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찰 위성 2기, 3년간 유럽의 핵심 위성들에 접근해 감청”

이철민 기자 2026. 2. 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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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유럽 통신 위성들에 수십 ㎞ 이내 접근해 머물며 데이터 가로챈 것으로 파악
해킹한 데이터 분석해서, 해당 위성들의 추락ㆍ궤도 이탈 지시 가능
러, 작년 6월엔 보다 스토킹 기능 강화된 스파이 위성 2기 발사
오랜 지연 끝에, 작년 3월 유럽우주국(ESA)의 아리안 6 로켓이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의 유럽 우주기지에서 상업용 목적의 발사에 처음 성공하고 있다. 이 로켓에는 고도 800㎞에서 기동하는 프랑스의 군사관측위성 CSO-3호가 탑재됐다./ESA 배포

나토(NATO)는 러시아가 발사한 정찰 위성 2기가 지난 3년 동안 유럽이 쏘아 올린 지구 정지궤도(GEO) 상의 핵심 통신 위성 17기에 가까이 접근해 통신을 가로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지구 정지궤도(GEO) 위성은 고도 약 3만6000㎞에서 지구 자전주기와 같은 각(角)속도로 돌아, 지구에서 보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성으로, 방송ㆍ통신ㆍ기상 관측 등에 많이 쓰인다.

유럽의 안보 당국자들은 이 감청 의혹이 지금까지 공개된 적은 없지만, 이 스파이 활동을 통해 12~17개의 핵심적인 유럽 위성들이 전송하는 민감한 정보가 노출되고, 앞으로 러시아가 해당 위성들의 궤도를 조작하거나 심지어 충돌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우려한다고, FT는 보도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유럽 위성들을 GEO 고도에서 지난 3년간 밀착 감청한 러시아 위성은 루치-1호(Luch-1ㆍ2014년 발사)와 2호(2023년)로, 이 시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와 겹친다. 서방의 군ㆍ민간 우주 당국은 루치-1, 2호가 지난 3년간 궤도 상에서 반복적으로 의심스러운 기동을 하는 것을 추적 관찰했다.

루치-1과 루치-2가 접근한 유럽 위성들은 주로 위성 TV 등 민간 용도로 사용되지만, 정부 통신과 일부 군사 통신도 함께 담당하고 있다.

서방 우주 당국은 궤도 데이터와 지상 망원경 관측을 통해, 루치-1, 2호가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중동의 광범위한 지역에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럽의 주요 정지궤도 위성들에 20~200㎞까지 위험할 정도로 접근해, 수 주 동안 머무는 행태를 반복하는 것을 파악했다. 러시아는 루치-1호에서 ‘실험 운용’한 결과를 통해, 루치-2호를 특히 공세적으로 운용했다.

독일연방군의 우주사령부 사령관인 미하엘 트라우트 소장은 FT에 “두 위성 모두 신호정보(SIGINT) 수집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는 서방의 통신 위성에 바짝 붙어 머무르는 행태를 가리킨다.

또 다른 고위 유럽 정보 관계자는 루치 위성들이 지상국에서 유럽 위성들로 송신되는 데이터 빔의 좁은 원뿔(cone) 안에 들어가기 위해 바짝 가까이 자리 잡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해당 유럽 위성 중 다수는 오래전에 발사돼 암호화 기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에서 운용을 위해 위성에 보내는 ‘민감한’ 명령 데이터가 암호화되지 않은 채 송신된다. 이 경우, 적대국이 해당 명령 데이터를 기록해 분석하면, 향후 간섭은 물론 위성 파괴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다.

트라우트 소장은 “루치 위성들이 접근한 대상 위성들의 ‘명령 링크(command link)’, 즉 위성과 지상 관제소를 연결해 궤도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통신 채널을 가로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정보가 있으면 러시아가 지상 관제소를 흉내 내어 위성에 거짓 명령을 송신함으로써, 미세한 궤도 조정을 담당하는 추진기(thruster)를 조작할 수 있다. 이 추진기들은 위성의 정렬을 무너뜨리거나, 심지어 위성을 지구로 추락시키고 궤도를 이탈시키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러시아 스파이 위성들의 우주 공간 기동은 해저 인터넷 케이블ㆍ전력 케이블 절단과 마찬가지로 최근 수년간 러시아가 저질러 온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이다.

FT는 “정보·군사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이런 파괴적 활동을 우주 공간으로까지 확장하고 그 능력을 계속 개발하는 것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 미국도 유사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가장 발전한 우주 스파이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으며 이를 위성 ‘스토킹(stalking)’에 더욱 공격적으로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 정보 당국자는 루치-1,2호 자체는 위성을 직접 교란(jamming)하거나 파괴할 능력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FT에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들 위성을 통해, 지상이나 궤도에서 해당 시스템을 어떻게 교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막대한 정보를 이미 수집했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 어떤 위성을 어느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이후에 지상과 궤도 상에서 교란이나 해킹에 악용할 수 있다.

미국의 우주 추적 기업인 슬링샷 에어로스페이스의 벨린다 마샹도 이 신문에 루치 위성들이 “지구 정지궤도 위성 주변을 기동하며, 종종 수개월 동안 아주 가까이에 주차하듯 머무르고 있다”며 “현재 루치-2호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서비스하는 대형 위성인 **인텔샛 39(Intelsat 39)에 근접한 곳에 있다”고 말했다. 슬링샷의 데이터에 따르면, 루치-2호는 2023년 발사 이후 유럽 상공에서 민간ㆍ정부 목적의 통신을 수행하는 정지궤도 위성 최소 17기 주변을 배회해 왔다.

프랑스의 위성 추적 회사 알도리아(Aldoria) 측은 “러시아의 두 위성은 분명한 목적과 관심을 갖고 같은 계열의 위성들을 반복적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해당 위성은 모두 나토에 기반한 당국이 운영한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는 작년 6월 코스모스 2589와 코스모스 2590이라는 2개의 새 정찰 위성을 발사했다. 두 위성도 루치-1, 2와 유사한 기동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알도리아 측은 코스모스 2859는 현재 지구 상공 약 3만5,000km를 도는 정지궤도 위성들과 같은 범위로 이동 중이라고 밝혔다.

◇ 우주는 스파이 위성들이 서로 꼬리 무는 스토킹 공간

우주 공간이 이런 스파이 위성들의 스토킹 공간이 된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6월, 미국의 USA 270호 위성이 중국의 쌍둥이 위성인 스옌 12-01호와 스옌 12-02호에 접근했다. USA 270 위성은 GEO 위아래 수십 ㎞를 오르내리며 각국이 발사한 위성들의 목적과 기능을 파악하는 스파이 위성이다. 모든 것이 비밀에 싸인 이 중국 위성들을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2022년 6월 미국의 스파이 위성인 USA 270호가 중국의 쌍둥이 위성 스옌 12-01과 12-02호에 접근하자, 스옌 12-02호는 태양을 등지는 위치로 옮겨가 오히려 태양 빛을 정면으로 받게 된 USA 270호를 관찰했다. 위성들의 당시 움직임을 재연한 컴퓨터 그래픽./COMSPOC

그러나 USA 270호가 접근하자, 중국의 두 위성은 슬쩍 자리를 옮겼다. 되레 스옌 12-02호는 태양 빛을 등지는 위치로 이동해, USA 270호를 관찰했다. USA 270호는 태양을 등진 스옌 12-02호를 관찰할 수 없었다.

같은 해 8월엔 러시아가 스파이 위성 코스모스 2558호를 미국의 스파이 위성인 USA 326호와 동일한 궤도로 발사했다. 코스모스 2558호는 수일 뒤 바로 USA 326호에 바짝 붙어 미국 위성의 기능과 임무를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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