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있기는 한가?” 분양사기 피해자 피눈물 호소
철재담장·철조망·쇠사슬…전장 요새 방불
막가파식 유치권·불법점유 되풀이 난장판
공정률 97%에 공사중단, 준공승인 캄캄
분양사기 등 피해 140여명에 1300억원
옛 건축주 사기·재물손괴 실형, 법정 구속
건물 출입금지 판결에 ‘배째라’ 점거 계속
새 건축주 퇴거조치 요청…경찰은 출동만
남동구청, 새 건축주 명의변경 신청 거부

멀쩡한 상가 건물이 전쟁터 요새로
4일 오후 2시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인천논현역 1번 출구 인근 논현세일프라자. '무단침입 시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음.' 대지면적 2412㎡에 지하 4층, 지상 12층 규모의 번듯한 상가 건물(연면적 26469㎡) 외벽에 붙은 싸늘한 경고장이다.
멀쩡한 건물 사위는 철재 담장으로 꽉 막혔다. 철재 담장 쪽문 손잡이는 굵은 쇠사슬로 칭칭 동여맸다. 철재 담장과 건물 사이 통로에는 철조망을 널브러뜨렸다.

영락없는 전쟁터 요새의 모습이다. 있지도 않은 유치권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시켜 건물 안으로 쳐들어오는 불법점유와 맞서려는 방책이다.
논현세일프라자는 대한민국 공식 누리집 '토지e음'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건물이다. 필지 분할로 번지수(논현동 549-2)만 있을 뿐 공부상에는 빈터다. 2008년 1월 건축허가로 버젓이 건물이 서 있는데도 말이다.
16년 동안 이 상가 건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 상가 건물(신탁부동산)에 달린 등기상 부채만도 495억 원에 이른다. 사업권 양수 양도 사기 계약·불법 분양·미변제 차입금·공사비 채권·신탁 후순위 채권 압류 등을 더하면 그 피해액이 1320여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 분양자 등 피해자만 해도 140명에 이른다.

감정가 560억 건물에 빚이 1300억원
사업시행자인 옛 건축주 A씨는 초기 공사비 122억5000만원을 J사에 주지 않아 채무로 잡혀있는 중인 2022년 11월 B건설사와 145억 원에 새로운 시공도급 계약을 맺는다.
거기에 2020년 10월 이미 51억 원에 잔여 공사를 맡기기로 또 다른 시공사 H사와 체결한 계약서가 살아있는 상태였다.
H사는 18억 원을 들여 전기설비·냉난방·공조시설·기계설비·내벽과 천장 마감 등의 공사를 했다. 공사비 7억9564만 원을 하도급사에 지급도 했다.
A씨가 공사비를 주지 않자, H사는 2021년 6월 공사를 중단했다.

법원의 지급명령사건으로 끌고 가 유치권을 행사하고 강제경매를 통한 배당신청까지 몰고 가려는 사전작업이었다. 상가 매매와 임대 등 가짜 분양으로 걷어 들인 대금을 갚지 않으려고 쓴 술책이었다.
A씨는 사기와 재물손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2024년 12월 법정 구속됐다.
2025년 4월 30일 새벽 4시 40분 논현세일프라자 건물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20여 명이 우르르 몰려와 쇠망치로 유리문을 부수고 건물 안으로 쳐들어왔다. A씨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주도한 일로 역시 유치권 주장이었다.

닦아 주는 이 없는 피해자들의 눈물
수 분양자 93명을 포함한 신탁부동산 등기상 부채 495억원, 사업권 양·수도 사기 200억원, 매매·임대 허위 분양 50억원, 개인 등 차입금 200억원, 후순위 압류액 373억원.
준공도 안 떨어진 논현세일프라자 관련해서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액의 대강이다.
사업권을 넘겨주겠다거나 시공권을 맡기겠다고 해서 챙긴 돈이다. 분양권을 미끼로 여기저기 당긴 매매대금과 임대료다.
충남 홍성서 약국을 해서 돈을 번 40대 여성 약사 C씨는 지난해 10월 '준공이 곧 떨어진다'는 말만 믿고 4억2000만 원을 A씨 측 계좌로 건넸다. '수도권 진출'을 꿈꾸며 논현세일프라자 1층에 33㎡여 크기의 약국을 차릴 요량으로 분양권을 산 것이었다. 이 약사가 쥔 분양 계약서는 휴짓조각이 됐다. C씨의 매매대금을 받아야 하는 건물 소유권자인 신탁사는 정작 까맣게 모르는 일이었다. 분양사기를 당한 C씨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C씨와 같은 분양 사기 당사자들은 '세일프라자 불법분양 피해자 협의회'를 구성했다. 2023년 5월 인천시청 앞과 상가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피해를 호소해오고 있다.
협의회는 시공사 점유 등으로 잔여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국토교통부 신속처리팀에 알리고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업무방해가 인정되니 관할 경찰서에 고소하라"는 국토부의 권유가 있었고, 협의회는 이를 따랐다.
논현세일프라자 12층은 아직도 A씨와 시공도급을 계약한 B사 측의 관계자가 점유하고 있다.
옆 건물 옥상에서 공수하는 음식을 끼니로 12층에서 먹고 잔다.
논현세일프라자 현장 건물관리회사인 N사는 '불법점유'를 알리며 12층 B사측 관계자의 퇴거 조치를 논현경찰서에 요청했다.

법도 비켜나가는 상가 신축 현장
논현세일프라자는 지금 당장에라도 마무리 잔여 공사를 하고, 준공 승인 신청하는 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해관계가 법정에서 깔끔히 정리됐다. 오히려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꼴이다.
점유방해금지 가처분과 건축주 지위 양도, 건물 출입 및 사용방해 금지 가처분 등 3년여에 걸친 소송을 거치면서 권원을 인정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선명히 갈라졌다.
"건물 전체에 점유를 침탈하는 행위, "부동산에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 유치권 표상 시설물들을 제거하는 행위, 채권자의 점유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 인천지방법원이 2023년 5월 17일 A씨와 145억 원에 시공도급 계약을 맺은 B건설사에 내린 결정이다.
51억 원에 잔여 공사를 맡기로 한 H사는 A씨와 B건설사를 상대로 '점유방해 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냈었다.

A씨는 건축주 지위도 잃었다. 재무적 투자자인 S사는 사업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빌려 간 돈을 갚지 않는 A씨로부터 사업권·시행권·건축주 지위 일체를 넘긴다는 공정증서를 받아냈다.
S사는 이를 근거로 건축주 지위 양도 소송을 A씨로 상대로 제기해 2025년 11월 27일 서울고등법원 판결로 건축주 지위를 확보했다. S사는 건물 현장관리를 논현경찰서에 퇴거 조치를 요청한 N사에 맡겼다.
지난달 22일 오후 남동구청이 발칵 뒤집혔다. S사가 법원 판결문을 들고 남동구청을 찾아가 건축주 명의 변경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거세게 항의하며 소동을 벌였다.
남동구청은 S사 말고 다른 곳에서도 건축주 명의 변경 신청이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이 또 다른 명의 변경 신청자는 법원 판결문이 없다.
남동구청은 고문 변호사에게 질의한 뒤 다음 주쯤 S사의 건축주 명의 변경 신청에 관해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박정환 대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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