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잘쓰는 공무원, 행정 정확도 높이고 시민과 더 가까워진다
⑤ AI와 함께 일하는 공무원
AI 행정의 실전은 ‘현장 역량’
일시적 특강 아닌 맞춤형 교육
바로 쓰고 관리하는 훈련 필요
조직 차원 보호·성과 칭찬 구조
도입 넘어 ‘역량강화 전환’ 해야



AI 행정이 실패하는 가장 흔한 장면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아무도 안 쓴다."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조직과 교육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매일 문서를 쓰고, 민원을 처리하고, 규정을 해석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 이런 업무 세계에 AI가 들어오면 효율이 오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도 커진다. "이걸 써도 괜찮을까?", "혹시 정보가 새면 누가 책임질까?", "AI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쓰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AI 행정의 성패는 결국 이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답은 새로운 기술을 더 얹는 데 있지 않다. 교육과 조직 설계에 있다. 공무원이 AI를 안전하게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조직이 그 사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때 AI 행정은 비로소 현장에 자리 잡을 수 있다.
◇행정 혁신의 실전은 '내부'에서 시작
시민이 떠올리는 AI 행정의 장면은 대개 챗봇이나 자동 민원 응답 화면이다. 하지만 행정 혁신의 실전은 서비스 화면보다 내부에서 먼저 일어난다. 공무원의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도 생기기 어렵다.
문서 초안 작성, 규정 확인, 민원 분류와 요약, 회의록 정리, 자료 취합…. 공무원의 하루는 이런 반복 업무로 채워져 있다. 이 업무 수행 방식이 바뀌어야, 민원 응대 속도와 설명 방식, 정책 안내의 정확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AI 행정의 출발점은 "AI를 도입했다."가 아니라, "공무원이 AI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로 표현해야 한다. 다시 말해 AI 행정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 역량의 문제다.
◇'금지'가 아니라 '관리된 활용' 필요한 이유
해외 공공부문이 생성형 AI를 대하는 태도는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다. 무작정 막지도, 무작정 쓰게 하지도 않는다. 먼저 공무원이 지켜야 할 원칙을 문서로 정리하고, 그 원칙 안에서 '관리된 활용'을 허용한다.
영국 정부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공개한 생성형 AI 사용 지침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공무원이 AI를 업무 개선에 활용할 수 있지만, 안전과 책임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면 공식 채널을 통해 공유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접근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공공조직에서 AI 활용은 개인의 재량이 아니라, 조직이 만든 가드레일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혼자 판단하도록 방치하면 누군가는 과도하게 쓰고, 누군가는 아예 쓰지 않는 편차가 생긴다.
이 편차는 곧 위험과 비효율로 이어진다. 반대로 최소한의 기준을 제공하면 공무원은 안심하고, 조직은 리스크를 관리하며, 시민은 설명 책임을 기대할 수 있다.
◇AI 행정의 핵심은 '판단과 책임의 재배치'
공무원은 본질적으로 판단자다. 법과 규정, 사실관계와 공정성, 지역의 맥락을 종합해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진다. AI가 들어와도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바뀌어서는 안 된다.
다만 바뀌어야 할 것은 판단 이전에 소모되던 준비 시간이다. 규정을 찾고, 문서를 정리하고, 유사 사례를 확인하고, 초안을 만들고, 자료를 취합하는 시간은 AI가 보조할 수 있다. 공무원은 그 시간을, 시민을 위한 설명, 현장 확인, 복합 민원 조정, 정책 설계와 평가로 옮길 수 있다.
그래서 AI 행정의 기본 설계는 "AI가 일을 대신한다."가 아니라, "사람이 판단하고 AI가 시간을 벌어준다."라는 협업 구조여야 한다. 이번 특집이 강조하는 교육과 조직 혁신도 바로 이 협업 구조를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바로 쓰는 훈련'… '책임 지키는 훈련'
AI 교육을 전 직원 대상 특강 한 번으로 끝내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교육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되고, 행동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행정 조직에서는 직급과 역할에 따라 AI를 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우선 실무자에게 필요한 교육은 말 그대로 실무와 바로 연결되는 내용이 필요한 것이다. 즉 실무자가 원하는 것은 기술 철학이 아니라 "내 일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이다. 어떤 업무에서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 어떤 입력을 하면 도움이 되는지, 어떤 결과는 참고만 하고 어떤 결과는 반드시 검증해야 하는지 같은 실전형 내용이 필요하다.
문서 초안 작성 보조라면 AI가 만든 초안을 어떤 기준으로 다듬고, 최종 문장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까지 포함돼야 한다. 민원 업무라면 요약과 분류 기능이 시민 응대에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까지 연결돼야 한다. 회의록 정리나 자료 취합 자동화 같은 기초 기능도 실무자가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변화다.
관리자의 경우는 실무자와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 관리자는 AI를 직접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조직이 안전하게 쓰도록 설계하는 사람이다. 어떤 업무를 AI로 자동화할지 결정하는 기준, 개인정보와 보안, 법적 책임을 점검하는 체크리스트, 오류가 발생했을 때 정정하고, 중단하고, 보고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로그와 감사 체계를 운영하는 것도 관리자 역할이다.
이처럼 실무자와 관리자 교육이 달라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AI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 경계가 명확할수록 공무원은 안심하고 AI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강'이 아니라 '학습 체계'가 필요하다
AI 교육은 한 번 듣고 끝나는 특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공부문에서 AI는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를 익히는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시민을 대하는 방식을 함께 바꾸는 변화의 촉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I 교육의 핵심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변화 관리에 있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중요하다.
조직이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작은 성공 사례를 내부에 축적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컨대 민원 요약 보조 기능을 활용해 처리 시간이 줄어들었다면, 그 결과만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사용했고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까지 함께 공유돼야 한다.
그래야 다른 부서도 같은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반대로 AI 결과를 그대로 사용해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사례를 숨기지 않고 공개해 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를 조직 차원에서 학습해야 한다.
조직이 실패를 처벌이 아니라 학습으로 받아들일 때, 공무원은 "괜히 했다가 책임만 커지는 것 아닐까?"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AI 교육은 결국 사람에게 "해봐도 괜찮다."라는 신호를 주는 과정이다. 그 신호가 반복될 때, AI는 일회성 실험이 아니라 조직의 일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 행정 현실에서 더 중요한 두 가지
국내 공공부문에서 AI 활용을 논의할 때 특히 중요한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감 정보 보호, 다른 하나는 행정 용어의 특수성이다. 현장의 실무자들은 이미 "편해지는 만큼 위험도 커진다."라는 감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AI 교육에는 반드시 '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히 포함돼야 한다.
개인정보, 내부 비공개 정보, 민감 정보는 어떤 경우에도 외부 서비스에 그대로 입력돼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이 모호하면 현장은 혼란에 빠진다. 따라서 조직 차원에서 입력 금지 정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불가피한 경우의 예외와 승인 절차까지 함께 마련해야 한다.
AI가 만든 결과 역시 참고 자료일 뿐, 그대로 사용되는 문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출처 확인과 규정 대조, 상급자 승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행정 문서로서 의미가 있다.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행정 용어의 특수성이다. 행정 문서는 일상 언어와 다르다. 법령과 조례, 내부 결재 문장에는 오랜 관행과 법적 의미가 담긴 문법이 있다. AI가 아무리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도, 이 문법을 벗어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AI를 행정에 쓰려면, 행정 용어와 표현에 맞춘 사용 지침과 템플릿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공무원이 "표현 하나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도록, 조직 차원의 기준이 뒷받침돼야 한다.
◇'AI를 쓰는 사람' 보호·칭찬하는 조직
AI 도입이 조직 내 반발을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 공포가 아니라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다. 새로운 도구를 쓰는 순간, 공무원은 위험을 혼자 떠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 그래서 조직은 AI 활용을 개인의 위험한 실험이 아니라, 조직이 보호하는 실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 시범 업무를 정해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사용할 수 있는 범위와 절차를 명확히 하며, 체크리스트와 승인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이 업무에서는 여기까지만 사용한다.", "외부로 나가는 문장은 반드시 사람 검토를 거친다." 같은 기준이 분명할수록 공무원은 안심한다. 안심이 쌓이면 활용이 늘고, 활용이 늘면 성과가 생기며, 성과는 다시 조직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칭찬의 구조다. AI를 잘 활용해 업무를 개선한 사례가 있다면, 조직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공유해야 한다. 반대로 실수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면, 조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공무원은 위험을 피하려고 AI를 쓰지 않게 되고, 시스템은 방치된다. AI 행정의 성패가 기술보다 조직문화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은 '기술자'가 아니라 '판단자'
결론은 분명하다. AI와 함께 일하는 공무원은 기술자가 아니라 판단자다. AI는 시간을 벌어주고, 사람은 그 시간을, 시민을 위해 더 잘 쓰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공공부문에서 AI가 자리 잡아야 할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조직이 함께 가야 한다. 실무자는 바로 쓰는 훈련을 통해 실제 변화를 체감해야 하고, 관리자는 책임과 안전을 지키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AI 행정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문제이며, 행정의 핵심은 언제나 사람이다.
AI 행정이 성공하는 순간은 "AI가 정말 똑똑하다."라는 감탄이 나올 때가 아니다. "공무원이 설명을 더 잘한다.", "민원이 더 빨리 풀린다.", "시민이 더 안심한다."라는 체감이 쌓일 때다. 그 체감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바로 조직과 교육, 그리고 사람 중심의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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