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도 지지 않는 고양이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한겨레 2026. 2.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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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죽는 건 못 키우겠어.” 그래서 에이아이(AI)를 새로운 반려로 삼는 사람도 있다. 영화 ‘그녀’의 한 장면.

이명석 | 문화비평가

“알아요. 제가 거기 살았어요. 양재역 근처, 커다란 미피 인형 있는 데 말이죠? 지금은 없어졌나?” 이혼과 퇴직을 함께 맞은 선배가 고양이를 키워볼까 한다며 상담을 청했다. 몇달을 뭉개다 만났는데 싱겁게 끝이 났다. “요즘은 에이아이(AI)만 한 말동무가 없어. 온갖 말에 다 대답해줘. 애들보다 나아.”

나는 선배와 헤어져 근처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십여년 전에 살던 곳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했다. 야옹! 어디선가 옅은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와 오래 지낸 사람들은 ‘야옹 시력, 야옹 후각, 야옹 청력’을 얻는다. 백미터 밖에서 고양이 똥 냄새를 맡고, 엄마 찾는 새끼의 연약한 소리에 발을 멈춘다. 곧바로 ‘숨은 고양이 찾기’를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야옹! 다가가니 조금씩 소리가 커졌다. 나는 건물 위로 고개를 들었다. 야아옹! 또렷이 들린 순간 깨달았다. 환청이었다.

내 고양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는 그곳 3층에 살았다. 직장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어느 날부터 골목에서 야옹 소리가 들렸다. 그때도 지금처럼 주변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이고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버스를 한 정류장 지나쳐, 평소와는 다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야옹! 야아옹! 이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창에서 고양이가 나를 애타게 불렀다.

언제부터였을까? 고양이는 내가 퇴근하고 골목길에 들어서면 나를 불러댔나 보다. 미안하면서도 기특했다. 다음날 버스에서 내려서는 내가 먼저 고양이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작고 가늘고 부서질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느낌인가 하면 내 방 창문에서 고양이가 손톱만 한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날아 내 귓속에 숨어드는 느낌이었다. 점점 커지는 소리를 달래기 위해, 나는 부리나케 골목길을 뛰어갔다.

환청을 들은 날, 고양이가 꿈에 나왔다. 상자에서 나오더니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물을 마시고, 사료를 오독오독 먹었다. 등을 쓰다듬으니 제법 살도 붙고 건강해 보였다. 죽기 직전 뼈가 앙상히 드러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양이가 살아 돌아왔나 생각했다. 그러다 곧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양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울지 않는 건 내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는 이사를 하고 나이가 들면서 창가에서 울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말대답이 많아졌다. “너, 사료 봉지 왜 뜯어놨어?” 억울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야옹?” “뭘 잘했다고 말대꾸야?” 내 소리가 커지면 자기도 크게 말한다. “야오옹!” 참다못해 바닥을 탁 친다. “말대답하지 마.” 귀를 탁 접으며 짧게 말한다. “양!” “대꾸하지 말래도.” “야아옹.” “넌 어째 한마디도 안 지냐?” “야아오옹.”

고양이는 말년에 몸이 안 좋아지자, 나무 상자 하나를 방으로 삼고 거의 그 안에서만 머물렀다. 야옹 소리는 더 커지고 더 빈번해졌다. 몸이 안 좋으니 바라는 일도 많았겠지. 밥 달라고 우엥, 물 달라고 우엥, 똥을 쌀 때는 더욱 크게 소리 질렀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엔 꼭 다녀왔다며 보고했다.

고양이가 떠나기 며칠 전, 답답한 마음에 휴대전화의 에이아이에게 물어봤다. “고양이가 왜 밥을 안 먹을까?” 야옹! 소리가 들렸다. 신기했다. 고양이에 대해 묻는다고 고양이 소리를 내나? 나는 계속 상담했고, 그때마다 건조한 대답의 메시지와 함께 야옹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깨달았다. 소리의 주인공은 나의 고양이였다. 작은 상자 속에서 힘없이 사라져 가면서도, 나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고 있었던 거다.

혼자의 삶이 외로워 반려의 생명을 곁에 두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을 먼저 보내면 깊은 상실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죽는 건 못 키우겠어.” 그래서 로봇 강아지에 눈을 돌리거나, 에이아이를 새로운 반려로 삼기도 한다. “이제는 세상 누구보다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상대를 만났어.” 자랑하는 선배도 만났다. 그렇다면 내겐 아주 간단한 에이아이가 필요하다. 나의 말에 절대 지지 않고 영원히 ‘야옹’이라고 말대꾸하는 작은 털덩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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