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카리브 해 노예 기록유산으로 돌아보는 인종차별 역사

유럽과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지 1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인종차별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2020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이 경찰 무릎에 목이 눌린 채 숨을 겨우 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다시금 인종차별 문제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인종차별과 경찰의 강압 행위에 항의하는 'Black Lives Matter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캠페인이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걸쳐 확산되었다.
2022년 9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미국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이행 상황을 심의한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법 집행관들이 유색인종 및 소수 민족집단에 과도한 폭력을 가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한, 인종과 관련된 총기 사상자, 증오 범죄와 발언 사건 발생률이 크게 늘었으며 유색인종 및 소수민족계가 의료, 교육, 주택 등 실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를 제공받는 데 있어 지속적인 차별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오늘날 인종차별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조임을 보여주는 기록유산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 차별의 시작점은 단연 노예제도이다. 16~19세기 대다수의 아프리카 흑인이 유럽 상인의 중개로 노예로 팔려 갔던 대서양 노예무역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차별이라는 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출신 상인들은 카리브해의 땅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생산된 설탕을 유럽에 가져다 팔았고 그 수입으로 옷과 술 등을 구매해 아프리카 지역에서 노예로 팔린 흑인들과 맞바꾸는 교역 구조를 형성했다. 900만 명 이상의 서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은 당시 대서양을 따라 카리브 해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바베이도스는 17세기 영국 최초 노예 식민지로 당시 영국 농장주와 흑인 노예들이 섬으로 이주했고, 지금도 인구 28만 명 중 대부분이 아프리카계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바베이도스의 카리브 해 지역의 노예 기록 유산은 17~19세기에 걸쳐 노예로 살았던 카리브해 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반영하는 여러 종류의 문헌으로 이루어진 고유한 기록 컬렉션이다. 이 기록물은 현존하는 노예·인종 관련 기록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아프리카 출신 카리브 해 사람들에 대한 소유와 통제의 방식, 당시 농장 사회의 운영 구조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컬렉션의 대부분은 더 이상 원본이 남아있지 않지만, 남은 컬렉션은 모두 선명하게 쓰여있어 당시 농장을 어떻게 관리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예들이 어떤 방식으로 통제된 삶을 살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카리브 해 지역의 노예 기록 유산"의 컬렉션을 통해 당시 노예들이 농장 소유주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선물로 보내지기도 하고 그의 채무를 갚을 수 있는 소유물로 여겨질 만큼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당시 정부의 입법체계는 노예제도로 운영되는 농장사회의 번영을 보장하고 있어 왜 그러한 통제와 처우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차별, 혐오의 역사를 반증하는 부의 유산(negative heritage)은 누군가에게 지우고 싶은 과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담긴 역사일 수 있다.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유산의 가치를 후손들이 기억하고 그 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현재 세대의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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