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트레일 ] ② 아팔라치안 트레일 156일, 길의 문이 열리다
발로만 닿을 수 있는 풍경은,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
불편을 껴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워져
Part 01 / DAY 1-14 / 혼돈과 확신, 그리고 첫 리듬이 태어나는 시간
[<사람과 산> 서경석 객원기자] 신기한 일이다.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무릎 통증이 며칠간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하자 어느새 사라졌다. 가벼운 배낭으로는 느낄 수 없던 근육과 관절의 미세한 조율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내 몸이 이 긴 여정을 통해 스스로 균형을 되찾고 있는 듯했다. 나는 점점, 걷지 않으면 불편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 여정이 끝난 뒤엔 평생 걷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약간의 두려움이자, 어쩌면 운명 같은 기분 좋은 불안이다.
가이드북에는 오늘 목적지 근처에 작은 백사장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보물을 발견했다. 100-Mile Wilderness 한가운데, 걷는 자만이 닿을 수 있는 비밀 해변. 대부분의 유명 해변은 돈이나 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이곳은 오직 두 발로만 닿을 수 있다.
"누구나 갈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보물이 아니다."

<솔라생각〉</p>


바위에 낀 이끼의 패턴, 절대 인공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green의 농도, 그리고 청명한 공기가 코를 지나 폐로, 혈류를 타고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이 감각들. 나는 지금 100-Mile Wilderness의 교향곡 속을 걷고 있다. 가이드북이 말하는 오르막과 내리막, 그건 어렵고 쉬움의 문제가 아니라 교향곡의 1악장에서 4악장으로 이어지는 변주일 뿐이다. 나는 지금,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곡 위를 발로 호흡하며 따라가고 있다.

포기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어제 쉘터(shelter)에서 한 커플을 만났다. 종일 비가 내렸고, 땀인지 비인지 옷은 젖었고, 끼니는 간단히 해결해야 했다. 눅눅한 공기 속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그 상황은 누가 봐도 즐거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 커플은 그 '불편함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녁 내내 말없이 앉아 있었고, 아침에도 비가 멈추지 않자 이불 속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여긴 100-Mile Wilderness. 중간에 포기할 방법은 없다. 처음으로 되돌아가거나, 끝을 보거나. 단 두 가지 선택뿐이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의 자세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날의 무게가 달라진다. 지도는 평면이고, 삶은 입체다. 그 입체를 걷는 건 발이 아니라 마음이다.
〈솔라생각〉
"불편을 껴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워진다."
[ 해외트레일 ] ③아팔라치안 트레일 156일, 길의 문이 열리다 에서 이어집니다.
글.사진 서경석 객원기자 ㅣ 미국 AT·PCT를 완주한 장거리 하이커. 해외 트레킹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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