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1m 자르고, 1500바늘 꿰매”… 이덕화 오토바이 사고 회고

배우 이덕화가 청춘스타로 인기를 끌던 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경험을 돌이켰다.
이덕화는 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과거 25세 당시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을 언급했다.
이덕화는 “좋은 작품 출연해서 위치가 좋아지면 사람이 조금 덜 조심하게 된다. 까부는 순간 사고가 나고 큰일이 닥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사고 당시 “죽었었다”며 “버스가 만원이 되면 10톤이 나간다. 그 밑에 오토바이가 400㎏, 그 밑에 내가 있었다. 그 상태로 상당한 거리를 끌려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허리띠만 남았다. 가죽 재킷도 목만 남았다. 다 없어져 버렸다. 그 무게에 눌린 채로 50~60m를 갔다”고 했다.
이 사고로 이덕화는 5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장을 1m 이상 잘라내고, 1500바늘을 꿰매야 할 정도의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불편함이 있기는 하다.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라며 “치료를 수술실에서 받았다”고 했다.
이덕화는 “의사 선생님들이 매일 ‘오늘이 고비예요’ 하다가 14일 만에 깨어났다. 진통제 없이는 단 1시간도 못 버틸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동료들이 와서 보고 가면 가서 전하는 거다, ‘쟤 못 살겠더라’라고. 그래서 미리 조의금 걷고 묵념하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했다.
당시에는 이덕화의 부친인 배우 고(故) 이예춘 선생의 몸도 좋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 혈압으로 쓰러져서 휴양도 하고 해서 몸이 많이 좋아졌었는데 내가 사고 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쇼크로 일찍 돌아가셨다”며 “내 바로 옆방에 계셨다. 몸이 많이 쇄약해지셔서 거기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덕화는 “저는 (아버지) 빈소에서 절도 못 했다. 몸이 걸음을 못 걸을 상태였다. 절이 안 되더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랑 영화 한 편 찍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그런 걸 못 해본 게 아쉽다. 이름은 안 나가도 한 화면에 있었으면”이라고 했다.
사고 이후 3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부인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덕화는 “결혼이나 약혼을 한 것도 아니고, 여자 친구 사이였는데 매일 병원 와서 3년을 고생했다. 거기서 숙식을 했다”며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믿고 3년을 고생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 말고 물고기로 태어날까 싶다. 그 사람을 못 만나면 어떤 의미가 있나”라고 했다.
이덕화는 1972년 데뷔해 ‘전설의 터프가이’에서 ‘회장님 전문 배우’로 불리기까지 다채로운 연기 경력을 보유한 국민 배우다. 백상예술대상, 방송 3사 연기대상 등 시상식에서 다수 수상한 그는 2015년 은관문화훈장도 수훈했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동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덕화의 부친 배우 고(故) 이예춘 선생은 1955년 영화 ‘피아골’로 데뷔했다. 그는 1962년 제1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7년 11월 23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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