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김재열, IOC 집행위원 당선… 빙판 넘어 한국 스포츠 외교 재도약의 신호탄
- 84% 압도적 지지로 선출… IOC 핵심 그룹 합류
- ISU 혁신과 글로벌 확장. K-스포츠 역량 강화
- ISU 연임도 유력, 지속가능성과 포용성 정책 지속 추진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저녁 시간인 4일 오후 7시 51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활동'이란 단어를 '화동'이라고 오기할 만큼 '속보'에 치중했던 것 같습니다. 필자는 과거 선배들에게 '단독' 기사나 긴급한 사건 발생의 경우에 발간하는 '호외'에는 일부러 오자를 넣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급박한 제작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고의로 실수한다는 겁니다.
암튼 대통령이 거의 실시간 급으로 전달한 경사는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 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58)이 IOC 집행위원에 당선된 사실입니다.
그럼, IOC 집행위원은 어떤 자리이기에 대통령까지 나서 급전을 올린 걸까요. IOC 집행위원회는 국무회의에 견줄 만하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국무회의는 헌법에 명시된 공식 기관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들이 모여 국가의 주요 정책과 법률안을 심의·결정하는 최고 행정 의사 결정 기구입니다. IOC 집행위원 역시 IOC 주요 정책과 현안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김재열 위원은 6일 개막하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이틀 앞서 열린 제145차 IOC 총회 집행위원 선거에서 유효표 100표 중 찬성표 84표(반대 10표, 기권 6표)를 얻었습니다. 과반수 득표해야 당선되는 데 84%의 지지율을 얻은 겁니다.

한국인이 IOC 집행위원이 된 건 고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현재 한국인 IOC 위원은 김재열 위원이 유일합니다. 집행위원 임기는 4년이며 연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총회에는 김재열 위원을 비롯해 잉마르 데 보스(벨기에) , 네벤 일리치(칠레) 등 3명이 집행위원으로 선출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IOC 위원장과 부위원장 4명, 위원 10명으로 구성된 IOC 집행위원회는 IOC 최고 의사 결정 기구입니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 및 신규 IOC 위원 선발 절차 등을 진행하며, 주요 정책과 현안을 결정합니다. 집행위는 또 IOC 내부 조직과 규정 등을 심의하고 승인하며 재정도 관리합니다.
물론 IOC 총회가 최고기구지만 그에 앞서 집행위가 총회 상정 안건 등을 심의합니다. 집행위를 통과한 안건이 총회에서 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김재열 위원이 IOC 핵심 그룹의 일원이 되면서 한국의 스포츠 외교 역량을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김재열) 위원님의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리더십은 올림픽 운동의 미래를 설계하고 이끌어 가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공정성과 투명성, 평화와 연대라는 올림픽의 가치를 바탕으로, 스포츠를 통한 국제 협력을 더욱 넓혀 주시길 기대합니다"라는 덕담을 남겼습니다.
IOC 선수 위원을 역임한 유승민 회장은 "김재열 회장의 IOC 집행위원 선출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향후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상 제고와 역할 확대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윤강로 국제 스포츠외교연구원장도 "제2의 글로벌 스포츠 외교 강국으로써 지평을 열게 될 것 같다"로 반겼습니다.

한국은 한때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고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한국인 최초로 IOC 집행위원에 뽑혔습니다. 고 김 전 부위원장은 1992년 IOC 부위원장에도 올랐습니다. 1996년 김재열 위원의 장인인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IOC 위원에 올랐고,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국제유도연맹 회장에 오른 뒤 IOC 위원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하지만 이기흥 전 대한체육회장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최근 IOC 위원에서 차례로 물러나면서 한국의 스포츠 외교 역량을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체육 통합 시대를 맞았지만, 그저 두 단체가 하나로 합쳐진 물리적인 결합에 그쳐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도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 재도약을 위한 반전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김 위원의 집행위원 선출은 그 공백을 메우고, 다시금 국제 스포츠 외교의 무대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빙상을 통해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김재열 위원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거쳤습니다. 2022년에 비유럽인 최초로 ISU 회장으로 선출된 뒤 2023년 10월 장인 고 이건희 회장에 이어 IOC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IOC 집행위원 자리는 고 이건희 회장도 맡지 못한 중책입니다.

김 위원은 ISU 회장에 오른 뒤 이미 국제 빙상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관례처럼 여겨진 유럽과 북미 위주의 조직 분위기에 변혁을 이끌었습니다. 김 위원은 ISU 회장 취임 이후 포용성과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강조했습니다. 다양한 국가와 계층의 참여를 확대하고, 환경친화적인 대회 운영을 추진하며 스포츠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이바지하도록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ISU는 젊은 세대와 새로운 팬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 투자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방송 기술 개선, 팬과의 실시간 상호작용, e스포츠적 요소 도입 등을 통해 빙상 스포츠의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청률 감소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ISU의 글로벌 확장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통해 유럽과 북미 중심이었던 빙상 스포츠의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IOC의 개혁 과제인 '핏 포 더 퓨처(Fit for the Future)'에 조정자로 참여하며, 스포츠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협의 및 실행 시스템 구축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편중된 빙상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나 네덜란드 등 빙상 강국과 협력하여 '센터 오브 엑설런스(Center of Excellence)'를 구축하고 기후가 따뜻한 국가의 선수들도 훈련할 수 있는 상생 협력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현장에서도 환영받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해 목동 링크에서 열린 ISU 쇼트트랙과 피겨 스케이팅 대회를 직관한 적이 있는데 마치 한 편의 아이스쇼를 보듯 선수 소개, 하이라이트 등 화려한 영상으로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한 빙상 선수는 "새로운 방송 기술과 팬과의 실시간 소통 덕분에 경기장이 더 활기차게 느껴집니다. 젊은 세대가 빙상 스포츠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IOC 집행위원 선출은 한국 스포츠 외교와 함께 ISU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게 됐습니다. 김 위원은 올해로 예정된 ISU 회장 선거에서 연임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김 위원은 종목별 국제연맹(IF) 수장 자격으로 IOC 위원이 됐습니다. ISU 회장직을 유지해야 IOC 위원직을 유지하고 집행위원 활동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간의 성과와 함께 이렇다할 경쟁 후보도 없어 무난히 연임할 것 같다는 게 ISU 내부 관측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쾌거는 개인의 영예를 넘어, 대한민국이 국제 스포츠 거버넌스의 중심에서 한층 더 주도적인 소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 역시 스포츠 외교를 적극 뒷받침하며, 책임 있는 파트너로서 국제 사회에 함께 이바지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스포츠 정책 전문성과 투자가 늘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기에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주목됩니다. 문체부 체육 관련 부서의 담당 공무원은 명함 주고받기가 무섭게 다른 부서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김재열 위원의 이번 집행위원 당선은 한국 스포츠 외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이정표입니다.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의 승패를 넘어, 외교와 문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힘입니다. 이번 쾌거가 한국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 회복과 외교적 위상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체육계의 진정한 협력은 필수입니다. 개인의 영예를 넘어 국가의 도약으로. 한국 스포츠 외교는 다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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