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쓰고 잘 살기] 광주광역시 양림동으로 떠난 가심비 여행 | 전원생활

허연선 기자 2026. 2.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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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예술을 곁들인 동네 한 바퀴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2월호 기사입니다.

일상에 환기가 필요할 때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바로 ‘여행 경비’다. 갈수록 오르는 물가에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여행이 사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포기하긴 이르다.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행지들이 있다.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뜻하는 소위 ‘가심비’도 높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으로 반나절 가심비 여행을 떠났다.
가심비 높은 여행지 광주광역시 양림동.
국내에는 적은 예산으로도 만족도가 높은 가심비 여행지가 여럿이다. 그중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을 택했다. 양림동은 도보로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고, 주요 장소 대부분이 무료 관람이다.

버드나무가 무성한 마을이었다는 양림(楊林)동은 광주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장소다. 1900년대 초, 한적한 마을이던 양림동에 서양의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교회를 열고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마을은 ‘서양촌’이라 불렸다. ‘오웬기념각’ ‘우일선선교사사택’ 등 그때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들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원요한 선교사 사택의 차고를 증축한 복합문화공간,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양림동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는 서양식 건축물과 더불어 광주시의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가옥 ‘이장우가옥’ ‘최승효가옥’이 있어서다. 행사가 있을 때만 개방되는 최승효가옥은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로도 사용됐던 곳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전통과 서양의 근대 문물이 어우러진 양림동은 현재 ‘양림역사문화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예부터 공예가·문인·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활동해온 양림동은 공예거리·미술관·창작소 등이 산재해 있어 문화예술의 거점도 겸한다. 이곳에선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역사와 문화예술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

편안한 여행을 위한 준비
이번 가심비 여행의 시작점은 KTX·SRT 정차역인 광주송정역이다. 광주송정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광주역에서 하차한 후 10분 정도 걸어가면 양림동에 도착한다. 만약 자동차로 이동할 계획이라면,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양림역사문화마을 제1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바로 옆에 있는 ‘양림마을이야기관’에 들러 양림동에 관련된 이야기와 인물을 알아보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해도 좋겠다.

짐이 무겁다면 먼저 들를 곳은 ‘양림거점예술여행센터’다. 이곳은 여행자들을 위해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짐 보관이나 우산 대여 등 각종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분증을 맡기면 자전거를 빌려 동네를 누빌 수 있다. 몸이 가벼워졌으니, 이제 여행을 시작할 차례다.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고민인 사람에겐 ‘양림동 스마트투어’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는 걸 추천한다. 이 앱은 ‘양림, 100년 근대길’부터 ‘광주정신 뿌리길’ ‘추억 저장길’ ‘양림문예길’까지 4개의 테마로 코스를 분류해놓았다. 코스들을 미리 둘러보며 각자의 관심사에 맞는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

가보고 싶은 장소가 여러 곳이라 한 코스로만 다니기 아쉽다면, 앱에 로그인해 자신만의 여행 코스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여행을 하며 배움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기능도 있다. ‘음성 해설 안내’는 장소별 세부 정보를 귀여운 목소리로 들려준다. 눈으로는 감상을, 귀로는 설명을 들으며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문화예술을 알아가는 즐거움
생활감이 짙은 폐품들을 작품화해 꾸며놓은 ‘펭귄마을’.
여행센터 건너편에 있는 ‘펭귄마을’은 생활감이 짙은 폐품들을 작품화해 꾸며놓았다. 지금은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감성이 넘쳐나지만, 한때는 빈집만 무성한 모습이었다. 2013년, 빈집 한 곳에서 불이 나 전소된 후 쓰레기가 쌓여갔다. 

몇 년간 쓰레기가 방치돼 흉하게 변한 빈집을 마을 주민 김동균 씨가 나서서 치웠다. 김씨는 주민들과 함께 그곳에 텃밭을 가꾸고 폐품을 모아 전시했다. 펭귄마을이라는 이름은 다리가 불편한 한 어르신이 걷는 모습에서 따왔다. 시간이 지나며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정크아트 전시관으로 변해갔다. 사람이 떠났던 마을이 주민들의 노력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공립 미술관인 ‘이강하미술관’은 3·1만세운동길에 자리한다. 미술관은 옛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해 만들어선지 동네의 정서에 잘 녹아들어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무등산의 화가’로 불린 고(故) 이강하 화백의 삶과 예술 세계를 알리는 동시에, 지역민의 문화예술 플랫폼 역할도 병행한다. 3·1만세운동 기념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이이남 스튜디오에 전시된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작품.

걸음을 멈추고, 차 한잔에 쉬어가고 싶을 때 ‘이이남 스튜디오’는 반가운 장소다. 이곳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창작스튜디오이자 갤러리 겸 카페다. 음료 가격에 갤러리 관람료가 포함돼 있다. 공간 전체에 미디어아트와 조각 등 이이남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양림동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진한 초록 잎과 붉은 열매가 대비되는 호랑가시나무다. 흔히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양림동호랑가시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으로 높이가 6m에 달한다. 이 나무 뒤편에 복합문화공간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 있다. 원요한 선교사 사택의 차고로 사용했던 공간을 증축했다. 주황빛 벽돌이 포근함을 더하는 이곳에서 전시를 비롯한 문화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건축물에 남겨진 이야기
아치 형태가 돋보이는 오웬기념각 입구.
아트폴리곤과 인접한 ‘우일선선교사사택’까지 올라가는 길은 소담하다.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Robert M. Willson)은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 원장을 지낸 인물로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야트막한 계단 위로 2층 규모에 창이 여러 개 난 건물이 보인다.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지만, 낡았다는 느낌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잘 배인 듯하다.

기독간호대학교 안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2012년 드라마 <각시탈>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아치 형태인 입구가 인상적인 이 건물은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활동한 오웬(Clement C. Owen)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곳은 개화기에 크고 작은 문화 행사를 열여 ‘광주의 신문화 발상지’라 여겨지고 있다.

고즈넉한 정취가 가득한 ‘이장우가옥’도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사랑받는다. 근대 상류층 가옥으로 크기가 상당하다. 연못에는 큰 거북 돌조각이 있는데, 부유함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햇빛을 머금은 흙 마당과 한옥의 예스러움이 섞인 풍경이 수려하다.

양림동과 관련된 인물들이 새겨진 부조 작품 ‘최후의 만찬-양림’

이 외에도 양림동은 구석구석 구경할 거리가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양림동과 관련된 인물들로 재해석한 부조 작품 ‘최후의 만찬-양림’,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벽화, 처마 밑에서 조용히 익어가는 곶감 등.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재미있는 풍경들을 마주한다.

볼거리가 가득한 양림동을 보고, 느끼고, 즐기는 동안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 있다.

허연선 기자 | 사진 고승범(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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