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이름 저렇게 지으면 큰일나는데”... 혀 차는 할아버지, 귀 닫은 아빠
개성 중시한 작명이 대세
일본은 ‘읽기 방식’ 비틀고
중국은 글자 수 파괴하기도
한국은 순우리말 등 다양화

일본 도쿄이과대학 유지 오기하라 박사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인문사회과학 커뮤니케이션즈(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미국, 유럽 뿐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들에서도 흔하지 않은 이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4개국과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의 작명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모든 조사 대상 국가에서 ‘흔한 이름’의 비율은 줄어들고 ‘독특한 이름’의 비율이 높아지는 공통적인 현상이 발견됐다.
가장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의 경우 1880년부터 2015년까지 상위 10위권 등 인기 있는 이름의 사용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과거에는 한 학급에 ‘제임스(James)’등을 비롯해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여럿인 경우가 흔했으나, 최근에는 발음이 같더라도 철자를 바꾸거나 기존에 없던 새로운 단어를 이름으로 등록하는 사례가 보편화됐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서도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상위권 이름의 독점 현상이 깨지는 추세는 동일했다.
아시아권의 변화는 각국의 언어적 특성과 결합해 더욱 흥미로운 양상을 보였다. 일본의 경우 부모들은 흔한 한자를 사용하더라도 읽는 방법(발음)을 특이하게 지어 개성을 표현했다. 예를 들어 ‘대(大)’, ‘광(光)’ 같은 평범한 한자를 이름에 쓰면서도, 사전적인 독음 대신 부모가 부여한 독창적인 발음으로 읽게 하는 식이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이름의 표기보다는 ‘소리의 독창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전통적인 작명 관습이던 ‘이름 글자 수’의 파괴가 일어났다. 연구팀이 1950년부터 2009년까지의 중국 이름을 분석한 결과, 1960년대 이후 전형적인 두 글자 이름(성 제외) 대신 한 글자나 세 글자 이름이 늘어나며 이름 길이의 다양성이 커졌다. 또한 옥편에서나 볼 법한 생소한 한자를 이름에 사용하는 빈도도 높아졌다. 인도네시아 역시 1970년대 이후부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름(Unique Name)’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 추이를 보면 과거 신생아 이름 순위를 평정했던 특정 이름들의 쏠림 현상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아기 이름인 ‘이준’조차 전체 출생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대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대 초반 인기 이름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중국처럼 이름 글자 수가 늘어나는 현상은 ‘성 제외 5자 이내’라는 법적 제한으로 드물지만, 대신 소재와 발음이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윤슬’, ‘하온’ 같은 순우리말 계열 이름이나 ‘로이’, ‘리우’처럼 글로벌 시대에 맞춰 부르기 쉬운 독창적인 발음을 선택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국 사회 역시 혈연 중심의 항렬 문화에서 부모의 취향과 아이의 개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작명 트렌드가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근본 원인으로 전 지구적인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확산을 지목했다. 집단에 소속되어 묻어가기보다는 자신의 독특함(Uniqueness)을 드러내려는 심리가 작명이라는 문화적 행위에 투영됐다는 것이다.
오기하라 박사는 “문화나 언어, 역사가 판이한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독창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준다”며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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