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9명에게 100만 바트”…태국 총선 이모저모 [특파원 리포트]

■ "매일 9명에게 백만 바트 주겠다"…막판 뒤집기 가능?
오는 2월 8일, 태국 하원 의원 500명(지역구 400명, 비례 100명)을 뽑는 총선이 실시됩니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EC)에 의하면 모두 57개 정당이 총선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선 공약이 있습니다.
바로 '매일 백만장자 9명 만들기'입니다.
프아타이당(Pheu Thai Party:"태국을 위한 당")은 지난달 말 유세 현장에서 "매일 9명에게 100만 바트를 주겠다"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100만 바트면 우리 돈 4천6백만 원에 이르는 거액입니다. 이 돈을 추첨을 통해 개인에게 주겠다는 겁니다. 농민, 고령층, 공공 봉사자, 소득세 신고자의 국가 ID 번호(우리의 주민등록번호) 추첨으로 4명을 뽑고, 물품 구매 등 '소비 영수증 추첨'으로 5명을 뽑아 현금 100만 바트를 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해마다 3천 2백 4십명, 두 차례 집권에 성공할 경우 8년 동안 약 2만 6천 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한다고 공언합니다.
그래도 지난 정부 총리도 배출한 거대 정당인데, '현금 살포' 공약이라니.
명분은 있습니다. 태국은 아직 영수증 없는 현금거래가 많습니다. 비공식 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 대비 48%에 이를 정돕니다. 태국판 '지하경제의 양성화'라고 할까요? 100만 바트 당첨을 위해 영수증 발행이 늘어날 거고, 이를 통해 9조 바트 규모가 공식 경제 시스템으로 편입될 거라는 주장입니다.
돈으로 표를 사겠다는 거냐, 노골적인 포퓰리즘이다,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하루 9백만 바트 씩 쓰면 연간 30억 바트가 넘는다"면서 이 돈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더 낫다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일부 태국인들도 '매표 행위'라며 비판하면서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이 공약에 끌리고 있다고 씁쓸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최근 여론 조사에서 이 공약 발표 이후 프아타이당에 대한 지지율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습니다.
■ 지금은 감옥에 있지만…'부활' 노리는 탁신 일가
'매일 9명 백만장자 만들기' 공약의 프아타이당에선 올해 46세의 욧차난 웡사왓 총리 후보를 지명했습니다. 실제 의회의 총리 선출은 5월쯤 이뤄지는데, 다수 의석을 차지하거나 다른 정당과의 연정이 잘 이뤄진다면 총리 선출 가능성은 커지는 겁니다.
그런데 욧차난 웡사왓 후보, 솜차이 웡사왓 전 총리의 아들입니다.
솜차이 웡사왓 전 총리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의 남편이니까 욧차난 후보는 탁신의 조카입니다.
탁신 자신, 여동생 잉락, 매제 솜차이, 딸 패통탄까지. 이미 4명의 총리를 배출한 탁신 일가에서 무려 5번째 총리 후보가 나온 셈입니다.
하지만 탁신 자신은 감옥에 갇힌 신세입니다. 탁신은 해외 도피 15년 만인 2023년 8월 귀국한 뒤 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지만 왕실 권한으로 형량이 1년으로 줄었고, 가석방으로 결국 6개월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6개월 내내 경찰 병원에 머물렀던 사실이 드러났고, 형량 1년을 교도소에서 채워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라 재수감됐습니다.
딸 패통탄 전 총리는 지난해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 과정에서 캄보디아 실권자인 훈 마네트 전 총리와의 통화 녹취가 공개되면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임됐습니다.
이렇게 몰락한 줄 알았던 탁신 일가,
이번 총선에 또 한 번 총리 후보를 내면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 "외계인과 결혼 허용"…'기괴한' 공약들
소수 정당 중 한 곳인 대안신당(New Alternative Party)의 총리 후보는 "외계인과의 결혼을 허용한다"는 황당한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인간과 외계인 간의 결혼은 두 행성의 법적 결합으로 인정된다."는 겁니다.
외계인이 존재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존재한다"였습니다. 이 후보의 추가 설명은 점점 안드로메다로 갑니다. "지구에 아내가 있을 수도 있고, 달에도, 화성에도 아내가 있을 수 있다"면서 '다부다처제'를 설파합니다. 그럼 자녀는? "인간 염색체와 외계 염색체가 동기화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답합니다.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이 후보는 매일 팔굽혀펴기를 하는 공무원과 민간 직원의 급여 10% 인상, 임산부에게 1만 바트 지급 등 복지 정책도 내놨습니다.

2~3 곳의 정당은 부패 공무원과 사기꾼에 대해선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정치인의 부정부패 규모가 일정 금액을 넘어서면 왕실 사면을 금지하겠다고도 합니다.
'뇌물'에 주로 쓰이는 500바트와 1,000바트 지폐를 없애겠다는 공약도 나왔습니다.
정치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이 반영돼 있습니다.
태국 언론은 이같은 공약들을 '기괴하다', '세상 밖의 선거 공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개혁의 아이콘' 피타가 나섰다…현직 총리의 운명은?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되는 정당은 국민당(People's Party)입니다.
2023년 태국 총선 결과는 그야말로 이변이었습니다.
젊은 엘리트 정치인 피타 림짜른랏이 이끄는 전진당(Move Forward Prty)이 수도 방콕에서만 33석 가운데 32석을 휩쓰는 등 원내 제1당으로 의회에 입성하게 된 겁니다. 태국의 오바마로 불리던 피타의 인기에, 왕실을 비판하면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한 형법을 개정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이 특히 젊은 층의 엄청난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군부와 보수층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총리 후보로 나섰던 피타는 의회 내 투표에서 패했고, 형법 개정 공약이 체제 전복 시도로 간주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당은 해산됐습니다.

이 전진당의 후신이 국민당입니다. IT업계 출신인 올해 38살의 낫타퐁 르엉빤야웃 대표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국민당, 정당 해산까지 갔었던 경험 때문인지 이번엔 '형법 개정'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각종 개혁적인 공약으로 총선을 앞둔 각종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근 캄보디아와의 교전 등으로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일부 민심이 보수 정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 '개혁의 아이콘' 피타가 해외 유학 생활을 중단하고 유세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희망을 잃지 마세요" 피타 특유의 화법은 다시 유권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국민당의 '선전'에 애가 타는 정당이 있습니다. 보수 정당 품짜이타이당(Bhumjaithai Party:'태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정당')입니다. 총리 후보로 아누틴 찬위라꾼 현 총리와 시하삭 푸앙껫깨우 외교부 장관을 내세웠습니다.
2023년 총선 이후 프아타이당과 연립정부를 꾸렸으나 지난해 패통탄 총리의 해임 사유가 됐던 전 캄보디아 총리와의 통화 유출 사건 직후 연정을 탈퇴, 이후 아누틴이 총리로 선출되며 집권당이 된 곳입니다. 아누틴 총리는 2022년 보건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태국의 대마 합법화 정책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품짜이타이당은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 기반이 확고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때 4위까지 떨어지며 비상이 걸렸습니다.

과거 '동남아시아의 경제 대국, 관광 대국'으로의 부활을 꿈꾸는 태국의 차기 총선, 4월 초에 공식 결과가 발표되지만, 2월 8일 투표 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과에 따라 또 한 번 태국 정가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 참고: 투표 전날부터 당일 저녁까지 주류판매 금지
태국 정치에 관심은 많지 않더라도 태국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알고 있어야 할 선거 관련 정보가 있습니다. 바로 주류 판매 규제입니다.
선거 전날인 2월 7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당일인 8일 일요일 오후 6시까지 24시간 동안 주류 판매가 전면 금지됩니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6개월의 징역형 또는 1만바트, 우리돈 약 46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선거 날 각종 사건 사고 예방을 위한 규제이니 무심코 술을 사러 갔다가 헛걸음하시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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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섭 기자 (bird2777@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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