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놀이터'로 바뀐 방과후학교… 85분 수업, 아이들이 가장 반겼다
교육부의 '온동네 초등돌봄·교육' 현장 가보니
산림청과 연계한 '생태체험' 수업으로 흥미 ↑
전문성 높은 정부부처와 협력해 프로그램 개발
교사가 가르치기 어려운 분야까지 교육 가능

"선생님, 이 나무는 서른한 살! 완전 아저씨예요" "저 나무는 열일곱 살! 한참 형이다, 형"
"그 나무는 여덟 살 밖에 안 됐네. 나보다 동생이야. 동생 나무는 처음이지? 신기해!"
겨울방학이었던 지난달 12일, 경기도 안산 덕성초등학교의 한 교실에서는 1, 2학년 학생들이 한껏 들떠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한 손에 든 확대경으로 크기와 질감이 제각각인 나무의 횡단면을 유심히 관찰했다. 베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촉촉함이 남아있는 나무 밑동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촘촘한 나이테를 한 줄 한 줄 센다.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보고 자신의 나이와도 비교해보는 시간이다. 이날 아이들이 만난 최고령 나무는 일흔네 살. 한 아이가 신기한 듯 말했다.
"우와, 우리 할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할아버지네?"

이 프로그램은 덕성초의 방학 중 방과후수업인 '야! 숲에서 꿈꾸고 놀자'다. 지난해 봄부터 진행해왔는데 학기 중에는 2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방학 때도 7명이 나왔다. 자연에서 뛰놀 기회가 많지 않은 아이들은 수업이 즐겁다. 도영(8·가명)군은 쉬는 시간 없이 85분간 진행된 수업이 끝나자 나이테를 따라 움직이던 색연필을 놓지 않은 채 투덜댔다. "아~ 벌써 끝났어요. 수요일마다 그래요. 맨날 시간이 부족해요."
수업을 진행한 강사 이선옥씨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 "1시간 25분을 수업하는데 중간에 5분 쉬기도 힘들어요. 지금이야 날씨가 추워 실내 수업을 하지만, 봄여름엔 학교 화단에 나가 꽃이나 곤충을 직접 관찰하거든요. 다들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산림청에서 파견된 ‘숲 해설사’ 출신인 이씨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덕성초에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총 40차시로 구성된 교육 과정은 공공기관인 한국산림진흥원이 직접 제작했다. 생태 교육 전문가들이 참여해 어린이가 흥미로워할 만한 학습 주제를 고심했다고 한다. 수업 방식 역시 수업 대상인 초등 1~2학년의 눈높이에 맞춰 놀이와 체험 중심으로 설계됐다. 교실은 수업 시간마다 작은 '숲 놀이터'로 바뀐다.
숲 해설사가 교실로... 영어·독서만 하던 방과후 수업이 다양해진 이유
앞으로 지역 사회의 전문가가 전국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와 아이들의 다양한 소양을 길러주는 방과후학교를 더욱 확대한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온동네 초등돌봄·교육' 정책 일환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초등 돌봄 및 교육에 바라는 점을 반영해 교육부는 방과후 프로그램의 질적 개선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학과 전문기관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기로 했다. 협력 대상 중 하나가 정부 부처다. 분야별 높은 전문성과 공공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부처와 공공기관들도 각자 다루는 주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이해도와 흥미를 높이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고 한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각 부처와 합력해 초등학교 수준에 적합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개발, 공급하기 시작했다. △산림청의 숲교육 △농업진흥청의 농촌교육 △산업통상부의 공학교실 △특허청의 발명교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먹거리탐험대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교육 등 19개 부처·청이 전문성을 살린 60여 종의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하고 전문 강사도 지원하고 있다.
학교 입장에서는 교사들이 가르치기 어려운 분야를 수준 높은 전문가가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는 게 매력적이다. 한국산림진흥원은 산림청 소속의 숲 해설사 170여 명을 '방과후학교 강사'로 재교육해 700여 개 초교에 파견했다. 봄에서 여름까지는 학교 화단에서 꽃과 나무, 곤충과 조류를 관찰하고,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과 겨울엔 실내에서 나무 단면·열매·낙엽 등을 활용해 토양 생물을 탐구한다. 게임을 통해 탄소중립 같은 어려운 개념도 자연스럽게 접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은 소관 분야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와 흥미를 높이기 위해 학생이 보다 쉽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방과후 프로그램 개발·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체험활동 등을 통해 정규 수업 시간에는 배우지 못한 것들을 익히고 받아들인다. 덕성초에서 1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이씨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아이들이 직접 씨앗을 뿌려 키운 봉숭아를 각자의 화분에서 운동장 화단으로 옮겨 심었던 날을 꼽았다.
"매주 수요일마다 와서 화분을 들여다보면, 무럭무럭 자라 있더라고요. 제가 없는 동안에도, 아이들이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물을 주며 돌본 결과였죠. 여름 직전에 운동장 화단에 옮겨심고 나니까 때마침 꽃이 활짝 피었죠.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자기 손으로 일군 첫 수확이니 벅찰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그해 여름 내내 자신이 키운 꽃을 바라보며 성장해 갔다.
이처럼 체험 중심의 방과후수업은 학생들의 스트레스 완화와 정서 안정으로도 이어진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텃밭체험 프로그램 ‘교실 속 자연, 마음속 치유’ 수강생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감정인식·감정표현 등의 ‘정서조절 효과’가 6.2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효능감·회복력 등 ‘자아탄력성’ 역시 5.74% 높아졌고, 친구관계와 학교생활 만족도를 포함한 ‘학교 적응 효과’ 역시 4.07% 늘어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 강화에도 기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부모들의 체감 만족도 역시 높다. 이씨는 "공개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학부모 반응이 특히 좋다"며 "특히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자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기가 힘든데, 방과후에서 야외 체험 활동을 주도해주니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고 밝혔다. 방과후수업 운영을 총괄하는 덕성초 늘봄 업무담당교사도 "지역 연계형 온동네 초등돌봄·교육은 정규 교과활동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내용을 교육하기에 학부모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높다"며 "비단 돌봄 공백이 있는 학생뿐 아니라 학교 교과 외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보려는 학생들이 많이 신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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