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의회에 불려나오는 클린턴 부부…엡스틴 파문 전방위 확산

윤연정 기자 2026. 2. 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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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발뺌 “난 의혹뿐, 다른 일로 이제 넘어가야”
미국 공화당 소속 제임스 코머 하원 감독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클린턴 부부에 대한 의회 모독 혐의 처벌 여부에 관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 뒤로는 엡스틴 사건 파일에서 공개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젊은 여성과 함께하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AP 연합뉴스

미국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 연루된 정치·경제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의혹이 국적 불문하고 전방위로 번지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3일(현지시각) 로이터·에이피(AP) 통신 등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는 오는 26일 연방 의회에 출석해 ‘엡스틴 사건’ 의혹에 증언을 하기로 했다.

당초 청문회 출석을 완강히 거부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돌연 증언에 나서기로 한 배경에는 의회 모독 혐의로 고발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 하원 감독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의회 청문회 출석을 무시한 클린턴 전 부부를 고발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그동안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는 엡스타인의 범죄 행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단 업무 과정에서 앱스틴의 개인 제트기를 이용한 적 있지만, 엡스틴의 개인 섬에는 방문한적이 없으며 “약 20년 전 관계를 끊었다”고 해명해 왔다. 다만 엡스틴의 성 착취 피해 여성 중 한 명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안마하는 장면이 2002년 사진이 공개되면서 의혹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엡스틴 관련 의혹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를 둘러싼 문제에 전 배우자가 입을 열었다. 빌 게이츠가 혼외 관계를 통해 성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제기된 데에 전 배우자인 멀린다 게이츠는 미 공영방송 엔피알(NPR)과의 인터뷰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프다”며 “그 사건(엡스틴 사건)에 관한 세부 내용이 공개될 때마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미 법무부가 추가로 공개한 억만장자 성범죄자 엡스틴 문건에는 엡스틴이 한 메일에서 빌 게이츠가 러시아 여성들과의 관계 이후 성병에 걸렸고, 당시 배우자였던 멀린다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 그에게 항생제를 구해달라고 요청하며 성병 모양에 대한 설명까지 모두 삭제해달라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빌 게이츠 대변인은 엔피알에 “엡스틴이 게이츠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에 게이츠를 함정에 빠뜨리고 명예 훼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단을 택했는지 보여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제프리 엡스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그의 생일인 1월20일에 맞춰 지난달 19일 항의성 예술 설치물이 미국 워싱턴 내셔널 몰에 전시됐다. 이는 엡스틴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고받은 서신 중 하나다. AP 연합뉴스

엡스틴과 연루된 피터 맨덜슨 전 영국 산업장관이 상원의원직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날 마이클 포사이드 영국 상원의장은 맨덜슨이 “공공의 이익과 상원의 원활한 운영”을 이유로 4일자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주요 부처 장관을 지낸 맨덜슨 상원의원은 과거 엡스타인과 깊은 친분을 맺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키어 스타머 정부에서 미 주재 영국 대사직에서도 경질된 바 있다.

최근 미 법무부가 추가로 공개한 엡스틴 파일에 따르면 그는 엡스틴으로부터 2000년대 초반 7만5천달러(약 1억원)을 송금받은 것으로 의심된다. 맨덜슨 상원의원은 지난 1일 이를 부인하면서도 노동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탈당했다. 이후 산업장관 재임 시절 정부의 금융위기 대응 정책 문건을 엡스틴에게 전달했다는 정보 유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총리실은 그의 작위 박탈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현행법상 종신 귀족은 상원 사퇴는 가능하지만, 작위 자체는 입법 절차를 통해서만 박탈할 수 있다.

유럽 왕실에서도 엡스틴과 부적절한 친분을 이어온 정황이 잇따르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왕자 지위를 잃은 영국의 앤드루 전 왕자를 비롯해 왕위 계승 1순위인 호콘 왕세자의 아내 메테마리트 왕세자빈, 필리프 벨기에 국왕의 남동생인 로랑 왕자 등이 거론됐다.

제프리 엡스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그의 생일인 1월20일에 맞춰 지난달 19일 항의성 예술 설치물이 미국 워싱턴 내셔널 몰에 전시됐다. 이는 엡스틴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고받은 서신 중 하나다. AP 연합뉴스

그러한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엡스틴 의혹과 자신을 선 그으면서 논란을 더는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엡스틴 의혹과 관련해 “나에 대해선 말 그대로 나를 겨냥한 음모론이란 것 외엔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며 “이제 보건의료나 사람들이 신경 쓰는 그 밖의 다른 일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틴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이웃으로 지내며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엡스틴이 2006년 체포되기 훨씬 이전에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밝힌 상태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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