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주식 공화국’ [이슈&뷰]

김지윤 2026. 2. 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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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 커진 코스피
유례없는 주가에 근로 의욕 흔들
상승하락 요동쳐 업무 집중 못해
포모심리에 빚투는 30조 넘어서
변동성 위험국면, ‘투기’ 경고음도
코스피 변동성지수 2020년 3월 이후 최고
급등락 극심한 변동성 심각한 부작용 초래
증시 업종쏠림 해결할 기초체력 향상 필수
투자자 대외변수 신중 판단 질적성장 중요
코스피가 상승 출발하며 5,000선을 하루 만에 재탈환한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는 모습(오른쪽)이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어제 모습(왼쪽)과 대조적이다. [연합]

한 대기업에 종사하는 송모 과장(35). 요즘 도통 일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하루에 월급을 벌었다가 또 하루 만에 월급을 까먹는 상황이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관련기사 3면

점심시간 풍경도 달라졌다. 맛집 탐방, 수다는 다 옛말이다. 모든 대화 주제는 ‘기승전 주식’이다. 누군가는 믿기 힘들 ‘대박’을, 또 누군가는 회복 불가능한 ‘쪽박’을. 이 모든 대화의 끝은 불안감이다. 편승하지 못한 불안감, 전 재산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최근 증시는 급등과 급락이 ‘뉴노멀’처럼 여겨질 정도다. 폭락한 지난 2일엔 ‘매도 사이드카’가, 급등한 3일엔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증시에서 불안감은 증폭되며, 불안감은 무리한 투자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빚투,’ 고위험을 감수하는 ‘레버리지’ 투자 등에 자금이 쏠린다. 주식 창만 바라보며 잠 못 이루는 ‘주식 공화국’의 현주소다.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흐름 자체는 필요하지만,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변동성 증시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내 증시의 기초체력이 향상되고 투자 문화도 질적으로 성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스피 지수는 2~3일에 걸쳐 연이어 ‘매도 사이드카’,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매도 및 매수 사이드카는 코스피200 선물 가격이 기준가 대비 5% 이상 하락·상승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될 경우 발동된다. 개별 종목도 아닌 코스피 지수 자체가 하루 사이 5% 이상 급등·급락한 결과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165.14포인트(3.34%) 오른 5114.81로 출발한 뒤 장 초반 상승 폭이 4% 중반대까지 급등, 이후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전날은 정반대였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지명 여파, 금·은 가격 폭락, 원/달러 환율 급등 등으로 5% 넘게 하락해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극심한 코스피 변동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2일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전일 대비 7.79포인트(19.38%) 급등한 47.37에 달했다. VKOSPI는 코스피200 옵션 가격을 바탕으로 향후 주가 변동성을 수치화한 지표다. 주가가 급락할수록 상승하는 역상관 관계를 보여 ‘공포지수(Fear Index)’로 불린다. 40 이상은 시장이 악재에 과민 반응하는 ‘공포 구간’으로 인식된다.

‘코스피 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작년 4월 7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편관세 발표 당시 44.23까지 올랐다. 작년 11월 7일 인공지능(AI) 버블 논란 국면에서 41.88을 기록했었다. 이처럼 대외적으로 극심한 충격이 있거나 불확실성이 극대화될 때만 제한적으로 40선을 돌파했다. 이번 47.37은 이를 모두 뛰어넘는, 2020년 3월 코로나 국면 이후 최고 수준이다.

최근 변동성 확대는 증시가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국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증시 상승 국면에서 VKOSPI가 오르는 경우는 추가 상승 기대보다 상승 속도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커질 때다. 즉, 지수가 단기간 급등하거나 특정 종목에 상승이 집중되면 투자자들이 조정 가능성에 대비해 옵션을 활용한 헤지에 나서면서 변동성지수가 상승하는 식이다. 그만큼 최근 증시 급등 국면 이면엔 불안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최근 국내 증시의 수급도 예상하기 힘든 역대급 규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국내 증시에서 하루 만에 증발한 시가총액은 약 255조원에 달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조5323억원, 2조2128억원을 팔아치웠지만, 개인들의 선택은 달랐다. 개인투자자는 4조5873억원을 순매수했다. 순매도 규모도 순매수 규모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거나 근접한 수준이다.

투자 과열을 경고하는 수치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0조2779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 27조원 초반대였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약 한달 만에 3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으로, 간단히 말해 빚을 내 투자하는 금액이다.

상승 국면에서 2배 수익을 좇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도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지난 2일 급락 국면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대거 레버리지 ETF를 쓸어담았다.

레버리지 ETF는 ETF가 추종하는 지수보다 수익률이 2배가 되도록 설계된 펀드다. 상승할 때는 지수보다 2배 오르지만, 떨어질 때도 2배만큼 떨어진다. 레버리지 상품은 복리 구조의 특성상 급락할 시 회복이 어렵다. 고수익·고위험 상품이다. 이를 사려면 금융투자협회의 필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 1월에 해당 교육을 이수하려는 이들은 전년 동기 대비 10배나 급증했다. 한때 교육 사이트가 마비된 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의 투기적 과열을 경계하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교수는 “최근 코스피 지수가 한 달 사이 1300포인트 가까이 오르는 등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는 과정을 겪었다”며 “큰 폭의 상승 이후 과도한 기대가 형성된 측면이 있는데 이런 기대가 꺾일 경우 매물이 한꺼번에 출회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AI 사이클의 종료 시점을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만큼 현재 시장은 상당한 변동성을 동반한 위험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오늘 빠지면 내일 올라가는 일이 빈번하고, 당분간 이 같은 증시의 변동성은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요동치는 대외변수 등에 변동성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은 결국 국내 증시의 튼실한 기초 체력 확보이다. 이를 위해선 업종 쏠림 현상을 해결하고, 투자자들도 다양한 대외 변수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투자하는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5000에 도달했으나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는 3600선으로 추정돼 코스피 5000과는 체감상 차이가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이익과 수익성 개선이 보다 지속성이 있는지 여부가 향후 관건”이라고 짚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달러·원 환율이 반등하는 흐름 속에서 대외 변수를 점검한 투자법이 필요하다”며 “워시 연준 의장 지명 이슈와 원자재 가격 급락 영향으로 시장이 하락한 만큼 미국 고용보고서가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를 추가로 촉발할지 여부, 알파벳과 아마존 등 빅테크 실적 발표가 AI 과잉 투자에 대한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 등을 지켜봐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금·은 등 원자재 시장 급락과 강제 청산 여파가 주식시장에 지속적으로 미칠 영향에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시중 유동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흐름 자체는 필요하지만, 국내 증시의 기초체력 향상과 투자 문화의 질적 성숙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주식 현황 전광판을 보고 있는 모습. [연합]

한편,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165.14포인트(3.34%) 오른 5114.81로 출발한 뒤 장 초반 상승 폭을 4% 중반대까지 확대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전 9시 26분 코스피 시장에 대해 매수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37.58포인트(3.42%) 오른 1135.94로 출발한 뒤 장중 상승 폭을 3% 중반까지 확대하며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반등했다. 오전 10시 기준 일본 닛케이255 지수는 2.55% 오른 5만3997.27, 대만 가권지수는 1.71% 오른 3만2163.73을 나타내고 있다. 아시아 증시를 뒤흔든 금·은 선물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쇼크가 진정되면서 저가 매수세가 강하게 유입, 전날의 낙폭을 만회 중인 것으로 보인다.

김지윤·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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