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석조기술로 건설된 미스터리 공중도시

최진숙 전 영산대 글로벌학부 교수 2026. 2. 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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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2> 페루 마추픽추

- 잉카의 영광 간직 ‘태양의 도시’
- 접착제 없이 딱딱 맞춰 쌓은 돌
- 정교함은 어떤 문명도 못따라와
- 산악지형 최적화 물공급 시스템
- 생존 위한 압도적 공학기술 보유

올드 팝송 가운데, 페루 안데스 전통 음악에 영어 가사를 붙여 사이먼과 가펑클이 1970년에 발표한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콘도르가 날아간다’)’가 있다. 영어 가사 내용은 원곡의 메시지와 다르지만, 이 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페루와 안데스 문화는 물론, 마추픽추 유적지의 인지도 또한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페루인들에게 신성하고 상징적인 존재인, 노래 제목 속 ‘콘도르’가 날아다니는 안데스산맥 깊숙이, 그것도 해발 2430m에 ‘오래된 봉우리’ 마추픽추가 있다.

거대한 잉카 문명의 역사를 간직한 페루의 마추픽추 전경. 라틴아메리카 문명의 최고 상징으로 꼽힌다.


흔히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많이 다니라고 하지만, 이곳은 체력이 없으면 당연히 어렵고 가슴이 떨려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페루까지의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다. 수도 리마까지 직항편이 없어 최소 한 번 이상 경유해야 하며, 환승 시간을 포함하면 30시간 이상이 걸린다. 어렵게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 닿는다 해도, 그곳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안데스산맥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마추픽추를 알현할 수 있다. 그마저도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이 둥둥 유영하는 기막힌 풍경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세상에는 누구의 덕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지 않은가.

▮거대 산맥 위 미스터리 도시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뛰어난 석조 기술을 자랑하는 마추픽추의 석조물들. 돌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다듬은 해시계(위쪽)와 위와 아래가 확연히 달라 서로 다른 석조 기술이 겹쳐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물.


길다면 긴 세월 세계 유적지를 다녔지만, 이렇게 거대한 산맥 위에 있는 웅대한 유적지를 본 적이 없다.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신비롭고, 경이롭고, 미스터리다. 어쩌자고 페루 조상님들은 이렇게 높은 봉우리 위에, 그것도 이렇게 큰 도시를 건설했는지 그 이유와 목적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그러나 마추픽추는 잉카 제국의 유산임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 근거로는 콜럼버스 이전 시대 남아메리카를 지배한 강대국이 잉카 제국이었다는 사실, 잉카 문명에서만 확인되는 독창적인 건축 양식, 태양 숭배라는 종교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태양의 사원, 그리고 1450년경 9대 황제 파차쿠티가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한 역사적 맥락을 들 수 있다.

현재 여러 설 가운데, 마추픽추를 황제가 거주하던 궁전이자 요새 도시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 듯하다. 지리적 위치만 놓고 보면, 당시 제국을 통치하던 황제를 보호하고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강에서 수직으로 약 450m 솟아오른 절벽 위에 자리한 이곳은 거대한 산들이 천연의 방어막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내부에 자체적인 수원을 갖추어 백성들에게 물을 공급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만으로 험준한 산맥 위에 궁전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다. 지속적인 거주와 통치 공간으로는 분명 불편함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황제의 궁전이라면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와 가까워야 하는데, 마추픽추는 수도 쿠스코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모르겠다. 마추픽추는 그저 안데스의 바람과 함께 세상사를 초월해 살아가기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방문객들의 소음만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태양의 신전’ 구조가 하지와 동지의 태양 빛과 정확히 맞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제사를 지내는 신전이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추정이지만, 신전이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게 와 닿는다. 세계 최고의 유적이라 불리는 앙코르와트, 파르테논, 보로부두르,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은 모두 종교 건축물이다. 종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명과 운명처럼 얽혀 온 불가분의 동반자였다. 또한 신전이라야 이처럼 기념비적이고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완성하는 일이 가능하다. 아무리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약속한다 해도, 사후에 영원으로 이어진다는 종교적 신념 없이는 이러한 위업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본다. 마추픽추 또한 그 무거운 돌을 옮겨 건축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종교적 믿음이 작업의 중심 동력이었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다. 너무 과한 개인적 해석일까.

마추픽추가 어떤 목적에서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곳이 인간 생존을 위한 최적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하긴, ‘뭣이 중헌디’, 살아남는 것, 생존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가치가 아닌가. 놀랍게도, 산악 지형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된 이곳의 수로는 길고 좁은 길 곳곳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구축되어 있다. 식수와 농사를 위해 지하수가 솟는 곳에서부터 물길을 만들어 생존을 가능케 한 것이다.

농경 구역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약 500개의 계단식 밭(테라스)이 있으며, 중력 기반의 수로 시스템을 구축해 작물 재배에 최적화된 수분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이토록 지혜가 빛나는 수리공학 기술이라니!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그들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말해 ‘식은 죽 먹기’였음을 그들의 석조 기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월드 클래스’ 석조 기술

마추픽추에서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건축술, 특히 석조 기술이다. 돌을 다루는 솜씨는 세계 어느 문명도 따라올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돌을 정밀하게 깎아 맞추어 지어졌는데, 특히 해시계인 ‘인티와타나’라 불리는 화강암 돌기둥은 마치 나무를 다루듯 부드럽고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다. ‘세 개의 창문이 있는 방’ 역시 현대 기술로도 구현하기 어려울 만큼 틈 없이 맞추어져, 마치 조각 퍼즐처럼 완벽하게 처리되어 있다. 신이 직접 돌을 자른 것 같다. 실제로 돌 사이가 공기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어, 틈 사이로 유기물이 생기지 않아 고고학자들은 건설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마추픽추의 여러 석조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전 문명이 세운 건축물 위에 또 다른 문명이 플러스한 듯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두 문명 사이에 쌓아 올린 돌의 형태와 기술은 확연히 달라, 뛰어난 석조 기술을 지닌 선행 문명이 먼저 구조물을 세우고 이후 잉카 제국이 이를 보완하고 확장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해도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잉카 제국은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약 95년 동안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이룬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불과 한 세기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이처럼 정교하고 고도화된 석조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은 물리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설명하기 쉽지는 않다. 따라서 마추픽추의 석조물을 온전히 잉카 제국의 유산으로만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잉카 제국이 지배하기 전, 이런 대단한 석조 기술을 가졌던 그들은 누구일까. 그 정체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지만, 남겨진 구조물의 정밀도와 기술력은 현대인을 능가하는 수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니 그들의 석조 기술은 ‘월드 클래스(world class)’,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 탐험가 하이럼 빙엄에 의해 비교적 최근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마추픽추는 영광의 시간을 되살려 남미의 가장 유명한 유적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최고 문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만약 마추픽추가 발굴되지 않았다면, 과연 무엇이 아메리카 문명의 대표가 되었을지 궁금할 정도다. 설사 다른 유적이 상징의 자리를 대신했다 하더라도, 마추픽추처럼 전 세계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응축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마추픽추는 유럽의 정복 이전, 이미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던 진정한 아메리카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마추픽추가 라틴아메리카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되살려낸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다. 멋지다! 마추픽추!

, 유적지기행작가‘한국유적지기행’ ‘아시아유적지기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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