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인 DNA 속 ‘흥’과 ‘끼’가 빚은 힘[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젊은 시절 노래와 춤 즐기던 세대… 문화적 자산 돼 K컬처 경쟁력으로
흥-끼, K팝 성공 설명할 핵심요소… ‘K팝 종주국’ 한국, 자부심 가져야

K팝의 세계적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많은 K팝 노래가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아파트(APT.)’는 2025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에서 한국인 최초로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부문을 수상했고,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골든(Golden)’은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인 2026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우리 조상은 삼국시대 이후 전통적으로 풍류를 즐겨 왔는데, 그 안에는 음주가무가 어우러져 있었다. 독일인과 일본인이 조용하고 합리적인 성향에서 서로 닮았다면, 한국인은 남미 사람들의 다혈질적 기질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술과 춤, 노래로 자연과 인생을 즐기는 성향 역시 단점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팝 음악은 본래 서구에서 건너온 ‘수입품’이었다. 팝 전성기 시절 해외 유명 가수가 국내에서 공연하면 전국의 팬들이 몰려들곤 했다. 대표적 사례가 1969년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이다. 당시 이화여대생뿐 아니라 전국에서 ‘오빠부대’가 모여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일부 여고생들은 ‘공연 후유증’으로 성적이 떨어졌다는 말까지 돌았다. 세월이 흘러 당시 이화여대 1학년생이 이제는 70대 중반을 넘겼다.

한국인의 유전자 안에는 ‘빨리빨리’로 요약되는 근면 성실뿐 아니라, 흥이 오르면 노래방에서 애창곡 하나쯤은 멋지게 부를 수 있는 끼도 자리한다. 그러나 대학입시 경쟁 속에서 공부만을 강조하던 시절에는 이 끼가 억압되곤 했다. 대중가수가 ‘딴따라’로 무시당하던 시절, 부모들은 귀한 자식들이 팝송에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할까 노심초사했다. 춤과 노래가 유흥으로 이어져 탈선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공연 관람을 막기 위해 조퇴 금지령까지 내려 부모와 학교가 소녀들의 끼를 누르려 했지만, 1960년대 소녀들은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팝송 가사를 이미 외울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세상도 변한다. 그러나 57년 전이나 지금이나 젊음의 축제는 되풀이된다. 무대 위 가수와 열광하는 팬은 달라졌지만, 축제의 즐거움은 똑같다. 독일 철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에 따르면 ‘놀이(Spiel)’에는 다른 것 같아서 늘 새로우면서, 차이가 나지만 본질에는 변함이 없는 동일한 것이 반복된다. 57년 전 외국 팝송에 떼창을 하던 소녀는 이제 로제의 ‘아파트’를 따라 부르는 손주를 보며 한때의 젊음을 떠올린다. 옛날 외국 가수에 대한 소녀의 ‘사랑’이 오늘날 아이브, 에스파, 방탄소년단(BTS) 같은 세계적 K팝 스타를 향한 ‘응원’으로 이어진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영화 ‘The Young Ones’의 줄거리처럼 젊음은 금방 지나가는 덧없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가수에게 미친 듯 소리치며 열광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무죄가 된다. 사랑은 젊은이들에게는 현재의 즐거움이고, 나이가 들면 간직할 추억이 된다.
지금의 10대와 20대는 50년 전 우리의 할머니들 또한 남다른 끼와 뜨거운 열정을 지녔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다. 수업을 빼먹고 공연장을 찾던 끼 많은 여학생들은 이제 백발이 되어 손주들에게 자신의 추억담을 들려준다. 이렇게 풍류라는 우리의 문화적 전통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왔다. 한국을 말할 때 K컬처를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풍류를 멋지게 즐길 줄 아는 DNA를 지닌 우리는 K팝 종주국의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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