨주기, 놀아주기, 재우기까지 양육의 한 축을 떠안고 있다.
몸의 이곳저곳서 노화의 신호를 보내는 할머니가 됐는데도 다시 육아를 맡게 되면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연구진 14년간 추적·관찰
연구는 박유진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황인철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안홍엽 동국대 통계학과 교수 공동 연구팀이 지난 2006년 한국고령화연구패널(KLoSA)에 참여한 노인 8천744명을 14년간 추적·관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대상자들을 손주 돌봄 그룹과 비돌봄 그룹으로 나누고, 나이·성별·체질량지수·만성질환·소득·흡연·음주 등 건강 관련 요인을 모두 보정한 뒤 그룹 간 노쇠화를 비교했다. 여기에서 손주 돌봄 여부는 '지난 1년간 10세 미만 손주를 돌본 적 있는가'에 대한 응답을 기준으로 했다.

◆손주 돌봄 '치매 위험'도 낮춰
노년기에 손주를 돌보는 것이 치매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다만, 주 40시간 미만의 '적당한 돌봄'이 노인 인지 기능 보호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샤먼대학교 연구팀은 2013~2018년 중국 건강퇴직연구에 참여한 50~79세 성인 1만58명을 추적해 손주 돌봄 정도와 치매 진단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주 40시간의 '비집중적(적당한) 돌봄'을 하는 집단에서는 치매 위험이 기준 집단에 비해 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손주가 없거나 주 40시간 이상 돌보는 경우에는 손주가 있지만 전혀 돌보지 않는 기준 집단에 비해 치매 위험이 유의하게 낮아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비집중적 돌봄을 하는 노인은 손주와의 소통을 위해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았고, 이를 통한 디지털 접근성이 치매 예방에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매개효과 분석에서, △휴대전화 보유(17.7%) △광대역 인터넷 접근(17.4%) △외로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16.8%)이 주요 요인으로 평가됐다.

◆손주 돌봄의 효과
손주를 돌보는 긍정적인 효과는 신체 활동이 늘고, 사회적 고립이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손주 돌봄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지는 않는다. 돌봄 시간이 과도하거나 원하지 않는 돌봄을 의무감으로 떠안으면 신체 피로와 스트레스가 증가할 수 있다. 정서적 보람과 신체적 활동이 결합한 손주 돌봄이 적당한 범위 안에서 제공될 때 노년의 몸을 지키는 새로운 건강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성구에 거주하며 손주를 돌보는 박규석 할아버지는 "아들과 며느리가 맞벌이로 정신 없이 지내는 모습이 안쓰러워 손주들을 돌본다. 평일에는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지만 주말이면 애들을 아들네 집에 바래다 준다"며 "하루하루 달라지고 성장하는 모습에 기쁘고 흐뭇하다"고 말했다.
남구에 사는 김해순 할머니는 "애들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더 신경 쓰인다.손자손녀를 돌보는 일에 집중해서 그런지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즐겁다"고 환하게 웃으며 "식사할때 맛있게 먹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눈물 겹다"고 밝혔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박말순 할머니는 "시간이 날때마다 거리에 관계없이 어디든 손녀와 같이 간다"며 "날이 갈수록 여행가는 것을 좋아해 유치원 쉬는 날은 근처 공원이나 야산을 함께 다닌다"고 말했다.
이에대해,서구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김아림 원장은 "즐거운 일에 집중하는 것은 사람에게 큰 힘이 생긴다.긍정적인 에너지는 사람을 더욱 활기차고 즐겁게 만들어 정신 건강 뿐만아니라 신체 전반적인 순 기능 역할을 한다" 밝혔다.
연구팀의 노쇠 위험을 줄인다는 결과에 대한 질문에 "그 이상의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본인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좀더 역동적으로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며 "노쇠가 생기면 낙상,골절 등의 위험이 크게 높아지기 때문에 노쇠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인정했다.
노쇠는 일반적인 노화와 다르다.신체 기능이 급격히 허약해져 장애나 입원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노쇠의 현상은 극심한 피로감으로 인한 탈진,손 힘이 약해지는 악력 저하 그리고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사회적 고립 상태를 일컫는다.
손주와의 상호작용, 자녀 세대와의 접촉이 일상적으로 유지되면서 정서적 연결과 활동성이 유지되고, 이는 결국 신체 기능 저하를 늦추는 완충작용 역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도 손주 돌봄이 흔한 생활문화임을 감안할 때, 적정 수준의 손주 돌봄이 노인의 인지건강을 지키고 노쇠위험을 낮추는 하나의 예방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3월부터 시행되는 전국동시통합돌봄 정책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있는 대구시 남구청 고병수 정책보좌관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은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큰 자녀 돌봄의 안심 환경인 만큼 둘째, 셋째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용기가 될 수 있다. 할머니들의 돌봄 가치를 정책으로 발굴하여,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기쁨이 되는 지역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지방정부를 지향하는 인구정책 모델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돌봄 강도의 관리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며, 손주 돌봄을 부담이나 의무로만 볼 것이 아니라, 디지털 역량 강화와 외로움 완화 등 건강한 노화를 위한 기회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각 지자체 차원에서 이 부분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성윤 기자 pkj@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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