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다큐 새 장 쓰는 '나무의 노래'

다큐멘터리 한 편이 이렇게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숨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나무의 노래'(감독 진재운)는 질문보다 먼저 호흡을 건네는 영화다. "제대로 숨 쉬어본 게 언제인가"라는 문장이 이 작품의 관람 후기를 대신한다. 부산경남대표방송 KNN과 부산의 영상제작사 최작기획(대표 최은지)이 공동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산소의 근원인 나무를 통해,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설명'이 아닌 '체험'으로 끌어온다.
지난 3일 부산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두 번째 시사회에는 400여명의 관객이 모였다. 1월 23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 이은 자리다. 아직 정식 개봉도 하지 않은 다큐에 이처럼 많은 관객이 몰렸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환경의 언어를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나무의 노래'의 중심에는 88세의 한 여인이 있다. 조선 황실의 후손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니카라과 밀림 한가운데서 100만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다.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숲을 일군 이 여정은 인간 다큐이자 환경·역사 다큐의 경계를 넘나든다. 영화는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 침묵과 자연의 리듬, 나무의 호흡을 따라가게 한다.
이 절제된 연출은 관객을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니라 영화의 동행자로 만든다. 시사회 이후 수집된 250여개의 관람평 중 99% 이상이 긍정적 평가였다. "죄책감을 강요하지 않는 생태 영화", "나도 나무를 심고 싶어졌다"는 반응은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위기의 경고에 집중해온 기존 환경 다큐와 달리, 이 영화는 생명력의 전염을 선택했다.
작사가 김이나의 재능기부 내레이션과 영화 '기생충' 번역가 달시 파켓의 해외 배급용 번역 참여 역시 작품의 진정성을 더한다. 각계 전문가들은 '나무의 노래'를 '힐링'을 넘어선 '영성적 체험'으로 평가한다. 영화가 끝난 뒤 선재 스님이 "여운을 침묵으로 즐기고 싶다"고 말한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산 GV 현장에서 홍법사 심산 스님이 전한 메시지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주인공의 멘트가 해탈을 한 수행자 같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 놓여져 있는 삶을 한번 되돌아 보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를 심는 일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행위이다. 기후 위기가 특정 지역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 생존의 문제임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나무의 노래'는 당분간 일반 극장 개봉 대신 '참여형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단체 관람을 중심으로, 상영 그 자체가 행동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상기후의 시대, 나무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산소를 내뿜는 존재이자,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이다. '나무의 노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기후 위기'를 말하면서도 공포를 동원하지 않는 데 있다. 숫자와 경고로 가득한 담론 대신, 나무를 심는 한 인간의 태도와 삶의 리듬을 따라가며 관객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상영관을 나서는 발걸음에는 불안보다 조용한 의지가 남는다. 엔딩 크레디트가 흐르는 동안 스크린을 채우는 것은 사람보다 나무와 숲, 바람이다. 그 정적 속에서 관객은 깨닫는다. 우리가 자연을 구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실은 자연이 우리를 살려왔다는 사실을.
진재운 감독의 연출은 '불친절함'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 불친절함은 사유의 여백을 남기기 위한 배려에 가깝다. 설명하지 않기에 관객은 스스로 느끼고 해석하게 된다. 빠른 속도와 즉각적인 결론에 익숙한 시대에,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늦춘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관객은 잊고 지냈던 감각을 하나씩 되찾는다. 숨 쉬는 감각, 바라보는 감각, 그리고 자연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이 다큐멘터리가 지역을 넘어 K-다큐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팝과 K-무비가 세계를 향해 뻗어간 것처럼, '나무의 노래'는 '생태적 서사'라는 또 다른 한국형 콘텐츠의 길을 제시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주장하지 않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어떤 속도로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한 여성의 이야기는 상징이지만, 그 상징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변주될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마음, 자연을 대하는 태도 하나만으로도 삶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노래'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삶의 방향을 숲 쪽으로 틀어놓는다.
Copyright © 경남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