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급증…출혈경쟁에 중소설계사 ‘고사 위기’
자격시험 연2회 확대 이후 40% 증가
건축사사무소도 39% 늘어 경쟁 심화
턱없이 박한 건축설계대가에‘신음’

[대한경제=전동훈 기자]건축사 공급 급증으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중소 설계사들의 수주 경쟁이 한계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2일 대한건축사협회에 따르면 협회 정회원 수는 2021년 1만2462명에서 지난해 1만7472명으로 늘어 4년 새 약 40.2% 증가했다. 같은기간 건축사사무소 역시 4588곳 늘어 약 39% 확대됐다.
특히 지난 2023년에는 신규 입회자가 3379명에 달하며 최근 5년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등록 건축사 대비 정회원 가입 비율은 통상 85% 안팎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2020년부터 건축사 자격시험이 연 2회로 확대 시행된 영향을 꼽고 있다.
중견 건축사사무소 A사 임원은 “2010년대만 해도 연간 500명 내외 수준이던 건축사 합격자가 최근에는 1000명을 훌쩍 넘어 과잉배출되고 있다”며 “시장 파이는 정해져 있는데, 여타 전문자격과 비교해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건축사가 늘다 보니 수주 경쟁이 치열하다”고 짚었다.
최근 공공 건축시장의 과열 양상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보탠다. 민간 시장에서 뚜렷한 출구를 찾지 못한 설계사들이 현상설계공모로 몰리면서 경쟁률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올 상반기 심사를 앞둔 ‘암사1동 공공ㆍ문화 통합센터 건립 설계공모’에는 280개 업체가 참가 등록을 마쳤으며, ‘구립 고덕2 어린이집 및 우리동네 키움센터 건립 설계공모’에도 196개 업체가 몰렸다.

건축사 공급 확대 국면에서 시장 양극화까지 겹치며 중소 설계사들의 경쟁 압박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B사 대표는 “상위 1%에 해당하는 대형 설계사들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량을 가져가다 보니, 중견ㆍ중소 설계사들은 인력 감축은 물론 신입 채용 중단까지 단행하고 있다”고 했다. 5인 이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 급증 역시 생존을 위한 ‘울며 겨자 먹기식’ 창업이 누적된 결과로, 설계시장 전반의 구조적 불균형을 보여준다는 전언이다.
건축공간연구원의 ‘2024년 건축서비스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종사자 1~4명 규모의 소규모 사업체는 2만5657곳으로 전체의 78.7%를 차지한 반면, 종사자 1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체는 207곳(0.7%)에 불과하다.
더욱이 민간 건축설계대가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저가 수주와 출혈 경쟁이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중견 C사 임원은 “건축주가 터무니없는 설계대가를 요구하더라도 당장 일감이 없어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추가 업무가 발생해도 정당한 인건비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업체 비중이 높은 지방 설계사무소들은 수주 기반이 급격히 약화되며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소 설계업계의 핵심 먹거리로 꼽히는 비(非)아파트 수요가 크게 위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주택 공급 선행 지표로 불리는 인허가 실적은 지난해 22만2704가구로 전년(23만4083가구) 대비 3.9% 감소했다. 특히 비수도권 인허가 물량은 15만7130가구로, 전년(20만1151가구)과 비교해 21.9% 급감하며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대전의 한 중소 D사 대표는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줄도산 우려도 적지 않다”며 “설계공모 심사, 해체감리 등 제한적인 업무로 간신히 사무실 임대료를 충당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설계대가 정상화와 설계비 지급보증제 도입이 미뤄질 경우, 개점휴업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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