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의 성지였는데...' 왓챠는 왜 왓챠다움을 포기했나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2. 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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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왓챠

한때 '넷없왓있'(넷플릭스엔 없고 왓챠엔 있다)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사랑받았던 토종 1세대 왓챠가 생존의 기로에 섰다.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여전히 의미 있는 서비스로 평가받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사실상 경쟁에서 밀려난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압도적 국내 OTT 이용률을 자랑하는 넷플릭스와 희비가 엇갈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왜 왓챠는 실패했으며, 다른 선택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순 없었을까.

왓챠는 2012년 영화 평가 서비스(현 왓챠피디아)로 시작해, 4년 뒤인 2016년 1월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OTT 왓챠플레이(현 왓챠)를 출시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글로벌 OTT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는데, 당시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왓챠였다. 티빙과 웨이브는 다시보기 서비스에 가까웠고, 쿠팡플레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두 플랫폼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난해 12월 기준 넷플릭스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1516만명이었지만, 왓챠는 39만9700명에 그쳤다.(와이즈앱·리테일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5122만명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결과) 왓챠는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MAU가 30만대까지 밀려난 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용자가 급감하자 재정 상태도 급속도로 악화됐다. 2024년 말 왓챠의 누적 결손금은 2670억원, 자본총계는 -875억원으로 자본보다 부채가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2021년엔 인라이트벤처스, 두나무, 카카오벤처스 등에서 49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투자를 받았지만, 만기 기한인 2024년 11월까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했다. 투자자 중 한 곳이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왓챠는 지난해 8월부터 법정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지난달 13일 서울회생법원에 '인수합병 추진 및 매각 주관사 선정 기준에 대한 허가 신청'을 제출하고 회생계획안 제출 연장을 요청한 상태로, 매각에 실패하면 폐업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과 왓챠의 '좋좋소' 시즌4

그렇다면 한때 시네필(영화광)의 성지로 불리던 왓챠는 왜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된 걸까.

OTT 산업은 대표적인 규모의 경제 시장이다. 가입자 수가 늘수록 콘텐츠 투자 여력이 커지고, 더 많은 콘텐츠가 다시 가입자를 끌어오는 구조다. 이 선순환의 초입에서 넷플릭스는 이미 글로벌 자본을 등에 업고 있었다. 매년 수십조 원에 달하는 콘텐츠 투자, 적자를 감수한 공격적인 확장, 그리고 전 세계를 동시에 시장으로 삼는 전략은 한국 스타트업 수준의 자본력을 가진 왓챠와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실제 한 업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에 "한국 플랫폼은 작품 하나의 성과에도 회사의 기초체력이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넷플릭스는 오히려 매출이 부진한 국가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곤 한다. 압도적인 자본력의 차이가 곧 콘텐츠의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체급 차에도 왓챠는 넷플릭스와 같은 길을 선택했다.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 대중적 콘텐츠 확보를 통해 '종합 OTT' 포지셔닝을 노린 것이다. 2022년부터 오리지널 작품으로 선보인 드라마 '좋좋소'는 국내 웹드라마 최초로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에 초청될 정도로 호평받았지만, 대중적 파급력을 만들기엔 제작 규모와 마케팅 여력 모두 부족했다. 특히 글로벌 유통이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오리지널 작품 제작은 비용 회수가 어려웠다.

왓챠의 진정한 강점은 평점 기반 추천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 기술이었다. 그러나 왓챠는 이를 극대화하는 대신 대중형 OTT 경쟁에 뛰어들었고, 정교한 큐레이션보다 콘텐츠 라이브러리 확대에 집중했다. 추천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 규모를 키워 이용자를 모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었던 왓챠는 결과적으로 넷플릭스보다 약한 넷플릭스, 디즈니+보다 약한 디즈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를 수도 있지: 왓챠 영화 주관' 포스터

이론적으로 보면 왓챠가 선택할 수 있었던 생존 전략은 분명 존재했다. 첫째는 영화 전문 플랫폼으로의 정체성 강화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고전영화, 해외 영화제 수상작 등 대중형 OTT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않는 영역에 집중했다면 왓챠는 대체 불가능한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OTT가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이 되는 전략이다. 왓챠가 전성기를 맞았을 때, 플랫폼의 독보적인 색깔은 국내 독립영화부터 유럽의 아트하우스 영화, 희귀한 고전 영화 등 다양성에 무게를 둔 콘텐츠 구성이었다. 실제 지난달 29일부터 4일간 개최된 10주년 기념 영화 상영회 '다를 수도 있지: 왓챠 영화 주관'은 티켓 2116석이 예매 오픈 3분 만에 매진되는 등 취향 맞춤 콘텐츠를 향한 이용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재차 입증했다.

두번째는 B2B 기술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왓챠의 데이터는 단순 시청 기록이 아닌 정성·정량 데이터가 결합된 구조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컸다. 대부분의 OTT 데이터는 시청 여부, 시청 시간, 이탈 시점 같은 행동 데이터에 집중돼 있지만, 왓챠는 이용자가 직접 입력한 별점, 평가, 선호 정보라는 명시적 데이터를 대규모로 축적해왔다. 행동 데이터는 단순히 시청 여부만 알려주지만, 평점 데이터는 왜 좋아하는지, 왜 싫어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고로 왓챠는 콘텐츠 기획과 편성 전략에 활용 가치가 높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체 플랫폼 운영 대신, 이 데이터 분석 기술을 IPTV, 방송사, 제작사나 투자사 등 콘텐프 플랫폼 전반에 제공하는 모델을 택했다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가능성은 충분했다.

셋째는 전 세계 대중을 상대로 한 경쟁이 아닌 영화 소비 문화가 강한 일본과 유럽 등의 마니아층을 겨냥한 확장 전략이다. 2024년 기준 일본은 연간 1억5500만명이 극장을 찾고 있으며(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유럽 전역에서도 극장 방문 수가 8억회를 넘기는 등 견고한 영화 소비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유럽시청각 연구소 European Audiovisual Observatory, 2024) 이러한 시장에서 왓챠가 평점 기반 추천과 큐레이션 경험을 활용했다면 대규모 콘텐츠 투자 없이도 충성도 높은 글로벌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왓챠의 현재는 분명 성공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를 단순한 실패 사례로만 남기긴 아깝다. 왓챠의 사례는 한국 콘텐츠, 플랫폼 산업 전반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는가?' 왓챠는 넷플릭스를 넷플릭스의 방식대로 이기려 했고, 그 선택은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만약 왓챠가 끝까지 왓챠다움을 선택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한국 플랫폼 기업들이 지금도 직면한 생존과 성장의 핵심 과제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