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 얼어붙은 땅을 깨우는 봄의 전령

이휘빈 기자 2026. 2.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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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수레바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한해 농사 시무식 입춘은 문자 그대로 '봄(春)이 들어선다(立)'는 뜻이다.

"춥다 추워"아직 봄은 문 밖에 입춘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차가운 대지 위로 봄을 향한 발길이 조용히 나아가는 것처럼, 입춘은 우리 마음에 긍정의 씨앗을 심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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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길, 절기 이야기] (1) 입춘
양력 2월4일…조상들 한해 농사 시무식
기상학적으론 겨울 “장독 깨지는 추위”
소 앞세워 풍년 빌고 오신채로 영양 채워
‘아홉차례’ 강조…부지런한 습관 만들기
흐지부지 한해 계획 다시 세우기 좋은 때
2026년 입춘은 2월4일이다. 입춘은 태양이 황경 315도에 있을 때를 뜻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24절기의 수레바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 아직 바람 끝은 매섭지만 땅속에서는 미세한 균열과 함께 생명이 움트는 시기다. 2026년 2월4일 오전 5시2분(절입시간), 태양이 황경 315도에 닿는 순간 우리는 입춘(立春)을 맞이한다.

말하자면 한해 농사 시무식
입춘은 문자 그대로 ‘봄(春)이 들어선다(立)’는 뜻이다. 현대인에게는 달력 위의 검은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나, 과거 농경사회에서 입춘은 한해 농사의 성패를 가늠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시기였다. 

농부들은 이날 보리 뿌리를 뽑아보거나 오곡의 씨앗을 볶아서 튀어나오는 곡물로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사실상 한해의 업무를 시작하는 시무식과 다름없었다. 대문마다 붙이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도 이러한 바람의 연장선이다. 

“춥다 추워”…아직 봄은 문 밖에
입춘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을 쓴다. 봄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안방을 차지한 상태가 아니라, 이제 막 문밖에 도착해 서성이고 있다고 읽을 수 있다. 

기상학적으로도 입춘은 여전히 겨울이다. 조상들은 이 시기의 추위에 대해 ‘입춘에 장독 깨진다’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등의 속담을 남겼다.

소(牛)를 앞세워 풍년을 빌다
조상들은 흙이나 나무로 만든 소를 만들어 풍년을 기원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던 시절, 입춘의 주인공은 ‘소’였다. 흙이나 나무로 만든 소 인형을 관청이나 마을 밖으로 내보내는 행사를 열었는데, 이를 ‘출토우(出土牛)’라 했다. 이를 통해 한해의 풍농(豊農)을 기원했다. 

특히 함경도 지방에서는 ‘목우(木牛)놀이’가 성행했다. 나무로 만든 소를 도구로 부리는 시늉을 하며 마을을 도는 놀이다. 제주도 역시 입춘에 큰 굿을 벌였는데, 전날 밤 나무로 만든 소에 쟁기를 씌우고 전야제를 치뤘다. 

다섯가지 매운맛, 몸을 깨우다
입춘에는 입맛을 돋우고 면역력을 높이는 특별한 음식을 챙겼다. 대표적인 것이 ‘오신채(五辛菜)’다. 불교의 오신채가 아니라 파·부추·미나리·승검초(참당귀)·겨자를 뜻한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이 다섯가지 나물은 청·적·황·백·흑 오색을 상징하며, 이를 먹으면 오장육부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믿었다. 또 겨울에 부족했던 비타민 등 영양소를 채우는 지혜이기도 했다. 오신채를 준비하지 못한 가정은 새로 돋는 파의 노란 순을 잘라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숫자 ‘9’의 마법, 아홉 차리 풍습
조상들은 입춘에 ‘아홉차리’ 풍습으로 부지런한 습관과 풍요를 기원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아홉번 짐을 나르고, 아홉번 밥을 먹어라.”

입춘에는 유독 숫자 ‘9’와 관련된 풍습이 많다. 이를 ‘아홉 차리’라 부른다. 각자 맡은 일을 아홉번씩 되풀이하거나, 밥이나 나물을 아홉번 먹는 식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10은 꽉 찬 완성의 수였기에, 9는 ‘완성에 이르기 직전의 최선’이자 ‘쌓아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즉, 아홉 차리는 다가올 농번기에 대비해 부지런한 습관을 만들고, 부지런한 만큼 풍요가 쌓이기를 바라는 풍습이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어려운 이에게 남몰래 아홉 번 베풀면 복이 온다는 적선(積善)의 날로 삼기도 했다.

현대의 입춘, 내 마음에 ‘긍정의 씨앗’ 심기
현대 사회에서 입춘이 갖는 의미는 농사 준비보다 ‘심리적 환기’에 가깝다. 새해 결심이 흐지부지될 무렵 찾아오는 입춘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시작할 기회를 준다. 거창한 농사 준비는 아닐지라도, 책상을 정리하거나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새로운 목표 목록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차가운 대지 위로 봄을 향한 발길이 조용히 나아가는 것처럼, 입춘은 우리 마음에 긍정의 씨앗을 심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

◇도움말=‘24절기 이야기’(한호철 지음, 지식과교양),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천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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