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역설[기고]

최근 미 재무부는 환율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정조준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가계와 기관투자자들이 왜 ‘국장(국내 주식시장)’을 외면하고 해외로 향하는지, 그리고 이 현상이 어떻게 원화 가치를 약화시키는지를 구조적으로 연결해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거시경제 현상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흔드는 원화 가치
미 재무부의 분석을 요약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 자본 유출 → 원화 약세’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귀결된다. 대기업 중심의 가족 소유(재벌) 구조, 인색한 주주환원 정책, 만성적인 저PBR(주가순자산비율)은 국내 주식시장의 투자 매력을 지속적으로 잠식해왔다. 수익률에 민감한 투자자들은 국내 시장에서 기대를 접고 ‘서학개미’가 되어 해외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원화 자금이 달러로 환전되며 원화 가치에 구조적인 하방 압력이 가해진다. 결국 환율 불안의 근본 원인은 대외 변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 내부의 불공정한 구조와 취약한 거버넌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도적 미비와 기업지배구조의 모순
미 재무부는 원화 약세의 구조적 원인으로 재벌 중심의 피라미딩 소유구조와 낮은 배당 성향을 명확히 지적했다. 특히 한국 시장 특유의 소유·지배 괴리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피라미딩 방식의 순환출자를 통해 재벌 총수는 적은 지분으로 과도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의결권 뻥튀기(약 17배)’ 구조의 혜택을 누린다. 반면 일반 주주의 의결권은 사실상 희석되는 ‘역뻥튀기’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전체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미래세대를 위한 설계도: 정부와 국회의 결단
이제 정부와 국회는 미래세대가 자본시장을 통해 자산을 형성하고 한국 경제에 장기적인 희망을 걸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제도 설계에 나서야 한다.
첫째,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실효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2025년 7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가 법제화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상법과 자본시장법의 세부 개정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제도는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회사 이마트가 자회사 신세계푸드를 대상으로 공개매수 이후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하는 현재의 사례는, 지배주주가 일반주주의 재산 가치를 이전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제도가 현실에서 무력화되지 않도록, 이사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침해했을 경우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신속한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
둘째, 이른바 ‘대주주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상속세 부담 완화나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려는 유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합병과 분할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를 엄단하고,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를 정직하게 반영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형식화된 이사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현재 다수의 사외이사는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에 머물러 있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의사결정에 대해 실효성 있는 견제가 가능하도록 사외이사 선임 구조 전반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 개혁은 국가적 생존 전략
미 재무부의 지적은 한국 자본시장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에 가깝다.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 산업의 선순환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원화 가치를 지키는 길이며 미래세대의 기회를 보장하는 길이다. 정부와 국회는 정파적 이해를 넘어 이 설계도를 완성해야 한다. 공정한 규칙이 작동하는 시장에서만 자본은 머물고, 그때서야 비로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