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 ‘점령군적 행태’, 더는 용납해선 안 돼 [왜냐면]


고승우 | 80년5월 민주화투쟁언론인회 대표·언론사회학 박사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지난달 28일 한국 여당이 추진 중인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정전협정과 상충한다며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동맹 관련 국제법 관행 등에 크게 어긋난다. 외국 군사령부가 공개적으로 주재국 정부의 정책이나 입법을 상대로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정치적 성격의 입장을 표명하는 사례는 국제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유엔사는 미국 정부가 지휘·통제하는 군사기구라는 위상에 비춰볼 때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유엔 사무국은 여러차례 “유엔사가 유엔의 산하 기구가 아니며, 유엔의 지휘·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유엔사는 미 대통령 통수권의 지휘를 받는 부대로 그 사령관이 한국 정부의 정책 결정에 직접 맞대응하는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유엔사의 기이한 행태는 주권국가를 상대로 한 외국 군사 권력의 ‘점령군적 행태’와 유사하다는 비판을 자초한다. 전시 상황에서는 점령군이 피점령지의 행정·입법·치안에 광범위하게 개입할 수 있으나, 한국은 명백한 주권국가이며 한미 관계 역시 동맹 관계다. 유엔사 사령관이 한국 정부의 비무장지대 입법 추진이 “정전협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동맹 간 군사 협력의 일반적 범위를 한참 벗어난 일탈 행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제 관행상 군사령부는 주재국 정부의 입법이나 정책의 정당성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권한 주체가 아니다. 그 정책의 집행과 현장 안전 관리, 충돌 방지 임무를 수행해야 마땅하다. 정책의 가부 판단과 국제법 해석에 따른 정치적 책임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최고 지도부가 지는 것이 원칙이다. 군사 조직이 독자적으로 정책의 위법성을 선언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동맹의 파괴 시도와 같은 심각성을 지닌다.
정전협정 역시 유엔사 사령관에게 비무장지대 내 군사적 충돌 방지, 안전 관리, 연락 및 조정 기능을 부여할 뿐,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입법 자체를 정치적으로 평가하거나 그 효력을 부정할 명시적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유엔사는 정전 체제라는 특수성을 근거로 ‘위반 판단 권한’을 관성적으로 행사해 왔다. 그러나 21세기 국제사회의 특성과 한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관행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유엔의 공식 기구가 아닌, 미 대통령이 임명한 일개 군사령관이 한국 정부의 정책과 입법을 상대로 사실상의 승인·불허 권한을 행사하는 듯한 모습은, 국제 관행상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다. 이는 주권국가 간 대등한 관계라기보다, 전시 점령 또는 보호 통치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심각한 외교·법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국제사회가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조롱할 일이다. 미 대통령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해당 사안을 유엔사 내부 협의 차원이 아니라, 미 국방부를 거쳐 미 대통령과 협의하는 것은 국제 관행상 정당한 대응이다. 미군 사령관의 권한 남용이나 권한 범위 확대 해석 논란을 군 통수권자에게 제기하는 것은, 동맹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 할 것이다.
한미 두 정부는 유엔사의 역할을 ‘정책 가부 판단자’가 아니라 ‘안전 관리 및 기술적 조정자’로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비무장지대 관련 정책 결정과 입법은 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담당하되, 유엔사는 해당 정책이 정전 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군사적 안전 확보와 충돌 방지, 기술적 조정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국제 관행과 동맹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비무장지대 출입 규정 문제를 넘어, 70년 가까이 지속한 정전협정 체제에서 형성된 각종 관행과 권한 구조가 21세기 주권국가 관계와 민주적 통치 원칙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차제에 한미 두 나라는 비무장지대 출입이나 평화적 이용 문제와 함께, 정전협정 체제 아래에서 장기간 유지돼 온 유엔사의 관성적 권한 행사와 그 정치적 책임 구조를 유엔 헌장과 평화협정 추진 당위성에 비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비무장지대 정책의 최종 결정권과 책임은 한국 정부가 지되, 유엔사는 해당 정책이 정전 질서 속에서 안전하게 집행될 수 있게 하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데 기술적 지원을 하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주권 존중과 동맹 협력, 평화 유지라는 가치가 유지될 때 한반도 분단 해소와 평화 정착의 해법도 제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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