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하는 스테이블코인 전쟁… 월가 은행 vs. 가상자산, 화폐 주도권 충돌
규제 허점 둘러싼 워싱턴 공방
금융 안정 vs. 혁신 논쟁 확산
미국 월가 은행들과 가상자산 업계가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하고 있다. 달러와 연동된 디지털 화폐인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확산되자 은행들은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고, 가상자산 업계는 기존 금융권이 경쟁을 차단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면서 이 시장이 이미 전통 금융 시스템과 깊이 얽혀 있다는 점도 논쟁을 키웠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유로화 등 법정 통화에 1대1로 연동된 디지털 화폐다. 가상자산 거래의 중개 수단을 넘어 국경 간 결제와 자금 이동 영역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2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지지자들은 이 디지털 화폐가 기존 결제 시스템보다 빠르고 저렴하며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됐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장기적으로 현금이나 은행 예금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월가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금융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실험으로 규정했다. 논쟁의 핵심은 가상자산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한 고객에게 이자나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다. 현행 규정상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이자를 지급할 수 없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유사한 보상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권은 이를 규제 공백으로 보고, 가상자산 기업들이 은행과 같은 기능을 하면서도 동일한 감독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가상자산 업계는 은행들이 예금 유출을 우려해 규제를 무기로 경쟁을 막으려 한다고 맞섰다. 실제로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될 경우 일부 예금이 은행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있다. 연준 내부 연구에서는 제한적인 시나리오에서 수백억 달러 규모의 이동에 그칠 수 있다고 분석했지만, 은행권은 최대 수조 달러 규모의 예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논쟁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가상자산 업계는 선거 자금을 통해 미국 정가에서 영향력을 키워왔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가상자산 산업을 전략적 성장 분야로 공개 지지했다. 일부 가상자산 기업은 은행 인가를 신청하며 제도권 편입을 시도했다. 반면 은행권과 금융업계는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허용과 중앙은행 결제망 접근에 강하게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단순한 산업 간 경쟁을 넘어 금융 시스템 구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금이 대규모로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할 경우 은행의 대출 여력이 줄고, 실물 경제로의 신용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위기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상환 요구가 급증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국채 자산의 급매로 이어져 금융 시장 불안을 키울 가능성도 거론됐다.
실제로 테더와 서클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대규모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일부 중앙은행과 규제 당국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 뱅크런’ 가능성을 경고했다. 과거 특정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파산 여파로 일시적으로 가치가 흔들린 사례도 있었다.
다만 모든 금융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위협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일부 은행들은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이나 자산 토큰화 실험에 나서며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 펀드 시장이 점차 토큰화될 경우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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