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파 먹은 약이 ‘독’?”… 습관적 진통제가 만성 두통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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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일하는 13년 차 직장인 박모(42)씨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서 박 씨처럼 대다수 사람은 이를 병으로 여기기보단, 두통약으로 때우면 되는 일상적 불편함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
박홍균 일산백병원 신경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만성 두통 환자가 두통약을 끊었을 때 오히려 증상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편두통은 일차두통으로, 적절한 치료 없이 약물을 남용하면 위에서 언급한 약물과용 두통으로 악화하거나, 통증 주기가 짧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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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오래가면 약 빈도부터 점검을
통증 부위보다 발생 시점·양상 중요
전에 없던 강한 두통 땐 즉시 병원에

“아, 또 시작이네…”
서울에서 일하는 13년 차 직장인 박모(42)씨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릿속을 갉아먹는 것 같은 지끈거림이 찾아오자,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책상 서랍을 열어 두통약 두 알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박씨는 “예전엔 한 알이면 두통이 사라졌는데, 요즘엔 약발이 잘 안 받는다”고 말했다. 회사 책상 서랍뿐 아니라 가방에도, 출퇴근하는 차량에도 비상약처럼 진통제를 챙겨 다닌다는 그는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계속 아프니까 약을 끊을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두통은 인구의 80% 이상이 경험할 만큼 흔한 증상이다. 그래서 박 씨처럼 대다수 사람은 이를 병으로 여기기보단, 두통약으로 때우면 되는 일상적 불편함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플 때마다 무심코 집어 든 진통제가 오히려 만성 두통을 유발하는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진통제 끊으니 만성 두통 줄어
두통을 잠재우려 먹은 약이 오히려 두통을 악화시키는 ‘약물과용 두통’은 환자들이 놓치기 쉽다. 약물과용 두통은 한 달에 15일 이상 두통을 겪으면서, 아스피린‧아세트아미노펜 같은 일반 진통제를 월 15일 이상 복용하는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진단한다.
박홍균 일산백병원 신경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만성 두통 환자가 두통약을 끊었을 때 오히려 증상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과용 두통 환자 309명을 3개월간 추적 관찰했더니, 과용하던 급성기 치료제를 감량하거나 중단한 환자군의 월평균 두통 일수가 치료 전 24일에서 12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약물과용을 지속한 환자들은 증상이 여전하거나 오히려 나빠졌다.
약물과용 두통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로 지목한 질환으로, 특히 만성 두통 환자들 사이에서 증가 추세다. 박 교수는 “만성 두통에 시달린다면 먼저 두통약 복용 빈도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며 “무조건 약을 먹기보다 전문가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단순 두통인가, 뇌 질환인가
약물 의존을 줄이기 위해선 두통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학영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두통은 특별한 원인 없는 ‘일차두통’과 뇌 질환 같은 명확한 원인이 있는 ‘이차두통’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관자놀이 부근 통증이어도 두통의 양상이 다를 수 있어서다.
관자놀이 부분이 맥박 뛰듯 욱신거린다면 편두통일 가능성이 높다. 편두통은 일차두통으로, 적절한 치료 없이 약물을 남용하면 위에서 언급한 약물과용 두통으로 악화하거나, 통증 주기가 짧아질 수 있다. 반면 노인층에서 관자놀이가 딱딱해지고 통증이 느껴진다면 ‘거대세포동맥염’을 의심해야 한다. 거대세포동맥염은 50세 이상에게 주로 발생하는 머리 부위의 만성 혈관 염증성 질환으로, 이에 따른 두통은 이차두통에 해당한다. 두통뿐 아니라 시력 저하와 턱 통증, 발열 등이 주요 증상이며, 방치할 경우 시신경으로 가는 혈류가 차단돼 실명할 수도 있다.
뒷골이 당기는 증상은 목디스크나 근육 긴장 탓에 발생하는 경부인성 두통일 수 있다. 이때 목의 운동 범위 감소나 팔 저림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경추 관리가 필요하다. 찌릿한 전기 충격 같은 통증이 뒤통수에만 머문다면 후두신경통일 수 있다.
이차두통 중에서도 머리 전체에 갑자기 발생하는 극심한 통증은 뇌혈관이 찢어지거나 터지는 뇌출혈 같은 위중한 원인 질환으로 생긴 두통일 가능성이 높아 특히 주의해야 한다. △벼락을 맞은 듯 갑작스럽고 극심한 통증이 나타날 때 △열이 나고 구토하며 목이 뻣뻣해질 때 △말이 어눌해지는 등 인지기능 변화가 동반될 때는 단순 두통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교수는 “두통은 통증 부위보다 발생 시점과 양상이 중요하다”며 “이전에 없던 매우 강한 두통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약으로 버틸 게 아니라, 즉시 병원을 찾아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 편두통은 어른과 증상 달라
매년 200만 명 이상이 두통으로 병원을 찾는데, 최근엔 소아·청소년 환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 2만7,271명이던 10~14세 두통 환자는 2023년 6만5,35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15~19세 환자 역시 같은 기간(2014년 4만3,634명→2023년 10만2,506명) 큰 폭으로 증가했다.
소아·청소년의 일차두통 중 대부분은 편두통이다. 다만 성인과 증상은 다르다. 성인은 보통 4~72시간 통증이 지속되는 데 반해, 소아·청소년은 30분~72시간으로 지속 시간이 짧다. 구토나 복통, 위장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차두통의 원인으로는 축농증과 고도 근시, 부정교합, 뇌질환 등이 꼽힌다.
이 교수는 “두통을 참거나 약으로 덮으려 하지 말고, 몸이 보내는 중요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약물 조절과 생활 습관 교정, 적절한 치료가 병행될 때 증상을 개선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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