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떡국, 한살 더 먹는 아쉬움…쇠고기 넣어 달래기도

관리자 2026. 2.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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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풍속에 떡국 그릇으로 나이를 계산하는데 나는 올해에 떡국을 먹지 않았으니 한해를 얻은 셈이요, 너희들은 지금까지 세월을 헛먹은 것이다."

이옥은 심부름 온 아이에게 "나는 올해 떡국을 먹지 않았으니 한해를 얻었고 너는 지금까지 세월을 헛먹었다"고 짖궂은 농담을 했다.

설에 떡국을 먹어보지 않은 아이가 이옥이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지는 의문이다.

이것으로 끝내면 한살 더 먹는 떡국 치고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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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떡국
음력 1월1일 설날에 먹는 음식
멥쌀 고두밥 떡메로 수차례 쳐
가래떡 모양 빚어 얇게 썬 떡에
꿩고기와 간장으로 국물 끓여
“일상식 넘어 케이푸드로 진화”
쇠고기로 국물을 낸 떡국.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풍속에 떡국 그릇으로 나이를 계산하는데 나는 올해에 떡국을 먹지 않았으니 한해를 얻은 셈이요, 너희들은 지금까지 세월을 헛먹은 것이다.”

이 글은 정조로부터 “성균관 유생답지 않은 수필 형식의 잡문을 쓴다”고 지적받고도 글쓰기를 고치지 않아 양반임에도 경상도 삼가현(지금의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서 군역에 복무하는 형벌을 받은 이옥(1760∼1815)이 썼다.

1799년 음력 12월30일 이옥은 삼가현 사람들이 1월1일이 아닌 12월30일 정오에 차례 지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또 이곳 주민은 “차례상에 떡국을 사용하지 않고 밥과 국·생선·술·과일을 차려놓고 흠향한다”는 것도 알았다.

조선 후기 문인 홍석모(1781∼1850)가 1849년 편찬한 ‘동국세시기’에는 “설날 집안 사당에 배알하고 제사 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부른다”고 하면서 이것이 ‘서울 풍속’이라고 했다. 경기 화성 출신 이옥의 집도 그랬다.

섣달그믐날 오후 이옥이 머물던 주막의 주인은 그에게 차례상에 올렸던 술과 과일을 보냈다. 이옥은 심부름 온 아이에게 “나는 올해 떡국을 먹지 않았으니 한해를 얻었고 너는 지금까지 세월을 헛먹었다”고 짖궂은 농담을 했다. 설에 떡국을 먹어보지 않은 아이가 이옥이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지는 의문이다.

1960년대 들어 경남에서도 차례상에 떡국을 올리는 가정이 생겼다. 하지만 많은 집에선 여전히 밥을 올렸다. 경남 명문가 사이에서는 차례에 떡국을 올리는지를 두고 “떡국 차례 가문인가, 메(밥) 차례 가문인가”라는 말이 오가기도 했다.

요사이 우리는 떡국에 쓰는 가래떡을 마트에서 사서 사용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설날을 며칠 앞두고 집마다 가래떡을 만든다고 야단법석을 피웠다.

주부는 아주 되게 지어져 고들고들한 멥쌀 고두밥을 두껍고 넓은 나무판인 떡판 위에 쏟아붓는다. 그러면 남자 어른이 나무로 만든 큰 방망이인 떡메로 고두밥을 수없이 쳐서 쫀득하게 만든다. 이 쫀득한 흰떡 덩어리를 가래떡 모양으로 빚는다. 섣달그믐날 밤 굳은 가래떡 덩어리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얇게 썬다. 이렇게 떡국떡이 완성된다.

지금에야 떡국 국물로 쇠고기국을 주로 쓰지만 20세기 초반까지도 서울 가정에서는 꿩고기로 국물을 냈다. 꿩고기조차 구하기 어려운 집에서는 한식 간장 반 종지를 넣고 끓인 맑은장국으로 국물을 마련했다. 방신영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1921년 펴낸 ‘조선요리제법’에 “국이 펄펄 끓을 때 가래떡을 넣고 잠깐 더 끓이면서 달걀 한개를 깨뜨려넣고 휘휘 저어서 대접에 담아낸다”고 적었다. 이것으로 끝내면 한살 더 먹는 떡국 치고 너무 아쉽다. 방신영은 “쇠고기를 길게 썰어 파 이겨넣고 한식 간장, 깨소금, 후추로 양념해 꼬챙이에 끼어 참기름 바르고 깨소금 뿌려서 구운 산적을 떡국 위에 올리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음력설을 지내지 말라고 강제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84년까지도 설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1985년에야 음력 1월1일이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하루 공휴일이 됐고 민주화 이후 1989년부터 3일을 쉬며 ‘설날’이란 이름도 되살아났다.

오늘날 한국인은 한살 더 먹기 위해 설날 떡국을 기다리지 않는다. 본디 떡국은 20세기 들어 발 빠르게 식당 메뉴에 오른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떡국에서 나온 떡볶이가 케이푸드(K-Food·한국음식)가 됐듯이 이제 떡국을 21세기형으로 진화시킬 때다.

주영하 음식 인문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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