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파 먹은 약이 ‘독’?”… 습관적 진통제가 만성 두통 키운다

변태섭 2026. 2.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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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복용 잦으면 '약물과용 두통'
두통 오래가면 약 빈도부터 점검을
통증 부위보다 발생 시점·양상 중요
전에 없던 강한 두통 땐 즉시 병원에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 또 시작이네…”

서울에서 일하는 13년 차 직장인 박모(42)씨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릿속을 갉아먹는 것 같은 지끈거림이 찾아오자,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책상 서랍을 열어 두통약 두 알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박씨는 “예전엔 한 알이면 두통이 사라졌는데, 요즘엔 약발이 잘 안 받는다”고 말했다. 회사 책상 서랍뿐 아니라 가방에도, 출퇴근하는 차량에도 비상약처럼 진통제를 챙겨 다닌다는 그는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계속 아프니까 약을 끊을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두통은 인구의 80% 이상이 경험할 만큼 흔한 증상이다. 그래서 박 씨처럼 대다수 사람은 이를 병으로 여기기보단, 두통약으로 때우면 되는 일상적 불편함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플 때마다 무심코 집어 든 진통제가 오히려 만성 두통을 유발하는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진통제 끊으니 만성 두통 줄어

두통을 잠재우려 먹은 약이 오히려 두통을 악화시키는 ‘약물과용 두통’은 환자들이 놓치기 쉽다. 약물과용 두통은 한 달에 15일 이상 두통을 겪으면서, 아스피린‧아세트아미노펜 같은 일반 진통제를 월 15일 이상 복용하는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진단한다.

박홍균 일산백병원 신경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만성 두통 환자가 두통약을 끊었을 때 오히려 증상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과용 두통 환자 309명을 3개월간 추적 관찰했더니, 과용하던 급성기 치료제를 감량하거나 중단한 환자군의 월평균 두통 일수가 치료 전 24일에서 12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약물과용을 지속한 환자들은 증상이 여전하거나 오히려 나빠졌다.

약물과용 두통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로 지목한 질환으로, 특히 만성 두통 환자들 사이에서 증가 추세다. 박 교수는 “만성 두통에 시달린다면 먼저 두통약 복용 빈도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며 “무조건 약을 먹기보다 전문가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단순 두통인가, 뇌 질환인가

약물 의존을 줄이기 위해선 두통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학영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두통은 특별한 원인 없는 ‘일차두통’과 뇌 질환 같은 명확한 원인이 있는 ‘이차두통’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관자놀이 부근 통증이어도 두통의 양상이 다를 수 있어서다.

관자놀이 부분이 맥박 뛰듯 욱신거린다면 편두통일 가능성이 높다. 편두통은 일차두통으로, 적절한 치료 없이 약물을 남용하면 위에서 언급한 약물과용 두통으로 악화하거나, 통증 주기가 짧아질 수 있다. 반면 노인층에서 관자놀이가 딱딱해지고 통증이 느껴진다면 ‘거대세포동맥염’을 의심해야 한다. 거대세포동맥염은 50세 이상에게 주로 발생하는 머리 부위의 만성 혈관 염증성 질환으로, 이에 따른 두통은 이차두통에 해당한다. 두통뿐 아니라 시력 저하와 턱 통증, 발열 등이 주요 증상이며, 방치할 경우 시신경으로 가는 혈류가 차단돼 실명할 수도 있다.

뒷골이 당기는 증상은 목디스크나 근육 긴장 탓에 발생하는 경부인성 두통일 수 있다. 이때 목의 운동 범위 감소나 팔 저림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경추 관리가 필요하다. 찌릿한 전기 충격 같은 통증이 뒤통수에만 머문다면 후두신경통일 수 있다.

이차두통 중에서도 머리 전체에 갑자기 발생하는 극심한 통증은 뇌혈관이 찢어지거나 터지는 뇌출혈 같은 위중한 원인 질환으로 생긴 두통일 가능성이 높아 특히 주의해야 한다. △벼락을 맞은 듯 갑작스럽고 극심한 통증이 나타날 때 △열이 나고 구토하며 목이 뻣뻣해질 때 △말이 어눌해지는 등 인지기능 변화가 동반될 때는 단순 두통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교수는 “두통은 통증 부위보다 발생 시점과 양상이 중요하다”며 “이전에 없던 매우 강한 두통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약으로 버틸 게 아니라, 즉시 병원을 찾아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 편두통은 어른과 증상 달라

매년 200만 명 이상이 두통으로 병원을 찾는데, 최근엔 소아·청소년 환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 2만7,271명이던 10~14세 두통 환자는 2023년 6만5,35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15~19세 환자 역시 같은 기간(2014년 4만3,634명→2023년 10만2,506명) 큰 폭으로 증가했다.

소아·청소년의 일차두통 중 대부분은 편두통이다. 다만 성인과 증상은 다르다. 성인은 보통 4~72시간 통증이 지속되는 데 반해, 소아·청소년은 30분~72시간으로 지속 시간이 짧다. 구토나 복통, 위장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차두통의 원인으로는 축농증과 고도 근시, 부정교합, 뇌질환 등이 꼽힌다.

이 교수는 “두통을 참거나 약으로 덮으려 하지 말고, 몸이 보내는 중요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약물 조절과 생활 습관 교정, 적절한 치료가 병행될 때 증상을 개선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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