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음악 ‘흥겨운’ 이란 시위대 장례식···“정권에 대한 저항”
‘축제 같은 장례식’
엄숙한 이슬람 장례문화 거부
이슬람 신정체제와 잔혹한 진압에 ‘저항’
시신 인계 위해 거액 내야만 장례식 치러
‘사망자는 친정부 민병대원’ 서명 강요도

지난달 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가 보안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17세 밀라드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드러냈다. 밀라드의 형 레자는 “우리는 밀라드가 원하는 대로 했다”며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춤을 췄다. 슬픔 속에서도 그의 활기찬 삶을 기렸다”고 말했다.
이란 반정부 시위에서 정권의 유혈 진압으로 숨진 이들의 장례식이 춤과 음악으로 채워져 고인의 삶을 기리는 축제처럼 치러지고 있다. 이슬람 성직자가 주관하는 엄숙한 이슬람 장례식 분위기와 상반된 것으로, 이란 이슬람정권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읽힌다.
가디언은 3일(현지시간) 이란 반정부 시위대 사망자들의 장례식이 ‘흥겨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란 신정체제가 강요하는 경건한 장례문화에 대한 의도적 반항이자, 정권의 잔혹한 진압에 맞선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28일 시작돼 지난달 이란 전역으로 확산됐다. 지난달 8~9일 이란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잦아든 이란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으로 추산된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운동가통신(HRANA)는 6854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으며, 영국에 본부를 둔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사망자가 3만65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터넷을 차단했던 이란 정권이 인터넷을 일부 복구하면서 인터넷에 이란에서 치러지는 시위대 사망자의 장례식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영상에서 유족들은 보통 결혼식에서 트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테헤란 북부 나르막에서 시위 도중 총에 맞아 숨진 19세 사촌의 결혼식에 참가한 샤가예그(21)는 “장례식을 마치 결혼식처럼 준비했다. 스피커를 설치하고, 가족들은 잔치를 준비하는 것처럼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샤가예그는 “단지 우리 중 누구도 웃지 않았다는 점만 달랐다. 우리는 그의 삶을,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기렸다”고 덧붙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이란 출신 평론가 호세인 가지안은 “유족들은 장례식에 가족을 살해한 이슬람 정권의 종교적 흔적이 조금이라도 묻어나길 바라지 않는다”며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대신 기쁨을 표현한다. 피에 굶주린 억압자들에 맞서는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란 대중문화 전문가 시아바시 로크니는 “장례식이 축하의 장으로 변용된 것은 이슬람 신정체제의 핵심을 흔드는 행위이며, 이슬람공화국이 애도와 순교를 결속의 원동력으로 활용해 온 방식을 뒤집는 것”이라고 이란인터내셔널에 말했다.
이란에서 춤은 사적인 파티나 결혼식 같은 폐쇄적 장소에서만 이뤄진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에서 장례식은 야외에서 치러지며, 여성들도 함께 춤을 춘다. 가디언은 여성의 춤과 노래를 금지하는 이슬람 공화국의 규범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이드 파이반디 프랑스 로렌대 사회학자는 “정부 탄압 희생자들을 위한 장례식은 종교적, 공식적 규범에 도전하는 공간이 됐다”며 “그들은 정부에 희생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했고, 우리에게 자부심의 원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정부 탄압으로 숨진 이들의 장례식이 춤과 음악으로 가득한 축제 분위기로 치러지는 데는 2022년 여성·생명·자유 운동 당시 처형된 마지드레자 라나바르드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위대를 탄압하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준군사조직 바시지 민병대원을 살해한 혐의로 처형된 라나바르드는 처형 직전 “내 무덤에서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코란을 읽거나 기도하는 것도 싫다. 그저 축하하고 음악을 연주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편 희생된 시위대 장례식은 유족들이 시신을 인계받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뒤에야 치러지고 있다. 당국은 밀라드의 시신을 인계하는 대가로 약 988만원을 요구했다. 샤가예그 역시 사촌의 시신을 인계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셀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 유족들은 사망자가 바시지 민병대원이라는 진술서에 서명한 뒤에야 시신을 넘겨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란 당국이 시위대를 보안군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정권 측 사망자 수를 부풀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021655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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