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틀라스와 19세기 러다이트 [오철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6. 2.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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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형 로봇이 요즘 뉴스 화면을 자주 장식한다.

인간형 로봇은 정말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까? 이 논쟁은 오래됐다.

과학 저널 네이처는 지난달 16일 뉴스 기사에서 인간형 로봇 산업의 확산 흐름을 짚으면서 전문가들의 엇갈린 전망을 보도했다.

인간형 로봇의 일방적 공장 배치에 반대하는 노조 태도를 두고서, 일부에서는 이를 시대착오적인 19세기 러다이트, 즉 기계파괴 운동 같다고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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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아틀라스’(왼쪽)와 테슬라의 로봇 ‘옵티머스’. 연합뉴스, 테슬라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인간형 로봇이 요즘 뉴스 화면을 자주 장식한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테슬라의 옵티머스 같은 로봇은 수많은 관절의 모터를 제어하며 놀라운 몸놀림을 선보인다. 기술 기업들은 몇년 안에 생산과 서비스 현장에 로봇을 대거 투입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힌다. 그러자 최근에는 자동차 노조가 노사 합의 없는 로봇 도입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인간형 로봇은 정말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까? 이 논쟁은 오래됐다. 로봇공학 권위자인 로드니 브룩스는 지난달 뉴욕타임스의 보도에서 “지금 기술 기업은 인간형 로봇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암묵적 가정에 빠져 있다”면서 기대에 부푼 시기를 지나면 실망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회의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과학 저널 네이처는 지난달 16일 뉴스 기사에서 인간형 로봇 산업의 확산 흐름을 짚으면서 전문가들의 엇갈린 전망을 보도했다.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몇시간마다 충전해야 하는 배터리 문제가 있다. 또한 입력된 명령을 넘어 생산 현장을 스스로 감지하고 판단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크다. 인간 마음을 눈치 있게 알아채고 적절한 돌봄과 서비스를 해줄까? 육중한 로봇이 넘어지면 오히려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일부 기업이 추진하듯이 인간형 로봇이 공장에 배치된다 해도, 당분간은 연구개발을 위한 시험적 활용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형 로봇의 산업적 잠재력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도리어 인간 노동자의 지위가 위축되는 장면도 목격된다. 인간형 로봇의 일방적 공장 배치에 반대하는 노조 태도를 두고서, 일부에서는 이를 시대착오적인 19세기 러다이트, 즉 기계파괴 운동 같다고 비난한다. 러다이트란 말은 여전히 ‘무지한 기계파괴자’의 대명사로 쓰인다.

하지만 러다이트를 재조명하는 최근 연구들은 19세기 초 영국 러다이트 운동의 노동자들이 무지몽매해 닥치는 대로 기계를 파괴한 게 아니라 목적과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밝힌다. 기계파괴는 선택적이었고, 러다이트를 주도한 이들 중에는 고숙련 기계공이 많았다. 이들은 저비용과 생산성만을 고집해 공장을 신식 기계와 저임금 비숙련공 중심으로 일방 대체하려는 데 저항했다. 표적은 주로 악덕 공장의 기계였다. 당시는 노동 권익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없었고, 러다이트는 마지막 저항의 방식이었다.

러다이트 운동은 21세기 들어 일부에서 신러다이트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맹목적 반기술주의와는 선을 긋지만 무분별한 기술 도입에 반대한다. 러다이트 연구자인 브라이언 머천트는 일자리를 앗아가는 것은 로봇이 아니라 고용주인데도 왜 고용 불안을 인간과 로봇의 문제로 다룰 뿐 노동자와 고용주 간의 문제로 다루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기술 흐름을 무작정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도입되느냐이다. 인간형 로봇을 둘러싼 논의는 기술 낙관과 공포의 대결이 아니라 사회적 협상의 문제로 풀어가야 한다. 기술 기업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지배해서는 안 되며 이해당사자인 노조를 맹목적 러다이트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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