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에서 대선 후보로’ 카다피 아들, 자택서 괴한에 암살당해

리비아의 독재자 고 무아마르 카다피의 둘째 아들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54)가 무장괴한들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로이터, 아에프페(AFP), 에이피(AP) 통신 보도를 보면, 사이프 이슬람의 프랑스인 변호사 마르셀 세칼디는 “사이프 이슬람이 3일 리비아 서부 진탄에 있는 자택에서 4인조 무장괴한에 의해 살해됐다”고 밝혔다. 사이프 이슬람의 보좌관 압둘라 오스만 압두라힘도 리비아 아흐라르방송에 “정체불명의 남성 네명이 감시카메라를 무력화한 후에 그를 살해했다”고 전했다. 리비아 검찰은 부검 결과 사인이 총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칼디 변호사는 며칠 전 사이프 이슬람의 신변이 위협받아 카다피 일족의 부족장이 경호 인력을 보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사이프 이슬람이 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사이프 이슬람의 측근들은 리비아 사법부와 국제사회에 “그의 살해 사건을 조사해서 범인과 배후를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이프 이슬람은 아버지가 통치하던 시절 리비아 정부에서 공식 직책은 맡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총리로 여겨졌다.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그는 리비아의 정치 구조를 서방에 가깝게 현대화하는 개혁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당시 반정부 시위를 두고 “피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연설을 하면서 온건 개혁파 이미지는 무너졌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11년 봉기와 관련된 반인도 범죄 혐의로 그의 체포 영장을 발부했고, 현재까지 수배 상태였다.

사이프 이슬람은 아버지의 사망 직후인 2011년 11월 인접국인 니제르로 도주하려다 리비아 남부 진탄에서 반군에 체포됐다. 사이프 이슬람이 진탄의 반군에 억류된 상태에서 2015년 리비아 법원은 시위를 탄압한 혐의로 궐석 상태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후 혁명으로 인한 혼란에 환멸을 느낀 진탄 반군이 2017년 그를 풀어줬고, 이후 그는 거처를 자주 옮기며 숨어다녔다.
그는 2021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로 등록했는데, 리비아 고등선거위원회는 그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이로 인해 불거진 법원, 선관위, 무장세력 간의 충돌 끝에 선거는 무기한 연기됐다. 옛 카다피 정권의 지지층인 남부 부족 중에선 사이프 이슬람을 질서를 되찾을 인물로 보지만, 여전히 그를 학살자의 아들로 보는 반대 세력도 많았다. 이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큰 그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리비아 전문가 이마딘 바디는 엑스에 “그의 출마와 당선 가능성이 핵심 논란이었던 대선의 주요 장애물이 사라져 선거 지형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썼다.
2011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받은 민중 봉기 중 벌어진 전투에서 카다피가 사망한 이후 리비아는 이후의 혼란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리비아는 유엔이 인정한 수도 트리폴리에 기반을 둔 정부와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의 리비아국민군(LNA)이 장악한 동부 지역으로 분열된 상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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