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길의 부동산 톡] 지방자치 침해하는 ‘서울시 패싱 법안’

박상길 2026. 2. 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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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민주당이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는 명분 아래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정비사업 권한을 직권으로 부여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주택 공급 정책과 관련해 갈등을 빚는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를 배제한 채 정비구역 지정과 해제 권한까지 중앙정부가 직접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택 공급이 더딘 상황에서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논리지만, 그 방식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대목이 적지 않다.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법을 '국토부 장관 직권 확대'로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주택 공급은 단순히 행정 절차 몇 단계를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정비사업은 지역 여건과 주민 이해관계, 교통·인프라 수용성, 도시계획 전반이 얽힌 고난도의 정책 영역이다. 이런 사안을 지자체와의 충분한 조율 없이 중앙정부가 직권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정책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오히려 권한 없이 책임만 져야 하는 지자체와의 갈등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 장관이 직권으로 정비구역을 지정하더라도 이후 발생하는 민원과 갈등, 행정적 부담은 여전히 지자체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는 지방자치의 본래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방자치는 지역의 여건과 주민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가 정책 결정과 집행의 주체가 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지는 제도다. 결정 권한은 중앙이 쥐고, 부담과 책임은 지방에 떠넘기는 구조는 지방자치를 유명무실하게 할 뿐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공급 대책이 지자체·주민 반발에 가로막혀 표류한 사례는 과거에도 숱하게 반복돼 왔다.

권한을 중앙에 집중한다고 해서 현장의 저항과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사업 지연이라는 또 다른 병목을 만들어 왔다는 점을 정부와 정치권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접근 방식이 주택 공급의 본질적 병목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주택 공급 정책의 상당수는 중앙정부가 이미 쥐고 있는 정책 수단으로도 조정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지자체 권한을 문제의 원인처럼 설정하는 것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공급 정책 가속화의 해법을 국토부 장관 직권 확대에서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자체와의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한 정교한 정책 설계가 먼저다. 중앙정부는 제도와 기준을 정비하고, 지자체는 지역 여건에 맞는 실행 전략을 마련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갈등이 예상되는 지점에서는 권한 행사보다 협의와 조정이 우선돼야 한다.

주택 공급 속도를 이유로 지방정부를 패싱하는 법안이 또 하나의 정책 갈등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라 설계이며, 직권이 아니라 신뢰다. 냉정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박상길 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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