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추억

작고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난 아내와의 옛 추억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뭔가를 베풀 때에는 주는 사람이 기쁨을 느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가령 아내에게 남편이 무슨 기념으로 선물을 주었을 때 고마움 같은 느낌이 전해오지 않는다면 정말 냉랭한 부부가 아니겠는가. 나는 여행을 별로 다녀보지 못했지만, 어쩌다 출장 명목으로 다른 지방 구경을 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에는 아내에게 미안한 심정으로 그 지방 특색이 있는 선물을 사다 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얼굴표정은 별로 느낌이 없었던 같다. 결혼기념일 같은 때는 무심하기가 미안하여 무슨 악세사리 같은 것을 사다 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도 아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에 나의 심정은 내 아내는 참 심지가 굳은 여자, 자립정신이 강한 제주도 여성 같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으며, 그것이 부부 간 다정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아니 했던 것 같다. 장식품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이 지방의 다른 여성들 생각도 떠올리고는 했다.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로 있는 사람이어서 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는 아내와 대화의 길을 트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 국어 속에 동화되어있는 외래어의 유래를 말해줄 수도있고 나아가서 국어와 영어 등의 표현 양식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있고 유익한 일이다. 한국어의 토씨 사용이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감정표현 방식이 한국어와 다른 나라 언어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는 문제는 영어공부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말할 자료들이 더 많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런 방면에서 나와의 대화의 길을 여는 데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몇 번 그런 방면에서 물어보다가 그만 입을 닫아버린 것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걸까 시도해봤지만,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져야할 사람이 마무 말이 없는데, 주제넘게 말을 거는 것은 오히려 대화 분위기를 해칠 것 같아 보였다. 혼자몸이 된 이 시점에서 이런 점은 나의 불찰로 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나도 그런 생각이 미처 나오지 않았음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우리 부부가 집밖으로 나와서 사회생활의 한 멤버가 되는 시간에는 우리 부부가 한 집단 속에 서있을 자리를 어떻게 잡을까 하는 문제가 있었다. 가령 어떤 집안에 결혼식이 있든가, 어떤 사회집단의 공개적인 행사가 있을 때에도 요즘에는 부부동반 참석이 많아진다는 것이 생각나서 아내에게 그런 제안을 할 때가 있었지만, 아내는 별로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역시 제주도 여자는 자립정신이 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는 했던 것 같다.
내 아내의 자립정신이 두드러져 보이는 경우는 이 말고도 많이 있었다. 내가 어디로 외출 나가서 나의 소재가 아내에게 궁금할 만할 때에는 그것을 아내에게 알려줄까, 이런 것이 애매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에는 아내가 나의 소재를 얼마나 알고 싶어할까를 두고 망설일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모처럼 전화통화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었는데 그런 말에 별로 관심없어 하는 기색이 나오면 나만 무색해지는 것이었다. 혼자 되었을 때에 나의 거취에 대해 아내에게 알려주는 것은 매 시간 아내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고, 아내도 나의 존재에 대해서 무심하지 말아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호간 존중에 대하여 아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히 아내에 대한 나의 서비스에 대해서도 소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정성이 모자랐다고 생각되는 일로는 신혼여행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 있다. 신혼 때는 무슨 일 때문인지 때 맞추어 여행이라는 것을 가지 못하면서도,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시절 좋고 건강 컨디션도 더 좋은 타이밍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여행을 꼭 신혼 때만 갈 이유가 없다는 말이 신부의 입에서 나왔던 것 같고, 나로서는 이해성 있는 신부가 고맙기도 했다. 나중에는 뭐, 신혼 때도 아닌데, 바쁜 살림에 방해되는 여행이란 걸 꼭 가야 되느냐, 이렇게 생각들이 바뀌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생애에서 여행이라는 말이 별 의미없게 되었다. 그러나 신혼여행이란 정말 신성한 것이었고, 그 후에 다른 무엇으로도 치환해 볼 수 없는 특별한 행사임을 깨닫고 후회했지만, 이미 시효가 마감된 후였다.
결혼생활 중에 나를 제 구실 하는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은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음에도 나타났다. 가령 일요일 아침 남편이 컨디션 나쁘다는 핑계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꾸지람을 해서라도 일깨워주어야 하는데 그냥 놔두고 혼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디로 가버렸던 예가 생각난다. 게으름 피우는 나에게 뭐라고 나무라지 못하고 어려워한다면 나를 남편다운 남편으로 보는 것인지 의심이 드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자립정신 여하에 무관하게 여자가 남자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행복해지게 마련일 것 같다. 아내는 실지로 태평양 같이 대범한 성질이어서 남편의 인사치레 같은 것에 무관심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내가 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 불행했다는 나의 생각이 오버센스일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아내가 살았을 때는 이런 점을 깨닫지 못하다가 죽은 다음에야 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나에게 진짜 자기 마음을 별로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하는 말이다.
이와는 달리 아내의 진짜 마음을 내가 얼마나 헤아리지 못했는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장면이 있었다. 내가 아내에게 몸 맛사지를 해주려고 했을 때 아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나는 일찍부터 건강 지키기에 맛사지가 좋은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것을 배울 기회도 있었다. 아내에게 그 서비스를 해주려고 여러 번 시도를 안 한 것도 아니다. 아내의 신체를 만져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내가 맛사지 배울 때 선생으로부터 들은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남녀 간에는 맛사지가 특별히 좋은 기(氣) 교류의 수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맛사지는 남녀간의 사랑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기회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자기 몸을 남에게 쉽게 내놓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내가 끝까지 나의 손길이 자기 몸에 닿지 못하도록 한 것은 우리 사이의 감정의 골이 그만큼 크고 깊다는 것이었다. 내 아내는 내가 아무리 권하고 설득을 하려고 해도 나의 맛사지 서비스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요즘에 와서는 이것이 우리 부부생할의 종합적인 평가 점수였음을 절감한다. 나의 아내는 평생을 남편 사랑을 몸으로 느껴보지 못하고 생애를 마감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통곡하고 싶지만, 기회는 영영 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실패한 결혼의 원인 제공자가 나 자신임은 분명하다. 나의 판단으로는 우리의 결혼이 처음부터 파행으로 치닫게 된 큰 원인은 신혼 초의 무단가출이라는 나의 큰 실수에 있었다고 보인다. 나는 결혼하고 1주일도 안 되어서 아무 통보 없이 하룻동안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신부의 가까운 친구의 이상한 귀띔을 듣고 헷가닥해 버린 탓이었다. 신부될 사람의 부정에 대한 아주 애매하고 확인되지 않은 비방이었지만, 한창 예민해있던 나의 심중에는 폭풍과도 같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나중에야 나의 경솔함을 뉘우치고 겨우겨우 신혼 생활을 원상으로 돌려놓을 수가 있었지만, 신부의 상한 마음까지 돌려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외면상으로 결혼생활이 지속되었던 것은 아마도 신부로서는 금이 간 항아리가 아주 깨지지 않은 것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사회생활 상으로는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결혼생활을 이어나간 셈이다. 감정 상하기로는 남자보다 여자 쪽이 훨씬 더했을 것이다. 이 남자는 자기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싫은 여자를 사회적인 체면 유지 때문에 데리고 산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잘못이야 남자 쪽 책임이 더 크겠지만, 이왕 결혼한 몸이라면 결혼한 여자의 권리를 왜 주장하지 않았을까. 남자에게서 마땅히 받을 선물이라면 당당히 받아주어야 옳지 그것을 사양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쩌다가 신혼여행 기회도 지나쳐 버렸다. 신혼여행을 가고 못가는 것은 신랑의 마땅한 책임일진대 그런 중요한 행사를 빠트린 것에 대해서 남편에게 책임을 물었어야 하지 않는가. 남편 생각으로는 여자가 불만족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둔감이 잘못이지만, 여자는 그런 둔감함을 일깨워주고서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남편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데도 아내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아, 이 여자는 아예 나의 인품과 능력을 이렇게 밖에 인정치 않는구나, 좌절감으로 맥이 풀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